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3년 언론장악
#지난해 10월12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발표하자 그전까지 검인정 강화를 주장하던 조·중·동이 ‘이왕 만들 거면 제대로 만들자’며 국정화 옹호로 돌변했다. 최고권력자의 뜻을 확인하고 호위무사로 나선 것이다. 종합편성채널(종편)과 지상파 방송들도 국정화 반대 여론이나 학계의 집필거부 선언 등은 외면한 채 ‘올바른 역사교과서’라며 정권의 나팔수로 나섰다. 새누리당이 국정화를 지지하고 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들은 찬성 집회를 잇따라 열었다. 정부 발표 뒤 일주일 동안 지상파가 정부·여당의 입장을 반영한 보도는 17건, 반대 여론 보도는 1건이었다. 종편은 지상파보다 훨씬 많은 보도를 쏟아냈으며, 국정화 반대 여론에 대한 이념 공세가 주를 이뤘다.
박근혜 정부 들어 한국 사회 담론의 장은 보수세력의 목소리로 대통합을 이루며 이른바 ‘담론 복합체’가 굳건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담론 복합체’는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퇴임 연설 때 위험성을 경고한 ‘군산 복합체’에서 차용한 것으로 ‘복합체’는 특정 이익집단의 유착관계를 뜻한다. 한국 사회에서의 담론 복합체는 조·중·동 등의 주류 보수신문과 이들이 대주주인 종편, 지상파 방송, 통신사인 <연합뉴스> 계열을 아우르는 언론권력의 어젠다가 새누리당과 관료·재벌·법조계, 친미·반공주의 등 극우보수세력들과 카르텔을 형성하며 가동되고 있다. 담론 복합체 개념을 제시한 김성해 대구대 교수(신문방송학)는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언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조·중·동과 지상파 방송에서 이야기하면 의회에서 받아 어젠다가 확산되는 구조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구조를 철저하게 정권의 목적에 종속시키고 있다”고 짚었다. 비판적 여론을 철저히 무시하는 박근혜 정부의 독주를 ‘보수 언론 카르텔’이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구조다.
■ 위기 때 빛을 발하는 ‘담론 복합체’
담론 복합체는 경제·노동·대북 관련 위기를 만나거나 선거를 앞두고 더 빛을 발하게 된다. 개성공단 중단 조처처럼 정부가 이슈를 발표하면 보수언론들이 검증 대신 받아쓰기를 하고, 이를 국회에서 재생산하면 극우세력들이 다시 분노를 자극해 특정 어젠다를 관철시키는 구조가 일사불란하게 작동한다. 이런 복합체 구도 속에 사회적 약자에게 주목하거나 권력을 비판하는 진보매체 등의 대안 목소리는 외면당하거나 묻힐 수밖에 없다.
미디어판을 친정부 보수성향 세력이 장악한 것은 지난해 말 발표된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뉴스 생산자를 기준으로 지상파 3사, 종편 및 4사, 보도채널 2사 등 총 9개사의 복합매체계열(신문·통신 포함)의 여론영향력 점유율은 80.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76.1%, 2014년 77.4%에 이어 계속 확대되는 추세로, 종편·보도채널 계열의 뚜렷한 성장세에 힘입은 것으로 평가된다. 종편의 등장이 담론 복합체 강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영욱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지상파와 연합뉴스 계열의 영향력이 합쳐서 50%, 종편이 30%로 미디어가 친정부 일색이다. 정부·여당은 아직 완전히 통제되지 않은 포털이나 통제권 밖에 있는 팟캐스트까지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박근혜 정부가 이렇다 할 정책 수단도 쓰지 않고 언론을 장악한 것도 주목된다. 사실 박근혜 정부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미디어정책을 내놓은 게 없다. 이명박 정부가 신문·방송 겸영 허용을 통해 미디어 생태계를 흔들며 언론을 장악한 토양 위에 ‘이명박근혜’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방송계의 한 인사는 “박근혜 정부가 유일하게 한 것은 조직개편 때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미래창조과학부를 나눈 것밖에 없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공약도 흐지부지되고, 아이피티브이법을 통합하는 방송법도 지난해 가을 정부 입법 뒤 국회에서 유야무야 시간만 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첫해 대국민 담화에서 “방송 장악은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청와대가 길환영 <한국방송>(KBS) 사장을 통해 보도를 일상적으로 통제했다는 김시곤 전 한국방송 보도국장의 폭로로 공영방송 장악 의도가 드러난 바 있다.
지상파·종편·보도채널 계열 9곳
여론영향력 점유율 증가…현재 80% 법조인·뉴라이트 출신 등
정권 충성도 높은 인사들 낙하산
KBS·MBC·방통위·방심위 장악 정부비판 시사프로 제작 사라지고
사후엔 정권 유불리 따져 편파 심의 ■ 친정권 인사로 언론 길들이기 현 정부의 언론 통제는 정책보다는 인사를 통해, 인사도 전문성보다 충성도를 앞세우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 선임권을 지닌 방송통신위원장에 방송·통신 문외한인 최성준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바로 앉혔다. 그는 이른바 ‘<문화방송>(MBC) 백종문 녹취록’으로 드러난 최승호 피디와 박성제 기자의 부당해고 등에 대해 “개별사 노사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 공안검사 출신인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도 백종문 녹취록의 내용이 사적 모임에서 나온 것이라며 관리감독기관으로서 개입에 선을 긋고 있다. 방송·통신 내용을 심의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함귀용 위원은 공안검사 출신으로 청와대가 추천한 코드인사다. 법조인에 이어 편향된 역사관의 뉴라이트 출신들도 대거 발탁됐다. 이인호 한국방송 이사장과 조우석 한국방송 이사가 뉴라이트 계열이다. 대선 캠프 출신의 박효종 방심위 위원장도 뉴라이트이다. 최근 선임된 <교육방송>(EBS) 감사도 뉴라이트 지지 언론인인 배인준 전 <동아일보> 주필이다. ‘산업화 대 봉건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언론 장악 특성을 비교한 말이다. 이명박 정부는 시장주의와 산업진흥 위주로 정책을 펼쳤다. 에스케이텔레콤의 씨제이헬로비전 인수합병도 이명박 정부라면 산업논리에 맞춰 합병을 허용했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의 모호성에서 보이듯 원칙이나 기류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재영 충남대 교수(언론정보학)는 “박근혜 정부의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나 한국방송 이사 등 인사를 보면, 같은 낙하산이어도 의리인지 불안심리에서인지 상식 밖의 사람들을 앉히고 있어, 근대 이전 봉건제로 회귀한 통치방식의 봉건 영주 같다”고 꼬집었다. ■ 정권에 유불리 따져 ‘정치 심의’ 이런 인사로 구성된 방통위나 방심위에서는 합의제 정신이 사라지고 청와대 입맛을 고려한 다수결 원칙만 횡행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방심위는 3기 구성(2014년 6월) 초기엔 위원들이 합의를 이끌기 위한 노력이 엿보여 “조정력이 살아났다”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종편 봐주기와 정권 유불리를 따지는 편파 심의가 되풀이되고 있다. 한국방송의 다큐멘터리 <뿌리깊은 미래>에 대해 학계에서 인정된 내용을 근거로 다뤘음에도 ‘한국전쟁에 왜곡된 역사 인식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이른바 좌편향이라며 중징계를 내렸다. <티브이조선> <채널에이> 등 종편 시사프로그램 출연진이 검증 없이 쏟아내는 막말에는 행정제재 등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져 이중잣대라는 비판이 나온다. 심의 의결구조가 여야 ‘6 대 3’이어서 ‘정부 편들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종편의 ‘인큐베이터’ 노릇을 했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보육사’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종편에 대해 직접적인 지배력이 미치지 않지만, 이런 식의 뒷배 봐주기로 친정권적인 보도를 유도함으로써 담론 복합체의 일원으로 단단히 붙들어놓는 것이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는 “미디어를 통해 사회의 여론 다양성과 문화적 창의성을 진작하도록 정부가 거들어야 하는데, 최대 현안인 문화방송 사태는 뒷전인 채 인사로 조직 기강 잡기와 통제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그는 현 정부의 미디어정책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언론 관련 주무부처가 방통위, 미래부, 문화체육관광부, 언론재단 등으로 나뉘어져 정책을 일관되게 점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여론영향력 점유율 증가…현재 80% 법조인·뉴라이트 출신 등
정권 충성도 높은 인사들 낙하산
KBS·MBC·방통위·방심위 장악 정부비판 시사프로 제작 사라지고
사후엔 정권 유불리 따져 편파 심의 ■ 친정권 인사로 언론 길들이기 현 정부의 언론 통제는 정책보다는 인사를 통해, 인사도 전문성보다 충성도를 앞세우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 선임권을 지닌 방송통신위원장에 방송·통신 문외한인 최성준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바로 앉혔다. 그는 이른바 ‘<문화방송>(MBC) 백종문 녹취록’으로 드러난 최승호 피디와 박성제 기자의 부당해고 등에 대해 “개별사 노사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 공안검사 출신인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도 백종문 녹취록의 내용이 사적 모임에서 나온 것이라며 관리감독기관으로서 개입에 선을 긋고 있다. 방송·통신 내용을 심의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함귀용 위원은 공안검사 출신으로 청와대가 추천한 코드인사다. 법조인에 이어 편향된 역사관의 뉴라이트 출신들도 대거 발탁됐다. 이인호 한국방송 이사장과 조우석 한국방송 이사가 뉴라이트 계열이다. 대선 캠프 출신의 박효종 방심위 위원장도 뉴라이트이다. 최근 선임된 <교육방송>(EBS) 감사도 뉴라이트 지지 언론인인 배인준 전 <동아일보> 주필이다. ‘산업화 대 봉건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언론 장악 특성을 비교한 말이다. 이명박 정부는 시장주의와 산업진흥 위주로 정책을 펼쳤다. 에스케이텔레콤의 씨제이헬로비전 인수합병도 이명박 정부라면 산업논리에 맞춰 합병을 허용했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의 모호성에서 보이듯 원칙이나 기류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재영 충남대 교수(언론정보학)는 “박근혜 정부의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나 한국방송 이사 등 인사를 보면, 같은 낙하산이어도 의리인지 불안심리에서인지 상식 밖의 사람들을 앉히고 있어, 근대 이전 봉건제로 회귀한 통치방식의 봉건 영주 같다”고 꼬집었다. ■ 정권에 유불리 따져 ‘정치 심의’ 이런 인사로 구성된 방통위나 방심위에서는 합의제 정신이 사라지고 청와대 입맛을 고려한 다수결 원칙만 횡행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방심위는 3기 구성(2014년 6월) 초기엔 위원들이 합의를 이끌기 위한 노력이 엿보여 “조정력이 살아났다”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종편 봐주기와 정권 유불리를 따지는 편파 심의가 되풀이되고 있다. 한국방송의 다큐멘터리 <뿌리깊은 미래>에 대해 학계에서 인정된 내용을 근거로 다뤘음에도 ‘한국전쟁에 왜곡된 역사 인식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이른바 좌편향이라며 중징계를 내렸다. <티브이조선> <채널에이> 등 종편 시사프로그램 출연진이 검증 없이 쏟아내는 막말에는 행정제재 등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져 이중잣대라는 비판이 나온다. 심의 의결구조가 여야 ‘6 대 3’이어서 ‘정부 편들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종편의 ‘인큐베이터’ 노릇을 했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보육사’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종편에 대해 직접적인 지배력이 미치지 않지만, 이런 식의 뒷배 봐주기로 친정권적인 보도를 유도함으로써 담론 복합체의 일원으로 단단히 붙들어놓는 것이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는 “미디어를 통해 사회의 여론 다양성과 문화적 창의성을 진작하도록 정부가 거들어야 하는데, 최대 현안인 문화방송 사태는 뒷전인 채 인사로 조직 기강 잡기와 통제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그는 현 정부의 미디어정책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언론 관련 주무부처가 방통위, 미래부, 문화체육관광부, 언론재단 등으로 나뉘어져 정책을 일관되게 점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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