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에 시달리다 온몸이 마비된 아버지를 ‘간병살인’ 한 22살 청년이 항소심에서도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대구고법 형사2부(재판장 양영희)는 10일 “아버지를 퇴원시킨 다음날부터 죽게 할 마음을 먹고 죽을 때까지 의도적으로 방치하였다는 점이 인정돼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며 권아무개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권씨와 단둘이 살던 권씨 아버지(56)는 지난해 9월 뇌출혈로 쓰러져 온몸이 마비되면서 병원 치료를 받았다. 대학을 휴학 중이던 권씨는 삼촌의 도움으로 입원비를 낼 수 있었지만, 더는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돼 지난 4월 치료비 부담 등을 이유로 아버지를 퇴원시켰다. 약과 치료식을 챙겨주고 2시간마다 아버지의 자세를 바꿔주는 등 24시간 간병해야 했지만, 생활고와 빚 독촉에 시달리던 권씨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간병을 포기했다. 그의 아버지는 영양실조 상태에서 폐렴 등 증세로 5월8일 숨진 채 발견됐다.
검찰은 존속살해 혐의로 권씨를 기소했고, 1심 재판부는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권씨 쪽은 형량이 낮은 유기치사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과 같은 형량을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는 “어린 나이로 경제적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아버지를 기약 없이 간병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되자 미숙한 판단으로 범행을 결심하게 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감경 사유가 없는 한 법원이 선고할 수 있는 존속살해죄의 가장 낮은 형이 3년6개월인 점을 보면 원심이 무겁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최근 탐사보도 매체 <셜록>을 통해 권씨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정부 복지정책의 빈틈이 간병살인을 불렀다는 비판도 나왔다. 당사자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이나 긴급복지지원을 신청하지 않아도 수도나 전기가 끊긴 경우 등을 통해 위기가구를 미리 발굴해 지원하는 제도가 있지만, 권씨의 경우엔 권씨 아버지가 숨진 뒤인 5월10일에야 관할구청에 복지사각지대 발굴 명단이 통보됐다. 김인숙 대구 수성구청 생활보장과장은 “긴급복지지원은 신청만 하면 우선 지원이 이뤄져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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