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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이 순간] 서울 도심 빈자들의 섬…노숙인 용산 텐트촌

등록 2020-07-24 10:14수정 2020-07-24 10:22

서울 용산 텐트촌의 나무 기둥에 소화기와 거울이 걸려 있다. 용산역과 인근 호텔을 잇는 공중연결통로가 거울에 비치고 있다. 이정아 기자
서울 용산 텐트촌의 나무 기둥에 소화기와 거울이 걸려 있다. 용산역과 인근 호텔을 잇는 공중연결통로가 거울에 비치고 있다. 이정아 기자

금싸라기라 이르는 서울 한복판, 용산역과 주변에 새로 들어선 고층 호텔 사이에는 나무와 풀숲으로 우거진 빈터가 있다. 2020년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부동산 광풍을 달랠 주택 공급과 용산 미군기지 개발 계획의 한 카드로 거론되는 서울 용산역 철도정비창 터다. 유동인구가 많은 역과 호텔 사이에 있지만 고립된 이 땅에 들어가는 출입구를 찾기란 쉽지 않다. 대신 주변 건물들은 구름다리로 연결되었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저 도심의 작은 녹지인 이 빈터에는 우리가 애써 지우려는 도시의 가난이 스며 있다. 2000년대 중반께 형성돼 현재 약 20명의 노숙인이 비닐과 천막, 종이상자 등으로 집을 지어 살고 있는 용산 노숙인 텐트촌이다.

용산역 지상주차장으로 향하는 이어진 고가도로에서 내려다보았다. 마치 섬처럼 수풀이 우거진 저 녹지 안에 텐트촌이 자리잡고 있다. 이정아 기자
용산역 지상주차장으로 향하는 이어진 고가도로에서 내려다보았다. 마치 섬처럼 수풀이 우거진 저 녹지 안에 텐트촌이 자리잡고 있다. 이정아 기자

삶이 온통 질문투성이라며 ‘투성’이란 별명으로 자신을 소개한 김아무개(45)씨는 노숙 생활 6년차다. 과거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렸으나 척추를 다치며 정상적인 노동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급격히 경제 사정이 나빠졌다. 위기의 순간 도와줄 가족이나 개인적인 안전망이 그에게는 없었다. 전세, 월세, 고시원 등으로 밀려나다 2014년 구로동 여인숙 시절을 끝으로 사우나, 찜질방을 거쳐 그는 영등포에서 거리 생활을 시작했다. 노숙인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일을 했지만 요행히 그 기간을 연장해도 1년 중 최장 6개월만 일할 수 있는 현 상황에서 이를 토대로 재기를 도모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노숙인들의 삶에도 저마다의 까닭이 있다.

“자활 의지가 없어서 처음부터 노숙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요?” 안형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가 물었다. 노숙인 대부분은 결국 노동시장의 가장 밑바닥에서 일하다가 저마다의 이유로 밀려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노숙인 문제를 말할 때, 개인의 한계 상황이나 보편적 권리로서의 주거 개념은 삭제하고, 당사자의 의지·노력을 강조하는 건 적절한 처방이 될 수 없다고 그는 지적했다. 각종 개발 계획과 더불어 이곳의 지명이 오르내리는 요즘, 텐트촌 주민들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노숙인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풀 것인가’라는 질문과 고민은 결국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공동체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 예외적인 낙오자를 위한 시혜적인 정책이 아니라, 누구든 사람답게 살 권리의 하나로서 보편적으로 가져야 할 주거권을 지금 이야기하는 까닭이다.

삶이 온통 질문투성이라며 ‘투성’이란 별명으로 자신을 소개한 김아무개(45)씨가 자신의 텐트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노숙인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일을 했지만 요행히 그 기간을 연장해도 1년 중 최장 6개월만 일할 수 있는 현 상황에서 이를 토대로 재기를 도모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정아 기자
삶이 온통 질문투성이라며 ‘투성’이란 별명으로 자신을 소개한 김아무개(45)씨가 자신의 텐트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노숙인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일을 했지만 요행히 그 기간을 연장해도 1년 중 최장 6개월만 일할 수 있는 현 상황에서 이를 토대로 재기를 도모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정아 기자

오랜 주민인 윤아무개씨가 텐트촌을 바라보고 있다. 수풀을 헤치는 동행의 손에 내려앉은 사마귀를 보고 ‘있던 자리에 잘 내려주라’고 말하던 그의 나즈막한 목소리는 귓가에 오래 맴돌았다. 어려서부터 가난을 경험한 그가 살 길을 찾아 이 도시에 들어온 건 열 살 때. 소년의 첫 직업은 ‘구두닦이’였고, 그 뒤로도 쉽지 않은 삶과 노동이 이어졌다. 그는 2005년께 이곳에 자리잡았다. 이정아 기자
오랜 주민인 윤아무개씨가 텐트촌을 바라보고 있다. 수풀을 헤치는 동행의 손에 내려앉은 사마귀를 보고 ‘있던 자리에 잘 내려주라’고 말하던 그의 나즈막한 목소리는 귓가에 오래 맴돌았다. 어려서부터 가난을 경험한 그가 살 길을 찾아 이 도시에 들어온 건 열 살 때. 소년의 첫 직업은 ‘구두닦이’였고, 그 뒤로도 쉽지 않은 삶과 노동이 이어졌다. 그는 2005년께 이곳에 자리잡았다. 이정아 기자

텐트촌에도 규칙은 있다. 무단 쓰레기 투기 경고문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이정아 기자
텐트촌에도 규칙은 있다. 무단 쓰레기 투기 경고문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이정아 기자

텐트촌은 크게 네 구역으로 나뉜다. 그 중에서도 용산역 지상주차장으로 향하는 고가도로 아래가 가장 좋은 자리로 꼽힌다. 종이상자와 비닐, 천막 등 다양한 재로로 만든 노숙인들의 거처 사이로 고물상에 팔기 위해 모아둔 폐지 등이 보인다. 이정아 기자
텐트촌은 크게 네 구역으로 나뉜다. 그 중에서도 용산역 지상주차장으로 향하는 고가도로 아래가 가장 좋은 자리로 꼽힌다. 종이상자와 비닐, 천막 등 다양한 재로로 만든 노숙인들의 거처 사이로 고물상에 팔기 위해 모아둔 폐지 등이 보인다. 이정아 기자

빽빽히 들어선 나무들로 텐트촌은 한낮에도 어두운 편이다. 이정아 기자
빽빽히 들어선 나무들로 텐트촌은 한낮에도 어두운 편이다. 이정아 기자

비바람을 막기 위해 여러 개의 우산으로 외벽을 만든 한 노숙인의 천막. 이정아 기자
비바람을 막기 위해 여러 개의 우산으로 외벽을 만든 한 노숙인의 천막. 이정아 기자

텐트촌의 또다른 주민 길고양이. 가난은 이 거대한 도시에 길고양이처럼 숨어 있다. 이정아 기자
텐트촌의 또다른 주민 길고양이. 가난은 이 거대한 도시에 길고양이처럼 숨어 있다. 이정아 기자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leej@hani.co.kr

2020년 7월 24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2020년 7월 24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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