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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인순이·윤수일·함중아 덕분에 혼혈문제 해결되었나?’

등록 2006-02-09 16:40수정 2006-02-10 02:27

하인스 워드와 한국인 어머니 김영희씨.(SBS스포츠)제공
하인스 워드와 한국인 어머니 김영희씨.(SBS스포츠)제공
혼혈인 “신드롬 일시적…문제 해결 도움 안돼, 제도 개선 필요”
지난 6일(한국시간) NFL 슈퍼볼(북미 프로미식축구리그 결승전)에서 하인스 워드(30)가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뒤 ‘워드 열풍’이 불고 있다. 언론은 앞다퉈 한국계 미국인인 워드의 삶을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고, 기업체들은 ‘워드 잡기’ 경쟁에 들어갔다. 뉴욕 한국문화원은 정부 차원의 예우를 건의했고,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은 훈장 포상을 제안했다. ‘워드’는 인기 검색어로 떠올랐으며, 휴면 상태이던 인터넷 팬카페 ‘고!! 하인즈 워드’에는 회원 가입이 줄을 잇고 있다.

한국방송도 11일 오후 8시 ‘KBS스페셜’을 기존 편성된 ’떠오르는 남미 좌파-태풍의 눈 차베스’ 대신 워드 선수 관련 내용을 취재해 방송할 예정이다. 케이블채널인 SBS스포츠채널은 워드의 NFL 수퍼볼 MVP 수상을 기념, 지난 8일부터 시작한 'NFL 특선 하인즈 워드 Top 5'를 12일까지 매일 밤 12시부터 오전 2시싸지 방영한다. 또 13일 오전 8시부터 미국 하와이 알로하스타디움에서 열리는 NFL 올스타전 ‘프로볼(Pro Bowl)'도 위성생중계한다 워드가 오는 4월2일 어머니 김영희씨와 함께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은 ‘워드 모자 모시기 경쟁’에 돌입했다.

한국사회가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천대받는 ‘흑인 혼혈인’으로 태어나 미국땅에서 차별과 멸시를 극복하고 ‘인생 역전’과 ‘코리안 드림’을 이뤘다는 데 있다. 아들의 성공에도 집 근처 고등학교 구내식당에서 월 60만원을 받고 일하는 그의 어머니 김영희(59)씨, 팔에 한글로 이름을 새겨넣을 만큼 뿌리를 잊지 않으며 남을 배려하는 워드의 인간성은 ‘스타’로의 충분조건을 갖췄다.

주요 신문, ‘워드’ 주요하게 처리하고 ‘혼혈’에 집중관심


각 신문들이 7일자 1면에 하인스 워드의 MVP 수상 기사를 실은 데 이어 9일 언론들은 다시금 관련기사를 쏟아냈다. <조선>, <중앙>, <동아>, <문화> 등은 워드의 인생 역정과 그의 어머니 김영희씨 인터뷰, 혼혈인에 관한 기사를 1면에 실은 뒤 별도의 해설기사를 내보냈다. <경향>과 <한겨레>는 워드 열풍과 혼혈인 문제를 칼럼에서 다루면서 ‘국내 혼혈인에 대한 시각을 바꿔보자’는 제안을 했다.

‘아메리칸 드림’인 하인스 워드의 성공 못지않게 ‘혼혈인’이 언론의 주관심대상이 된 것이다. <조선>은 1면에 실린 ‘혼혈 여고생 강민정양의 희망과 현실’ 기사를 통해 “(그녀의 말을 빌어) 백인 혼혈과 흑인 혼혈을 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있다”며 “대학도 가고, 디자이너로 성공하고 싶지만 한국에서 가능할까요”라며 한국 사회의 혼혈에 대한 이중적인 시각을 지적했다.

<중앙>은 40대 무명 흑인가수 제임스의 사례를 빌어, 혼혈인들이 놀림과 왕따 등을 당하면서 학력이 저하되고 취업시장에서 외면돼 가난이 되물림되는 현실을 짚었다. 또 프로축구팀 수원 삼성의 김준(20), 혼혈인 가수 박일준씨, 배우 다니엘 헤니와 이유진씨 등을 예로 들며 혼혈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의 변화와 함께 혼혈인 스스로 한국인으로서의 권리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화>는 혼혈가수 인순이의 인터뷰를 1면에 실었다.

<경향>은 이광훈 칼럼에서 “하인스 워드가 스타로 떠오르면서 혼혈인 차별을 반성하자는 소리가 높지만 1회성 웅변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며 “이 기회가 혼혈인들을 같은 혈육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불씨를 살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도 <한겨레> 기고를 통해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혼혈인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해왔는가를 돌이켜봐야 한다”며 “우리 의식 속에 있는 혼혈에 대한 편견을 직시하고 이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큰 사회문제에 부닥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누리꾼, “혼혈에 대한 편견부터 버리자” 맹성 촉구

“혼혈에 대한 차별 개선의 계기로 삼자.”

누리꾼들의 시각도 언론보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나친 ‘워드 열풍’을 경계하며, 이를 계기로 혼혈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를 반성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dkslkdf’는 <미디어다음>에 올린 글을 통해 “우리는 70~80년대 미군부대 주변의 여린으로 살면서 미군을 만나 애를 낳고 혼자 미국땅에서 어렵게 산 김영희씨를 비웃으며 손가락질했으면서도 그녀의 아들이 미국 사회에 주류가 되니 동포애를 들먹이며 친한 척 하고 있다”며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대목이며, 그 가식의 동포애를 벗어던질 것”을 주문했다.

<네이버>의 ‘가이(haguyha)’는 “하인스 워드가 뜨고 있지만 그가 미국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동남아 지역 같은 못 사는 나라에서 성공했다면 이토록 열광했을까”라며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혼혈인을 냉대하고 차가운 시선을 던졌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바뀌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토마> 논객 ‘이강산(nzauthor)’도 “만일 워드가 한국에서 자라야 했다면 오늘날처럼 미국 최고의 럭비 영웅으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묻고 싶다”며 “워드의 성공신화에 편승하기보다는 따돌림 속에서 생활하는 수많은 혼혈아동에게 손을 내미는 배려가 아쉽다”고 말했다.

<미디어다음>의 ‘mapother’은 “혼혈인과 외국인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분명 바뀔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고, 이외에 <네이버> 누리꾼 ‘nih1017’, ‘headoor’, ‘flyingy75' 등도 “편견을 버리자”, “혼혈아에 대한 비뚤어진 인식부터 바꾸자”, “워드 선수의 이야기가 혼혈인을 차별하는 의식을 고치는데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혼혈인 “신드롬 일시적…문제 해결 도움 안돼, 제도 개선 필요”
“혼혈 스타로 해결된다면 인순이 윤수일 나왔던 70·80년대 해결됐을 것”

언론과 누리꾼들이 하워즈 워드의 성공신화를 두고, 무조건적인 칭송을 하기에 앞서 한국 사회의 변화를 주문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단일민족이라며 순혈을 중시해온 한국사회에서 혼혈인은 ‘주변인’이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흑인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아동은 가혹한 시련을 겪어야 했고, 탤런트 이유진씨처럼 ‘혼혈’은 숨기고 싶은 비밀이었다.

전문가들은 혼혈인에 대한 인식이 점차 변화되고 있지만 미약한 수준이라며 ‘워드 신드롬’이 3만5천여명으로 추산되는 혼혈인에 대한 획기적 인식 전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이들이 지적한 것처럼 과연 혼혈인에 대한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을까. 혼혈인들의 시각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박근식 혼혈인협회 회장은 “워드가 부각된 점은 자랑스럽고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이 신드롬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며, 이것이 혼혈인들의 문제 해결까지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며 “혼혈 스타의 등장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됐다면 인순이 박일준 윤수일 함중아 등의 가수가 나왔던 70~80년대에도 가능했을 것”이라며 정치인들의 제도 개선 노력과 시민들의 혼혈인을 보는 시각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기철 국제가족한국총연합회 회장도 “한국계 혼혈인인 워드가 미국 인기스포츠에서 최우수선수(MVP)가 됐다면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그의 국내에 남아 있는 혼혈인에 대한 차별 시정이나 인식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며 “워드에 열광하기에 앞서 한국에서 차별받고 있는 혼혈인들에 대한 교육 등 국가가 적극적으로 제도 개선에 나서고 국민들의 인식도 바뀌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워드의 성공신화’ 한국에서는 불가능?

혼혈인 지원단체인 펄벅재단 이지영 간사는 “워드의 성공신화는 미국 땅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교육·취업·복지 등 구조적 차별에 시달리는 한국 내 혼혈인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너희도 워드처럼 성공해라. 그래야 인정받는다’는 식으로 몰고가는 것은 모순”이라는 게 이씨의 말이다.

어려서부터 교육에서 배제되고, 취업 등에서 차별을 받는 실정을 감안할 때 ‘한국에서 하인스 워드’가 나오기 힘든 이유다. 취학아동의 경우 여전히 왕따 등으로 학교 적응이 쉽지 않다. 간혹 외국인 학교에 들어갈 기회를 얻기도 하지만 가난이 되물림되는 상황에서 그것도 쉽지 않다. 성장해 취직을 하려 해도 기피대상이 되기 일쑤다.

이씨는 “워드는 미국 시민인데도 열광한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혼혈인은 그럴 기회를 가질 수 없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어 차이가 있다”며 “혼혈인 문제는 일부 혼혈인 연예인이 인기를 얻거나 하인스 워드 같은 사람이 주목받는다고 해서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시사평론가 진중권씨도 ‘진중권의 SBS 전망대’를 통해 ‘워드 열풍'을 소개하며 우리 사회의 뒤틀린 혼혈인 인식을 꼬집었다. 그는 9일 ‘진중권의 창과 방패' 칼럼 코너에서 “조만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 “워드 선수에게 국가적 차원의 예우를 해주자는 제안이 나오고 워드의 방한 때 명예시민증을 수여하자는 얘기도 나오는가 하면, 국내 항공사들은 워드를 모시기 위해 치열한 경쟁에 들어갔다는 보도도 있다”며 “진정으로 그를 예우하는 것은 혼혈인에 대한 사회의 차별을 철폐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워드 다루기’에 열중하고 있는 언론에 대해서도 “혼혈인을 차별하던 ‘인종주의적 옹졸함'이 미국 시민까지 한국인 예우를 해주자는 ‘국제주의의 통 큰 마음'으로 돌변한 것은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독특한 한국식 인생철학의 표현”이라며, “아무쪼록 워드 선수의 방문이 이 땅의 순혈주의 편견을 깨는 계기가 돼 혼혈인들이 모두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가진 한국인으로 불리는 시대를 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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