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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폭언·체벌 빈번한데…학생인권조례 폐지하면 인권침해 구제 어쩌나

등록 2023-12-25 18:53수정 2023-12-25 19:18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최교진 세종시교육감이 지난 19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서울시의회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의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최교진 세종시교육감이 지난 19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서울시의회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의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ㄱ고등학교 교사는 서너달에 한번꼴로 학생들에게 자신의 흰머리를 염색해달라고 했다.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버리는 카드다” 같은 폭언을 하기도 했다. 아침마다 학생들에게 운동장 두 바퀴를 달리게 하고 인사를 크게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팔굽혀펴기를 시켰다. 방과 후 수업에 결석하면 벌점을 매기기 때문에 학생들은 원치 않아도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교사·학부모 등은 지난해 7월 ㄱ고교에서 인권침해가 빈번하다며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에 권리구제 신청을 했다. 이에 학생인권옹호관(학생인권교육센터장 겸임)은 학급 전수조사 등을 거쳐 교사들의 부적절한 행위로 학생들이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보장하는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인격권, 사생활의 자유 등을 침해당했다고 판단했다. 학생인권옹호관은 학교장에게 교직원 대상 학생인권 연수 실시, 문제 교사에 대한 신분상 조치 등을 권고했다.

국민의힘 의원이 과반인 서울시의회가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조례가 사라지면 이를 근거로 학생인권옹호관이 해온 인권침해 구제 활동도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학생인권옹호관은 학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침해 상담과 조사, 그 결과에 따라 시정을 권고하는 ‘학생인권 지킴이’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따라 도입됐다.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7개 시·도 가운데 서울·인천·경기·전북·충남 교육청 5곳에 학생인권옹호관이 있으며, 광주·제주 교육청에선 인권교육센터가 권리구제를 맡고 있다.

25일 서울시교육청 자료를 보면, 학생인권옹호관은 2015년 활동을 시작해 올해 11월까지 7232건의 인권침해 상담을 했고, 1454건의 권리구제 사안을 접수해 처리했다. 권리구제 사안 가운데 제도 개선이나 시정을 권고한 것이 571건(39%)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2019년 ㅅ예술고교가 학생 동의를 받지도 않고 외부 공연에 참여시켜 정작 정규 수업을 듣지 못하게 된 사실 등을 확인해 교육 환경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이밖에도 등교 과정에서 학생회·선도부가 전교생을 대상으로 가방 검사(사생활의 자유 침해), 성가 합창제 참여 강요(종교의 자유 침해), 관행적으로 성적 공개(개인정보 보호권 침해) 등을 한 학교에 대해 재발 방지·시정을 권고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등에 따라 학교 쪽은 학생인권옹호관의 권고를 받은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이행 계획을 제출하고 90일 이내에 조치 결과를 통보해야 한다. 그러나 교육부가 지난 11월 학생인권조례의 대안으로 제시한 ‘학교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 예시안에는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나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 학생 인권 보호에 필요한 조항뿐 아니라 권리침해 구제 절차도 명시돼 있지 않다.

이런 까닭에 학생인권옹호관들은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면 학생 인권 보장에 실질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우필호 서울 학생인권옹호관은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면 인권침해 구제 절차와 근거가 사라진다”며 “교육청에서 이런 역할을 맡는다고 해도 근거법이 없으면 학교 쪽에 권고를 이행하게 할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국민의힘 주도로 충남도의회가 지난 15일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통과시키자, 조례가 보장하는 권리를 담은 학생생활규정을 손보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김지훈 충남 학생인권옹호관은 “학생인권조례에 근거해 만든 학생생활규정을 손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의가 벌써부터 이어지고 있다”며 “학교 현장에서 학생 인권을 고려하는 무게감이 달라지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앞서 김지철 충남교육감은 충남도의회가 의결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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