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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기현의 ‘몫’] 인구변화 속 ‘영 케어러’의 의미

등록 2021-09-12 21:26수정 2021-09-12 21:40

조기현ㅣ작가

“자식들한테 돈 좀 달라고 했는데 돈만 축내는 사람 취급을 하더라고요. 나도 다시 벌면 벌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돌봄을 주제로 한 강의를 마치고 한 여성이 들려준 이야기에 나는 입이 다물리고 고개가 숙여진다. 딸, 아내, 며느리, 어머니로 불리며 일생 동안 가사, 육아, 돌봄을 이어온 것도 모자라, 노년에 가까워져서는 손주를 돌본다. 일도 돌봄도 쉬지 않았는데 어디 내놓아서 인정받을 경력이 없었다. 재취업으로 요양보호사를 택했다. 그에게 돌봄은 끝도 없이 주어지는 듯했다.

그의 이야기 앞에서 나는 내 주제를 파악하느라 급급해졌다. 아픈 아버지와 10년 정도 함께한 걸 가지고 돌봄에 대해 떠들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질 찰나, 오히려 그는 내 말에 공감했다며 나에게 위로까지 전한다. 그가 전해준 공감과 위로는 중장년 여성의 돌봄 경험과 청년 남성인 나의 돌봄 경험이 연결돼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해준다.

최근 나와 같은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 청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 청년을 지칭하는 영 케어러(Young Carer)를 주제로 취재 요청이 오는 경우도 잦아졌고, 정부 부처, 지자체, 민간기업까지 지원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진로 이행과 가족 돌봄을 병행해야 하는 영 케어러의 어려움에 공감을 표한다. 이렇게 주목받는 데는 청소년, 청년이 아픈 가족을 돌본다는 생경함이 큰 몫을 했을 듯하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일은 주로 중장년 여성의 일처럼 여겨져왔기 때문이다. 과연 영 케어러의 문제는 기존에 아픈 가족을 돌보던 중장년 여성의 문제와 동떨어져 있을까?

영 케어러는 청소년, 청년 문제인 동시에 돌봄 문제다. 지금 우리에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저출생, 고령화, 만혼화, 비혼화 등 인구 변화는 우리 삶이 일찍 돌봄을 마주할 조건이 될 수도 있다. 인구 변화 속에서 태어난 아이는 부모나 조부모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형제가 적거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픈 가족이 생긴다면 아이는 영 케어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청소년을 돌봄받는 시기로만 보거나 청년을 가정에서 독립하는 시기로만 본다면, 그들이 누군가를 돌보면서 겪는 어려움은 제대로 파악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영 케어러는 청소년, 청년 시기를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도록 해줄 듯하다.

반면 돌봄 문제로 영 케어러를 접근하면, 영 케어러는 새로운 관점을 필요로 하기보다 이전까지 돌봄이 취급돼왔던 맥락을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돌봄을 가정 내 사적인 영역에 가두고, 여성의 일로 치부하며 평가 절하해온 맥락이 청소년, 청년이 돌봄을 하게 되는 상황에도 반복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 케어러들을 직접 만나보면, 이혼하거나 어머니가 아프면서 공백이 된 가사와 돌봄의 역할을 상속받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영 케어러의 생애에서 돌봄 위기는 곧 성별 분업의 위기이기도 한 셈이다.

성별 분업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서 영 케어러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까? 영 케어러의 문제를 영 케어러‘만’의 문제로 여긴다면, 돌봄을 하는 청소년, 청년들을 돌봄에서 잠시나마 구해줄 수 있을지언정, 돌봄 그 자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불이익이 되는 세상은 변치 않는다. 하지만 돌봄은 우리 삶의 기반이다. 그 누구도 돌봄 없이 살아갈 수 없다. 백번 강조해도 모자람 없는 사실이지만, 백번을 강조해도 중요함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실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중장년 여성들의 돌봄 이야기 앞에서 입을 다물지도 고개를 숙이지도 않을 생각이다. 돌봄의 사회적 인정을 위해 우리가 동료 시민으로 마주해야 하는 이유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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