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인권이 최고의 아동·청소년 복지다]
③ 결핍은 사회가 채워줘야
③ 결핍은 사회가 채워줘야
요리사도 춤꾼도 되고 싶지만
형편 어려워 공부 제대로 못해
꿈 이룰 수 있을지 한숨만 나와 진로 문제 등 고민은 늘었는데
딱히 털어놓을 어른이 없어요
상담교사도 귀기울여 듣지 않죠 학교에선 국·영·수 공부만 강조
학생들이 원하는 건 관심인데… 지난 19일 밤 9시, 경기도에 사는 중3 오정현(가명·16)양의 귀갓길은 어두컴컴했다. 집으로 가는 동안 정현이가 만나는 것은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비치는 오래된 다세대주택들과 몇 개의 모텔들, 카센터, 허름한 식당 등이다. “집에 가는 길 무섭죠.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집에 있는 벌레예요. 우리집이 반지하거든요.” 정현이의 집은 다세대주택 반지하다. 종종 벌레가 출몰한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귀뚜라미다. 아침에 등교하려고 고데기로 머리를 말고 있는데 귀뚜라미 한 마리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울면서 눈싸움만 하다 학교에 지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새엄마는 “뭐 그런 걸로 난리니?”라고 할 뿐 벌레를 잡아주진 않는다. 학교에 가면 답답하기만 하다. 정현이는 아직 추상적인 단어가 익숙지 않다. ‘공포’, ‘탈선’, ‘불평등’ 같은 단어는 무슨 뜻인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직접 사용하려고 하면 더 생각이 안 난다. “아, 그게 뭐죠? 좀 무섭고 불안하고 막 그럴 때 드는 마음, 그게 뭐죠?” 이야기를 하다가도 정현이는 적절한 단어를 찾느라 종종 애를 먹기도 한다. 영어 단어는 읽기도 어렵다. 알파벳 ‘I’를 어떨 때 ‘아이’로 읽고 어떨 때 ‘이’로 읽는지, 왜 때때로 읽는 법이 다른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커서 되고 싶은 것이 많은 정현이지만, 중3이 되면서부터 미래가 답답하고 불안하다. “요리사도 되고 싶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되고 싶어요. 춤추는 것도 좋아요. 경찰이 되고 싶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생각하면 한숨이 난다. “요리사도 요리만 하면 식당 아줌마가 되는 거잖아요. 유학도 가야 되고, 조리사 자격증 시험 보려면 공부를 잘해야 하잖아요. 영어도 해야 하고…. 내가 할 수 있을지, 뭐가 되긴 될 수 있을지 정말 앞이 깜깜해요.” 정현이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정현이는 공부를 하고 싶지만 너무 어렵다고 했다. “지금은 기초가 없어도 너무 없으니까, 자상한 선생님이 일대일로 가르쳐주면 어떨까 생각해요. 먹을 것도 많이 주시면서. 그러면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너무 지루하고 어려워서 공부는 못하겠어요.” 정현이는 6살 때부터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보육원에서 컸다. 정현이의 친엄마와 이혼한 아버지가 정현이를 보육원에 맡겼다. 어린 정현이를 집에 혼자 두는 게 걱정되고, 돌볼 여력이 없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버린 건 아니었다. 1~2주, 길면 한 달에 한 번씩 꾸준히 찾아와 맛있는 것도 사줬다. 정현이가 6학년 때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다시 함께 살게 됐다. 정현이는 아버지가 좋다. 다시 태어나면 부잣집에서 태어나고 싶지만, 아버지는 그대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새엄마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 그래서 집에 일찍 가기가 싫어 밖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밤 9~10시께 집에 들어간다. 진로 문제 등 고민이 꽤 늘었지만, 딱히 고민을 털어놓을 어른은 없다. 학교에 상담교사가 두 분 있지만, 친구들이 울면서 상담하러 가도 “종 쳤는데 뭐 하는 거야? 올라가”라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진지한 상담이 안 된다. 진로에 대한 상담도 어디에 가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막막하다. 비밀스런 얘기는 모두 친구들에게 한다. 믿을 건 친구들뿐이다. 고등학교 가서 이런 친구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정현이가 사는 지역에는 중학교가 12곳 있다. 지난해 이들 중학교에서 102명이 학업을 중단했다. 초·중·고교를 합하면 이 지역에서만 학업을 중단한 어린이·청소년이 500여명에 이른다. 특성화고(옛 전문계고) 진학 비율도 높아, 전교생의 절반이 넘는 52%에 이르는 학교도 있다. 이 지역의 한 청소년문화센터 관계자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가구 비율도 매우 높아 대부분의 학교가 정부의 지원을 받는 교육복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가난한 가정이 늘고 있어 청소년들의 삶이 참 팍팍하다”고 말했다. 정현이는 용돈을 벌기 위해 주말에 친구들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한다. 결혼식장 엘리베이터에서 층 버튼을 눌러주고 안내를 하는 ‘엘리베이터 걸’ 아르바이트는 일당이 4만~5만원이다. 고깃집에서 불판을 닦고 서빙을 하는 아르바이트도 종종 한다. 이 아이들이 원하는 건 뭘까. 정현이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고 말했다. “요리사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한테 요리사가 맞는 건지, 내가 노력하면 요리사가 될 수 있는지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학교 성적이 좋은 편에 속하는 최지은(가명·16)양은 “대학은 말할 것도 없고, 당장 고등학교에 가더라도 학비를 어떻게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은이는 인문계고에 갈 성적이 되지만 특성화고로 진학할 생각이다. 특성화고에서 공부를 잘하면 장학금을 받기가 더 쉽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요즘 학교에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전혀 못 받는다는 성혜지(가명·16)양은 “제가 좀 ‘날라리’라도 선생님들이 제 얘기에 귀 기울이고, 저를 좀 챙겨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늘 국어·영어·수학을 강조하고 성적이 나쁜 아이들에게는 ‘나머지 공부’를 시키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공부 외에 저마다 지닌 꿈을 실현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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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교사도 귀기울여 듣지 않죠 학교에선 국·영·수 공부만 강조
학생들이 원하는 건 관심인데… 지난 19일 밤 9시, 경기도에 사는 중3 오정현(가명·16)양의 귀갓길은 어두컴컴했다. 집으로 가는 동안 정현이가 만나는 것은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비치는 오래된 다세대주택들과 몇 개의 모텔들, 카센터, 허름한 식당 등이다. “집에 가는 길 무섭죠.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집에 있는 벌레예요. 우리집이 반지하거든요.” 정현이의 집은 다세대주택 반지하다. 종종 벌레가 출몰한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귀뚜라미다. 아침에 등교하려고 고데기로 머리를 말고 있는데 귀뚜라미 한 마리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울면서 눈싸움만 하다 학교에 지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새엄마는 “뭐 그런 걸로 난리니?”라고 할 뿐 벌레를 잡아주진 않는다. 학교에 가면 답답하기만 하다. 정현이는 아직 추상적인 단어가 익숙지 않다. ‘공포’, ‘탈선’, ‘불평등’ 같은 단어는 무슨 뜻인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직접 사용하려고 하면 더 생각이 안 난다. “아, 그게 뭐죠? 좀 무섭고 불안하고 막 그럴 때 드는 마음, 그게 뭐죠?” 이야기를 하다가도 정현이는 적절한 단어를 찾느라 종종 애를 먹기도 한다. 영어 단어는 읽기도 어렵다. 알파벳 ‘I’를 어떨 때 ‘아이’로 읽고 어떨 때 ‘이’로 읽는지, 왜 때때로 읽는 법이 다른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커서 되고 싶은 것이 많은 정현이지만, 중3이 되면서부터 미래가 답답하고 불안하다. “요리사도 되고 싶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되고 싶어요. 춤추는 것도 좋아요. 경찰이 되고 싶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생각하면 한숨이 난다. “요리사도 요리만 하면 식당 아줌마가 되는 거잖아요. 유학도 가야 되고, 조리사 자격증 시험 보려면 공부를 잘해야 하잖아요. 영어도 해야 하고…. 내가 할 수 있을지, 뭐가 되긴 될 수 있을지 정말 앞이 깜깜해요.” 정현이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정현이는 공부를 하고 싶지만 너무 어렵다고 했다. “지금은 기초가 없어도 너무 없으니까, 자상한 선생님이 일대일로 가르쳐주면 어떨까 생각해요. 먹을 것도 많이 주시면서. 그러면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너무 지루하고 어려워서 공부는 못하겠어요.” 정현이는 6살 때부터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보육원에서 컸다. 정현이의 친엄마와 이혼한 아버지가 정현이를 보육원에 맡겼다. 어린 정현이를 집에 혼자 두는 게 걱정되고, 돌볼 여력이 없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버린 건 아니었다. 1~2주, 길면 한 달에 한 번씩 꾸준히 찾아와 맛있는 것도 사줬다. 정현이가 6학년 때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다시 함께 살게 됐다. 정현이는 아버지가 좋다. 다시 태어나면 부잣집에서 태어나고 싶지만, 아버지는 그대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새엄마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 그래서 집에 일찍 가기가 싫어 밖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밤 9~10시께 집에 들어간다. 진로 문제 등 고민이 꽤 늘었지만, 딱히 고민을 털어놓을 어른은 없다. 학교에 상담교사가 두 분 있지만, 친구들이 울면서 상담하러 가도 “종 쳤는데 뭐 하는 거야? 올라가”라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진지한 상담이 안 된다. 진로에 대한 상담도 어디에 가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막막하다. 비밀스런 얘기는 모두 친구들에게 한다. 믿을 건 친구들뿐이다. 고등학교 가서 이런 친구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정현이가 사는 지역에는 중학교가 12곳 있다. 지난해 이들 중학교에서 102명이 학업을 중단했다. 초·중·고교를 합하면 이 지역에서만 학업을 중단한 어린이·청소년이 500여명에 이른다. 특성화고(옛 전문계고) 진학 비율도 높아, 전교생의 절반이 넘는 52%에 이르는 학교도 있다. 이 지역의 한 청소년문화센터 관계자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가구 비율도 매우 높아 대부분의 학교가 정부의 지원을 받는 교육복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가난한 가정이 늘고 있어 청소년들의 삶이 참 팍팍하다”고 말했다. 정현이는 용돈을 벌기 위해 주말에 친구들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한다. 결혼식장 엘리베이터에서 층 버튼을 눌러주고 안내를 하는 ‘엘리베이터 걸’ 아르바이트는 일당이 4만~5만원이다. 고깃집에서 불판을 닦고 서빙을 하는 아르바이트도 종종 한다. 이 아이들이 원하는 건 뭘까. 정현이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고 말했다. “요리사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한테 요리사가 맞는 건지, 내가 노력하면 요리사가 될 수 있는지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학교 성적이 좋은 편에 속하는 최지은(가명·16)양은 “대학은 말할 것도 없고, 당장 고등학교에 가더라도 학비를 어떻게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은이는 인문계고에 갈 성적이 되지만 특성화고로 진학할 생각이다. 특성화고에서 공부를 잘하면 장학금을 받기가 더 쉽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요즘 학교에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전혀 못 받는다는 성혜지(가명·16)양은 “제가 좀 ‘날라리’라도 선생님들이 제 얘기에 귀 기울이고, 저를 좀 챙겨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늘 국어·영어·수학을 강조하고 성적이 나쁜 아이들에게는 ‘나머지 공부’를 시키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공부 외에 저마다 지닌 꿈을 실현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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