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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부모 욕망을 ‘아이 위해서’라고 포장하는 일, 이제 그만하자

등록 2012-10-02 21:07수정 2012-10-08 08:38

신희경 ‘한’ 정신건강연구소장
신희경 ‘한’ 정신건강연구소장
[인권이 최고의 아동·청소년 복지다]
[기고] 신희경 ‘한’ 정신건강연구소장
극심한 우울증으로 상담실을 찾은 중학생 희연(가명)이는 자신을 스위치에 비유했다. 엄마가 스위치를 누르면 불이 켜지고 또 한 번 누르면 꺼진단다. 스위치는 누르는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자체는 중요한 것이 아니란다. “엄마가 하도 켰다 껐다해서 스위치가 완전히 고장났나 봐요.” 아이의 언어로 정의된 이 정확한 자가진단 앞에 ‘우울증’, ‘무기력’이란 전문용어는 초라했다.

아이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안 엄마들은 스위치를 새 것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새 것으로 바꿔만 준다면 다시는 심하게 켰다 껐다하지 않겠다고 한다. 나는 그런 엄마들을 잘 믿지 않는다. 새 스위치로 교체하면 아이의 감정을 공감해주는 척은 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스위치를 마음대로 켜고 끄는 것은 그대로다.

부모들이 느끼는 불안은 이미 병적이다. 너무 피곤해서 자겠다는 아이한테마저도 “무슨 공부를 얼마나 했다고 피곤하냐”며 비아냥거린다. 공부를 안 하는 사람은 피곤을 느낄 수 없는 것인가? 부모들은 아이가 성과를 보여줘야 고통의 진정성을 인정한다. 아이들은 부모들의 팔팔 끓는 욕망에 데쳐진 시금치처럼 축 쳐져 버렸다.

최근에는 입시교육 전문가들조차도 아이에게 너무 집착하지 말고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도우라고, 부모는 자신의 인생을 살라고 조언한다. 부모들도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밤늦게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아이를 보면서 수없이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여전히 불안해하고 아이에게 집착하는가?

부모인 나 자신부터 삶의 가치체계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 말고 다른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부모도 모른다. 옆집 아이들이 다 그렇게 살아서, 우리 아이만 뒤쳐질까봐 불안한 게 아니다. 나 자신부터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것이 희미하기 때문에 불안하다.

아이 방의 스위치를 수없이 켜고 끄지만 정작 내 방의 스위치를 켜 본 적이 있는가.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가’만이 아니라 ‘나는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가’를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그동안 방치되었던 나 자신의 방안을 들여다보기가 두렵다고 언제까지 아이의 방에 머물면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을 것인가. 오랫동안 켜지 않았던 내 방의 불을 먼저 켜야 한다. 구석구석 살펴봐야 한다.

아동정신분석가 프랑수와즈 돌토는 “아이는 부모의 욕망을 돌볼 시간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부모가 아이의 욕망을 즐겁게 지켜봐야 한다. 동시에 자신의 욕망을 가꾸어야 한다. 내 방에 있는 스위치를 켜고, 내가 추구하며 살고 싶었던 가치를 찾아내고, 그 가치를 삶에서 구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직업이나 취미생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늙어가고 싶은가’를 묻는 것이다. 이것이 ‘아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보다 먼저 답해야할 문제다.

아이는 자신이 부모의 스위치 노릇을 한 것에 대한 분노를 느끼고 스위치로 살아오면서 방치되었던 진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사물과 사람에서 자신이 발견한 기쁨을 억압하면서 부모가 원하는 기쁨을 바쳐야 하는 아이로 자라온 자신을 긍휼히 여기고 보살필 수 있어야 한다.

타인의 열등함을 밟고 서서 자신의 우월함을 인정받으려는 경쟁구조가 이 사회를 잠식했다. 부모는 아이를 돈과 성공만을 추구하는 세상에 밀어넣고 살아남기를 명령한다. 그러곤 자신의 불안을 ‘아이를 위해서’라는 위선으로 포장한다. 이제 그만하자. 정말 아이를 위해서라면 그런 사회를 물려주지 않으면 된다. 이 사회를 인간다움을 존중하고 공공성의 가치가 실현된 사회로 만드는 것에 나의 마음과 시간을 내어주자. 이것이 사회적 안전망 없이 개인이 홀로 버텨내야 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부모의 불안을 없앨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신희경 ‘한’ 정신건강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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