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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한국 불교계의 유별난 ‘폭력승’…“권력자와 충성 경쟁의 합작”

등록 2022-08-25 07:00수정 2022-08-25 08:52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비리 비판한
해고 종무원에 승려들 집단폭행
비폭력 본분 잊고 권승에 휘둘려
24일 경북 영천 은해사에서 열린 평화방생순례 행사장 앞에서 손상훈 참여불교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장이 봉은사 폭력행위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참여불교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 제공
24일 경북 영천 은해사에서 열린 평화방생순례 행사장 앞에서 손상훈 참여불교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장이 봉은사 폭력행위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참여불교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 제공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앞에서 승려들이 벌인 재가자 폭행은 불자들의 가슴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특히 피해자인 조계종 총무원 해고종무원 박정규씨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 행사 중에서도 가장 평화로운 방법인 1인 시위 도중에, 승려들이 욕설을 하고 인분을 뿌리고 집단폭력을 행사해 충격을 주고 있다. 박정규씨는 자승 전 조계종 총무원장 쪽의 총무원장 선거 개입을 비판하는 1인 시위를 벌이다 폭행당했다.

불교는 지구촌의 주류 종교 가운데 가장 비폭력적인 평화의 종교로 알려져 있다. 유일신 종교들이 ‘나 이외의 신을 믿지 말라’는 첫 계명을 명분으로 내걸고 이교도를 예사로 살해하고 폭행한 흑역사를 지닌 것과 달리, 불교는 ‘남의 목숨을 빼앗지 말 것’을 비롯해 ‘도둑질하지 말 것’ 등 도덕과 상식적 비폭력을 지향해왔다.

이 때문에 폭력이 난무하는 현대에도 승가는 세상을 견인하는 비폭력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티베트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수많은 승려를 살상한 중국 공산당에게조차 폭력을 써서는 안 되며 어떤 상황에서도 자비심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1월 열반한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 틱낫한 스님도 마틴 루서 킹 목사에 의해 ‘평화와 비폭력의 사도’로 불릴 정도로 평생 비폭력을 호소했다. 학살자 폴 포트 정권에 의해 가족들 대부분이 죽임을 당했던 마하 고사난다 스님도 평생 난민촌을 찾아다니며 “증오는 증오로 멈출 수 없고 오직 자비로써만 증오를 치유할 수 있다”고 하면서 캄보디아의 치유를 이끌었다.

지난 14일 서울 강남 봉은사에서 한 승려가 박정규 조계종 민주노조 기획홍보부장을 폭행하고 있다. 조계종 민주노조 제공
지난 14일 서울 강남 봉은사에서 한 승려가 박정규 조계종 민주노조 기획홍보부장을 폭행하고 있다. 조계종 민주노조 제공

이에 견줘 볼 때 한국 불교계에서 나타나는 폭력은 유별나다. 임진왜란 때 서산 대사, 사명 대사 등 승병들이 칼을 잡은 전례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표명했듯 ‘외적들의 침입으로 어육(생선)이 된 중생들을 구한다’는 대의명분이 있었다. 그런데 외적도 아닌 승가나 불자, 일반인들을 향한 승려들의 폭력성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불교학자들은 불교의 첫 출발이 ‘자기중심적 아상(我相)을 내려놓는 것’인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불교학자인 서재영 성균관대 유학대학 초빙교수는 “조계종이 소의경전(교과서)으로 삼는 <금강경>엔 부처님이 전생에 사지가 잘려나가는데도 아상과 같은 사상(네가지 상)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사지를 자른 가리왕에게 분노하지 않았다는 대목이 나온다”며 “한자로 ‘성낼 진’ 자가 ‘나만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거나’(嗔) ‘나만 옳다며 상대에게 눈을 부라리는’(瞋) 모습을 형상화했듯이, 폭력은 불교적으로 보면 강고한 아상으로 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폭행승은) ‘총무원장 선거에서 단일 후보를 추대해서 갈등 없이 넘어가는 게 바람직한데 왜 이렇게 소란을 일으켜 종단을 시끄럽게 하느냐’는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이를 위해 폭력이란 수단을 썼다면 어불성설”이라며 “자영업자가 아르바이트생한테 갑질을 해도 난리가 나는데 집단폭행이라니,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서울 강남 봉은사에서 승려들의 집단폭행으로 쓰러져 있는 박정규 조계종 민주노조 기획홍보부장. 조계종 민주노조 제공
지난 14일 서울 강남 봉은사에서 승려들의 집단폭행으로 쓰러져 있는 박정규 조계종 민주노조 기획홍보부장. 조계종 민주노조 제공

또 승보(스님을 보배롭게 여김)만 중시하고 상대적으로 재가자, 특히 총무원이나 절에서 종사하는 종무원들을 함부로 대하는 승가의 갑질 문화가 폭행뿐 아니라 잦은 언어폭력과 성폭력을 낳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박경준 전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는 “이승만 정권 때 비구-대처 간 절 뺏기 싸움에 폭력배들이 동원되고, 5·16 쿠데타 이후 소탕을 피한 폭력배들이 절집으로 피신 출가를 하면서 성스런 영역이 무너졌다”며 “작금의 폭력은 불교 권력이 1인에게 모아지고, 그 1인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충성 경쟁에서 비롯된 성격이 짙다”고 비판했다.

이번 폭력 사태는 9년 전 조계종 막후실세로 군림하는 자승 스님 비판 기자회견을 하려다 총무원 청사 건물 지하로 끌려가 집단폭행을 당한 적광 스님 사건의 재판으로, 종교 권력과 하수인들에 의한 구조적 폭력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조계종의 한 중견 스님은 “종단에 폭력 행위 등을 처벌하는 호법부가 있지만, 권승의 편에서 반대편은 가혹하게 처벌하고, 권승에 줄을 서면 무슨 짓을 해도 솜방망이 징계를 하거나, 오히려 종단에서 승승장구하게 되면서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풍토가 조성됐다”며 “결국 달도 차면 기울듯 서의현 전 총무원장이 끝내 심판을 받았던 것처럼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차의 끝은 명약관화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24일 경북 영천 은해사에서 열린 평화방생순례 행사를 끝내고 자승 스님(왼쪽 줄 맨 앞) 등 참가자들이 걷기 순례를 하고 있다. 참여불교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 제공
24일 경북 영천 은해사에서 열린 평화방생순례 행사를 끝내고 자승 스님(왼쪽 줄 맨 앞) 등 참가자들이 걷기 순례를 하고 있다. 참여불교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 제공

한편, 24일 경북 영천 은해사에서는 자승 스님이 회주로 있는 상월결사 주도로 평화방생순례 행사가 열렸다. 차별 없는 생명 존엄의 가르침이 내 마음의 평온에서 시작되니, 인류 평화를 위해 걷기 수행의 마음방생을 하자는 취지다. 불교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센터장 손상훈)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이날 은해사 앞에서 “봉은사 집단폭행에 대한 참회 없는 평화방생 걷기는 허구이자 쇼”라고 비판하며 시위를 벌였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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