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편집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달 26일 첫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전후해 수많은 언론보도가 이어졌다. 팬데믹 종료에 대한 희망과 백신에 대한 우려가 엇갈렸고, 접종 이후에는 이상 반응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다. 지난 8일 오후 4시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회의에서 9기 열린편집위원회 위원들은 백신 보도 홍수 속에서 <한겨레>의 보도는 어떠한지 짚어봤다. 회의에는 김민정 시민편집인 겸 열린편집위원장(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경미 위원(섀도우캐비닛 대표), 김준범 위원(한라홀딩스 부사장), 임자운 위원(법률사무소 지담 변호사), 홍윤희 위원(장애인이동권컨텐츠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황세원 위원(일in연구소 대표)가 참여했다. 한겨레에서는 이봉현 저널리즘책무실장과 김영희 총괄부국장, 정환봉 소통데스크가 함께했다.
김민정 오늘 집중적으로 이야기할 주제는 백신 보도다. 백신 보도에서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은 백신의 효능과 종류, 접종 뒤 진행 상황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이다. 백신 접종 이후 이상 반응에 대해 단순히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식이 아니라, 그 사망이 백신과의 연관이 있는지 신중하게 밝히는 보도로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중대한 역할을 언론이 맡고 있다.
한겨레가 그런 기본적인 역할을 큰 틀에서는 무리 없이 수행해오고 있다고 평가한다. 다른 언론과 다르게 이상 반응에 대해 ‘기저 질환이 있는 경우였다’, ‘백신과 직접적 관련성은 밝혀지지 않았다’ 등을 신중하면서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도 있다. 3월2일 김우재 박사의 ‘목수정의 반계몽주의’라는 칼럼이 있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목 작가가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백신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을 비판하는 칼럼이었다. 그리고 이틀 뒤 목 작가의 반박 기고문을 실었다. 정확한 실체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방해하며 음모론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조였다.
반론권 보장 차원이라지만 이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백신 불안감이 높은 상황에서 이 기고문을 싣는 것이 적절하고 타당했는가, 기고문을 게재하면서 한겨레의 입장을 더 명확히 하거나 해당 주장이 얼마나 합당한지 짚어주는 역할을 함께 해야 했던 것 아닌가 한다.
황세원 독자들은 백신이 얼마나 안전한가에 대해 궁금할 수밖에 없다. 한겨레도 이를 검증하는 보도를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해 토론을 붙여보는 기사 등 적극적으로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주진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기자들은 많은 전문가나 질병관리청 등에 자세히 물어볼 수도 있지 않나. 사실 백신 보도에 있어 좀 무색무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심층적인 보도가 있은 뒤에 목 작가의 기고가 있었다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고 오피니언면에서 날 선 생각들이 오고 가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김경미 목 작가의 시각에 대해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이를 검증하는 후속 기사가 없이 끝나버린 것이 아쉽다. 관련 논란을 정리를 해주고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두 사람에게 맡긴 느낌이다. 그래서 여전히 논쟁은 남아 있고 에스엔에스에서 토론하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판단을 하는 방법밖에 남지 않아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임자운 어떤 의견을 공론의 장에 올릴지에 대한 게이트키핑은 언론사가 해야 한다. 칼럼이기 때문에 ‘본지의 입장과는 다르다’는 주장으로 물러설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건 굉장히 무책임한 행동이다. 물론 한겨레가 그런 태도를 취해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렇다면, 목 작가가 제기하는 의혹에 대해 한겨레가 논쟁할 주제라고 가치판단을 했다고 독자들은 생각하게 된다. 그런 판단이었다면 굉장히 위험하다고 본다. 이를 하나의 의견이라고 공론의 장에 올리는 순간 간절한 염원 아래서 신뢰하고 협조해야 할 정책적 판단에 대해 불신과 과도한 의혹을 불러일으켜 위험한 상황을 가져올 가능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홍윤희 앞선 말들에 대부분 동의한다. 지난해 백신뿐 아니라 코로나19가 정쟁화되면서 미국은 <엔피아르>(NPR·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복스> 같은 곳에서 과학 전문 기자들과 역사 전문 기자들이 합심해 많은 조사 리포트를 내놨다. <애틀랜틱>지는 마이클 오스터홈(미국 미네소타대학 전염병연구정책센터 소장)과 같은 유명한 학자들의 기고를 주기적으로 받아 코로나19 위험에 대해 아주 정확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과학적 의견을 많이 제시했다. 특히 의학·과학 관련 글을 받을 땐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으면 한다.
김경미 감염병 등의 전대미문의 문제가 있었을 때는 정쟁화하지 않고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우리에게 없는 시스템을 새로 만드는 방향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하지만 한겨레 역시 백신 이슈를 대통령 지지율이나 레임덕 등과 연동한 듯 보도한 사례가 눈에 띄었다. 정부가 백신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면밀하게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한 대통령 지지율 보도라면 모르겠지만, 백신과 지지율을 바로 연동하는 보도는 아쉬움이 있다.
김준범 백신 보도도 그렇고 코로나19 이슈를 다룰 때 과학적인 보도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 목수정 작가를 비판하는 칼럼 역시 과학적인 반박 내용이 담긴 것은 아니었다. 제목에 ‘반계몽주의’라는 표현이 나올 이유가 있나 싶었다. 목 작가 의견이 문제가 있다면 백신 전문가의 의견을 통해 반박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보도가 많이 없고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전문가처럼 이야기하는 내용이 실리다 보니 상황이 호도되는 느낌이다.
임자운 코로나19 같은 전 사회적 위기가 오면 언론이 어쨌든 이 위기만큼은 빨리 안전하게 극복하자는 분명한 방향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저널리즘을 떠나 하나의 사회구성원으로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한겨레가 더 간절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백신은 불확실한 것이 맞다. 안정성이 100%라고 전문가 중에서도 누구도 말을 못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이 최선이라고 판단을 내린 것이고, 불확실성을 감내해서라도 접종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 훨씬 이롭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 불확실성을 정파적으로 이용하는 언론들이 너무 많다. 그 언론과 ‘다른’ 한겨레 정도가 아니라 ‘싸우는’ 한겨레를 기대한다.
김민정 허위정보와 백신의 정쟁화와 싸우면서 한겨레가 우리 사회 코로나19 대응의 질을 높이는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편 이제는 정부가 지금까지 해왔던 방역 및 확진자에 대한 의료서비스와 백신 접종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 상황에서 방역당국이 충분한 재원과 자원을 마련하고 있는지, 이후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한겨레가 미리 짚어주는 보도를 해주면 좋겠다. 접종 현황 등 사실에 대한 기사가 많았고 집단면역이 형성되는 시점까지 우리가 어떻게 버텨나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하는 기사는 부족했다.
홍윤희 의사들은 누가 접종 후 사망했다고 하면 어떤 기저 질환이 있는지 제목에 꼭 붙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속보라고 하고 ‘60대 여성, 백신 맞고 사망’이라고만 적으면 백신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는 그런 기본적인 원칙은 잘 지키는 것 같아서 칭찬한다.
김영희 이번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관련한 이상 반응 기사와 관련해서는 편집국에서 기저 질환 같은 정보를 제목에 넣자고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전반적으로는 1년 전부터 코로나19 보도에 대해서는 신중하고, 안전이 우선이라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자극적인 표현, 단어들을 지양하자고 내부에서 얘기하고 있다.
목 작가의 글은 반론 차원에서 실은 것이지만, 담당 기자들도 위원들과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다. 공론의 장의 게이트키핑 기준을 정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고 때때로 느낀다. 늘 한겨레에서 나오는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를 통해 좀 더 논쟁의 폭을 넓혀보자는 ‘유혹’이 있는데, 그렇게 접근해선 안 되는 주제 또한 있는 법이다. 가짜뉴스 반박은 어디까지 해야 할지 어떻게 할지 더 고민해보겠다. 이번주부터 백신에 관해 독자들이 물어보면 답을 하는 코너(백·알·맞 Q&A)를 시작한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김민정 백신 외에도 이슈가 많은 한 달이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 이후 검찰 인사,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사의, 윤석열 검찰총장 사퇴라는 이슈도 있었다. 스포츠계 폭력, 연예계 학교폭력, 쿠팡 미국 상장 등 다양한 주제들도 있었다.
황세원 지금은 차분해지긴 했지만 당시에는 라디오와 종편에서 검찰 인사나 민정수석 이야기만 나왔다. 이렇게까지 다룰 일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런 것에 비하면 한겨레가 기사를 쏟아낸 수준은 아니었지만, 중요하게 보도를 한 것 같기는 하다. 민정수석이 검찰 인사에 관여하는 것이 맞느냐는 것은 판단이 어렵다.
다만 더 본질적인 문제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다. 공직자가 자신의 진짜 소속을 따로 두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민정수석이 원래 검찰만 챙기는 자리는 아닌데 마치 그런 것처럼 되었다. 신현수 전 수석도 이번 정부가 임명한 사람이다. 그런데 왜 이 사람은 자기 소속이 검찰인 것처럼 행동할까, 왜 그런 사람에게 공직을 주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임자운 검찰 인사와 관련한 기사 내용 상당 부분이 검찰 내부 분위기에 근거한 비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범계 장관의 인사가 문제가 있다면 검찰 내부가 아닌 외부의 평가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수사 행태에 문제가 있다면 객관적으로 드러난 구체적인 문제를 지적해주면 좋겠다.
김영희 외부 시각을 담는 문제 관련해서는 그날 하루에 모든 평가가 이뤄질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이 지검장은 검찰 내부에서 리더십이 작동하기 어려운 처지라는 게 그동안 여러가지 상황에서 지적돼왔다. 그런 내용을 전달하다 보니 일요일 인사 당일은 내부 이야기를 중심으로 쓰고 외부의 시각을 담는 데는 미흡했다.
김민정 쿠팡 미국 증시 상장에 대한 보도도 이야기가 많았다.
김준범 다른 신문과 달리 쿠팡이 미국 증시 상장을 위한 낸 증권신고서를 꼼꼼히 체크해 이슈를 뽑아낸 것은 굉장히 잘한 것 같다. 아쉬웠던 점은 쿠팡이라는 회사가 이만큼 언론의 관심을 받을 만큼 대단한 회사냐는 것이다. 한겨레도 그런 지적을 하긴 했다. 전체적으로는 다른 언론과는 달리 중요한 포인트를 잘 짚어줬다고 본다.
홍윤희 한겨레가 쿠팡 증권신고서를 꼼꼼히 봤던 이유는 쿠팡 노동 이슈를 집요하게 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있는 사람 눈에만 보이지 않나. 한 아이아르(IR·기업활동) 전문가는 한겨레 기사를 보고 관심이 있기 때문에 이런 보도가 나왔다고 이야기했다. 쿠팡 배달원 노동 등의 문제는 계속 이슈가 될 것이기 때문에 한겨레가 집요하게 취재하는 것을 아주 긍정적으로 본다. 그래서 큰 이슈에서 놓치기 쉬운 부분을 놓치지 않고 새롭고 정확한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김민정 여성의 날을 맞이해 15개 면을 특집으로 구성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다른 언론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시도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녹취 설선정
■ 열린편집위가 뽑은 ‘이달의 좋은 기사’
쿠팡 미국 상장에 대한 차별화 보도 돋보여
성추행 동화 작가 끈질긴 추적 호평
9기 열린편집위원들은 2021년 2월 <한겨레>가 생산한 콘텐츠 가운데 15개를 ‘좋은 기사’로 추천했다. 이 가운데 위원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기사는 ‘“쿠팡이츠 배달원, 노동자 아니다”…쿠팡, 정부 내세워 명시 논란’과 ‘베일 벗은 쿠팡…자금 조달방식·경영·기업문화 모두 미국식’ 등 쿠팡 미국 증시 상장 관련 기사였다. 이 기사를 추천한 김준범 위원은 “다른 언론이 차등의결권 이야기만 하는 동안 <한겨레>는 증권신고서를 분석해서 중요한 이슈를 다른 시각으로 잘 다뤘다. 배달원 노동자성 쟁점도 의미 있는 포인트를 잘 잡아냈다”고 평가했다.
1.
“쿠팡이츠 배달원, 노동자 아니다”…쿠팡, 정부 내세워 명시 논란 외
박태우 전국팀 기자, 박준용·선담은 사회정책팀 기자, 박수지 산업팀 기자
심사평: “배달원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한국 정부가 판단했다는 쿠팡의 증권신고서 주장이 지방노동청에 접수된 진정 사건 처리 결과에 지나지 않은 점을 잘 지적했다.” “쿠팡의 미국 상장에 대한 차별화된 분석이 돋보였다.”
2.
‘서연이 시리즈’ 동화작가 ‘아동 성추행’ 징역 2년6개월 수감 외
최우리 기후변화팀 기자
심사평: “2018년 하반기부터 취재하던 사건을 팀을 옮기고서도 끝까지 놓치지 않고 보도한 담당 기자의 끈질김이 돋보였다.”
3.
‘최숙현 사건 그후’ 기획
이준희 탐사팀 기자
심사평: “배구계 폭력 문제가 불거지기 이전에 나온 보도로 고질적인 체육계 폭력 문제를 잘 짚어냈다.”
4.
“국가채무비율만 보는 재정, 성장률·금리 등 종합적 고려해야”
이정훈 경제팀 기자
심사평: “다른 언론들이 재난지원금, 소상공인 지원과 관련해 ‘재정균형’을 절대적 기준처럼 보도하는 가운데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달해 논의의 지평을 넓혔다.”
5.
‘거리 청소년’ 위한 단 하나의 천막, 설에도 쉬지 않는다
하어영 토요판팀 기자
심사평: “팬데믹과 방역 행정의 사각지대에 있는 거리 청소년의 상황을 자세히 전달했고, 특히 여성 청소년의 어려움을 잘 짚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