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뼈를 다쳐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장기요양등급 2등급을 받은 남예숙(76)씨가 지난달 21일 오전 인천 부평구의 자택에서 왼쪽 손바닥을 내보이며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인천/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돌봄은 가족이어도 때로는 지옥이 된다. <한겨레>가 1월14일부터 28일까지 만난 돌봄 가족 6명은 모두 벼랑 끝에 서서 국가 그리고 대선 후보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윤옥순(53)씨는 서울 은평구의 월세 20만원 다가구주택에서 치매를 앓는 91살 어머니를 5년째 돌보고 있다. 5남4녀를 키우면서도 마음이 바다같이 넓은 어머니였는데, 치매를 앓게 된 이후 다른 사람이 됐다. 늘 안절부절못하고 2~3시간마다 잠에서 깨어 소리를 지른다. 집안 여기저기와 심지어 윤씨에게 침을 뱉었고, 눈빛이 돌변하면서 입에 담기 힘든 욕설까지 한다. “치매 교육도 받아 보고 책도 읽어보고 심리상담도 받아봤어요. 교육 때 ‘치매는 병이지만 치매 환자는 인간이다’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런데도 처음 욕을 들었을 땐, 상상할 수 없는 욕을 하니까… 눈물이 나고 화가 나고,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내가 왜 욕까지 들으면서 엄마를 돌봐야 하지’ 생각했어요.”
섬망(과다행동과 환각 등이 나타나는 신경정신질환) 증상이 심한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긴 어려웠다. 학습지 교사로 벌이하던 윤씨는 그래서 방문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직접 어머니를 돌보기로 했다. 일을 하는 낮시간엔 어머니를 재가 사회복지시설인 주간보호센터에 10시간 맡기고, 나머지 14시간을 윤씨가 돌본다. 그러다 보니 윤씨에겐 하루도 쉬는 날이 없다. 하루 7시간 이상 자보는 게 소원이다. “오빠가 한 번 도와줘서 1박2일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5년 만에 처음으로 7시간 잠을 자고 왔거든요. 너무 좋았는데,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엉덩방아를 찧어서 허리 골절을 당했더라고요. 뒷감당이 너무 힘들었어요. 이러다 지쳐서 가족이 손을 놓아버리면 결과적으로 요양원이나 시설에 가야 하는데 사회적 비용이 더 발생할 수밖에 없잖아요. 가족들이 돌보며 최소한의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국가에서 돌봄 가족들에게 한달에 한번이라도 쉴 수 있게끔
해줬으면 좋겠어요.”
윤씨의 요구는 전국에 137곳뿐인 단기보호 서비스 기관 확충과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는 수급자의 가족에게 장기요양급여를 제공하는 가족요양급여
현실화다. 단기보호 서비스란 가족이 돌보기 어려울 때 한달에 최장 9일, 연간 4회 시설에 맡길 수 있는 제도다. 가족요양급여는 최대 지급액이 요양보호사가 받는 최대 급여의 59%에 불과하다. “가족이니까 당신들이 감당해야 한다는 거로 들려요.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이야 상관없겠죠. 그런데 경제 활동 하면서 돌봄을 병행해야 하는 사람들은 엄청 어려움이 있는 거죠. 단기보호 서비스 기관도 적은 탓에 대기자가 너무 많아요.”
왼쪽부터 돌봄가족 윤옥순씨, 돌봄가족 이성연(가명)씨, 돌봄가족 최미선(가명)씨
유치원 교사 정선희(가명·51)씨의 79살 어머니는 2017년 고관절이 망가져 수술을 했다. 수술 직후 상급종합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그나마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이용해 간병비 없이 입원료만 부담하면 됐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간병지원(병동지원·재활지원) 인력이 24시간 간병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런데 어머니가 요양병원 등을 오가게 되면서부터는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됐다. 간병인 1명이 6명의 환자를 돌보는 공동간병인 비용으로 월 200만원씩 썼다. 지난해 5월 어머니가 두번째 고관절 수술을 한 뒤로는 개인 간병인을 고용해야 했다. 욕창 때문에 2시간에 한번씩 몸을 뒤집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 간병인은 하루 11만원에서 20만원까지 들어가요. 한달이면 최소 330만원이죠. 지난 7개월 동안 간병비로만 2000만원은 썼을 거예요. 택시기사로 일하는 남동생과 함께 병원비까지 합쳐서 한달에 1000만원씩 쓰고 나니 정말 파탄이 났어요.”
정씨는 그동안 휴직 상태에서 남동생과 번갈아가며 어머니를 집에 모시기도 했다. 하지만 조만간 복직을 해야하는 상황이 됐다. 정씨는 공공요양시설 확충을 요구했다. “시설이 좋고 믿고 맡길 수 있는 지자체 요양원은 대기자가 몇백명이에요. 간병비를 건강보험에 넣어주든지 아니면 공공요양시설을 확충해주든지 해주세요.”
간병인을 구하지 못해 가족 돌봄으로 내몰리는 중증환자도 있다. 최미선(가명·64)씨의 남편은 2019년 갑자기 자가면역뇌염으로 쓰러진 뒤 부산 양산대병원과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5개월가량 입원했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길 때 간병인을 구하려 했지만, 기관삽관 튜브 등 여러 줄이 달린 남편을 본 간병인이 “못하겠다”고 했다. 시어머니 장례 때문에 급히 단기간 간병인을 구했는데, 환자 상태를 보더니 바로 비용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결국 직접 간병하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최씨는 보호자 의자에 앉아 밥을 먹다가도 삽관 튜브에서 가래가 끓으면 익숙한 듯 석션(기도에 막힌 이물질을 빨아들이는 치료)을 했다. “어느날부터 자꾸 토하고 싶고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저한테 위염이 생겼더라고요. 1년 정도 약을 먹었죠.”
최씨도 지난해 3월부터 석달 정도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이용했던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누가 갑자기 아플 줄 알고 대비하는 사람 없잖아요. 매일 건강한 날처럼 살지. 저 같은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아요. 그래도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을 하니 부담이 좀 덜 되더군요.”
오른쪽 편마비가 있는 남편을 간호·간병통합서비스로 돌본 이성연(가명·61)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다만 간호·간병통합서비스에서 재활지원인력으로 고용할 수 있는 요양보호사의 인력 비율이 요양보호사 1명당 환자 10명이라는 점이 문제다. 이씨가 “간병비 부담을 줄여주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참 좋지만, 요양보호사 인력을 늘려줘야 한다”고 요구하는 까닭이다. 재활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박준명(54)씨도 “재활지원인력이 1명당 환자 10명이면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며 “요양보호사 대부분이 60살 이상 고령인 점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요양보호사 1명당 환자 8명에서 요양보호사 1명당 환자 6명 비율까지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영 케어러 이채림씨, 영 케어러 전형민씨, 방문 사회복지사 최수복씨, 의사 박준명씨
☞윤옥순, 정선희, 최미선, 이성연, 박준명의 정책 요구: 가족요양급여 현실화, 단기보호 서비스 확충,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와 인력 확충, 공공요양시설 확충, 간병비용 건강보험 급여화
어린 나이에 갑작스럽게 쓰러진 가족을 돌보게 된 ‘영 케어러’(Young Carer)는 간병비 부담과 함께 돌봄 정보나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점을 고충으로 꼽았다.
이채림(20)씨는 지난해 3월 청각장애인인 어머니(45)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하루아침에 간병인이 됐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제빵사가 되기 위해 자격증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 역시 청각장애인이어서 초기 대처와 상급종합병원 이후 전원 상황 등을 모두 이씨가 맡아야 했다. “병원을 어디서 어떻게 알아봐야 하는지 누구에게 전화하고 입원 예약은 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이 안 났어요. 뇌질환 인터넷 카페에서 밤새 검색해 병원 후보를 뽑아서 무작정 전화를 돌리고 방문 상담까지 해야 했습니다.”
공사 현장에서 작업하다 추락해 외상성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69)를 6년 가까이 돌보고 있는 전형민(37)씨도 “간병 기간을 반추해보면 처음엔 형제나 친척에게 의존하고 병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간병인이나 시설에 의존하게 된다”며 “뜻밖의 사고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영 케어러를 위해 친족 외에 의존할 수 있는 지원체계, 돌봄을 부탁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채림, 전형민의 정책 요구: 간병비 지원, 영 케어러를 위한 지원체계 구축
요양보호사 유남미씨가 지난달 21일 오전 인천 부평구에 있는 남예숙(76)씨 자택에서 국을 끓이고 있다. 인천/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돌봄에는 장기요양보험제도에 소속된 요양보호사와 방문요양 사회복지사, 정부의 노인맞춤돌봄서비스에 소속된 생활지원사, 장애인을 돌보는 활동지원사와 제도 밖 간병인이 있다. 대체로 중장년 여성들이 맡는 이 직업군은 제도 안에 있든 밖에 있든 비정규직인 경우가 많고, 저임금으로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한다. <한겨레>가 만난 7명의
돌봄 노동자들은 “낭떠러지”(최수복), “끈끈이 바닥”(배연희) 등으로 자신의 노동을 표현했다.
남예숙(76)씨의 요양보호사 유남미(44)씨는 지난해 1월부터 인천시사회서비스원(사서원) 소속이 됐지만, 엄밀하게는 사서원 직속 인복드림종합재가센터 소속이다. 유씨는 사서원 요양보호사로 일을 시작할 때 월급 받는 정규직 일자리가 보장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여전히 월급제가 아니라 일하는 시간에 따라 임금을 받는다. 방문요양 4시간과 장애인 활동지원 3시간 등 하루 7시간 일해서 받는 돈은 월 180만원 정도다. “민간에서 돌보기 거부한 사람들을 도맡아서 돌보고, 코로나 긴급돌봄으로 감염 위험까지 감수하는데 언제까지 월급제 전환을 기다려야 할까요?”
지난해 9월부터 서울 사서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 김성순(56)씨는 유씨보다 적은 하루 평균 6시간 노동을 하는데도 월 196만원 기본급에 가족수당과 식대비, 교통비, 휴일근무 수당 등으로 월 260만원가량을 받는다. 유남미씨와 상황이 다른 건 지자체별로 운영 차이가 큰 탓이다. 14년가량 요양보호사로 일했지만, 요즘처럼 일이 자랑스러운 적이 없다. “민간 요양센터에서 일할 땐 일요일까지 일해도 소득이 월 180만원 될까 말까 했어요. 돌봄의 공공성을 확대해 안정적인 급여체계를 만들고 요양보호사의 전문성을 높여서 돌봄 종사자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으면 좋겠어요.”
요양보호사의 돌봄 빈자리를 메우는 방문요양 사회복지사도 비슷한 처지다. 2017년부터 재가방문요양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최수복(60)씨는 한달에 한번씩 30명 이상의 돌봄 대상자를 방문하고, 이들의 수급 계약 및 유지, 요양보호사 급여 관리 등의 행정 업무까지 도맡는다. 돌봄 대상자 방문은 밤에 해야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경력을 인정받지 못해 오래 일해도 월급은 제자리인 이들이 대부분이다. 최씨 역시 그랬다가 더는 일을 못 하겠다며 버티고 나서야 2년 경력을 인정받았다. “방문요양 사회복지사 64%가 한달에 최소 22시간 초과근무를 해도 아무런 수당을 받지 못해요.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적용 대상에 방문요양 사회복지사는 빠져 있거든요.”
왼쪽부터 요양보호사 유남미씨, 요양보호사 김성순씨, 생활지원사 배연희씨, 간호조무사 모현덕씨
정부 지원 대상이 아닌 독거노인을 돌보는 생활지원사의 처우는 더 열악하다. 3년 동안 대구에서 생활지원사로 일한 배연희(48)씨는 하루 5시간 동안 16~18명의 독거노인 집을 방문해 월 103만2680원을 받았다. 고독사 예방을 위해 안전·안부 확인만 하는 일반돌봄군과 달리, 중점돌봄군은 식사 관리와 청소 등 가사지원까지 한다.
그런데도 생활지원사는 1년 계약직이다. “1년이 되면 내가 (시의 민간위탁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재가돌봄센터에 밉보인 건 없는지 반성하면서 재계약 불안에 떨어야 해요. 나이가 들면 돈 벌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생각으로 참고 버티는 거지요.”
가장 열악한 건 소속 기관조차 없는
간병인이다. 이들은 병원에서 일하지만 고용주는 환자나 환자 보호자다.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직)다. 정부가 코로나19 백신을 의료진에게 가장 먼저 접종했을 때도 간병인은 제외됐다. “의료진도 요양보호사도 아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라는 게 간병인 문명순(65)씨의 말이다.
문씨는 간병인들이 열악한 환경이지만 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건 간병인을 하는 중장년 여성들 가운데 형편이 어렵거나 가장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환자나 환자 보호자들에게 폭언을 듣고 하대를 당해도 참고 일하는 까닭이다.
“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가 만들어질 때 간병인도 병원에 직고용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어요. 그런데 정부에서 돌봄을 민간에 맡겨버리는 바람에 문제가 커진 거예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거죠.”
☞유남미, 김성순, 최수복, 배연희, 문명순의 정책 요구: 돌봄 공공성 확대, 고용안정 보장, 경력인정, 임금체계 개선, 간병 제도화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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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hani.co.kr 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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