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부담으로 생계는 물론 학업·진로 등 생애 전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족 돌봄 청년’에 대해 정부가 처음으로 전국 실태조사에 나선다. 지속적인 지원으로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특별법도 추진한다.
보건복지부는 13일 제6차 청년정책조정위위원회를 열고 ‘가족 돌봄 청년 지원 대책 수립 방안’을 발표했다. 가족 돌봄 청년은 가족의 생계를 홀로 책임지며 장애나 정신·지체 질병, 약물 등을 겪고 있는 가족까지 돌보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중후반의 청년들로 일명 ‘영 케어러’(Young Carer)로 불린다. 지난해 5월 대구에서 22살 청년이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간병하다 치료비로 인한 생활고와 빚 독촉에 시달려 아버지를 숨지게 한 일이 발생하면서 국내에서 ‘복지 사각지대’로 조명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지원 대책을 내놓고, 구체적 추진 계획은 범부처 티에프(TF)구성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우선 현황파악을 위해 3월부터 전국 실태조사를 실시한다. 만 34살 이하까지 조사하되, 초기엔 청소년과 24살 미만 청년 발굴에 집중한다. 만 19살 미만에 대해선 중·고등학교와 학교밖청소년 지원센터·청소년 쉼터·청소년 회복지원시설 등에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19살 이상은 대학과 온·오프라인 청년센터, 고용복지플러스센터 등에서 설문조사를 벌인다.
5월부턴 조사로 발견한 가족 돌봄 청년들에게 기존 복지 제도를 즉각 지원한다. 정부가 명단을 취합해 각 지방자치단체에 전달하면, 지자체는 그동안 지원받을 수 있었지만 신청하지 못했던 노인장기요양보험, 기초생활보장제도(생계·의료·교육급여 등), 긴급복지 지원제도, 재난적 의료비와 같은 돌봄·생계·의료·학습 지원 제도와 청년들을 연결해주거나, 기존 제도 적용이 어려운 경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민간 자원과 연계하는 방식이다. 가족 돌봄 청년의 복지 정책 문턱을 낮추자는 것인데, 지금까지 가족 돌봄 청년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공무원에게 설명하다가 정부 지원 등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각종 법률·행정 업무를 무료로 상담해주거나, 자기계발 시간 확보를 위해 가족 돌봄 청년에게 가사 간병 지원 서비스 기준을 완화하는 등의 신규 시범사업도 추진된다. 정부는 서울 서대문구와 1월부터 관련 시범사업을 추진 중인데, 이 결과를 바탕으로 사업 모형을 전국으로 확산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정기적인 가족 돌봄 청년 발굴과 지원을 위해 특별법 등 법적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아동복지법과 청소년복지지원법, 청년기본법 등 기존 법률이 있지만 연령과 대상, 선정 기준이나 지원 내용이 각기 다르고 가족 돌봄 청년을 지원 대상으로 볼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다. 이에 복지부는 특별법 제도화 과정에서 가족 돌봄 청년 정의와 실태조사 근거, 기존 제도 특례 설정, 지속적인 지원 조치 마련을 위한 국가·지자체 의무 규정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권덕철 복지부 장관은 “어린 나이에 돌봄을 제공해야 하는 가족 돌봄 청년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첫 접근으로 그 의미가 크다”며 “가족 돌봄으로 청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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