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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쪽 자료에 질문은 너덧개…담당자 통화는 ‘별따기’

등록 2007-05-23 21:04수정 2007-05-24 01:15

이낙연 민주당 의원(맨 왼쪽)과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왼쪽 두번째)이 23일 국회 브리핑룸인 정론관에서 기자실 통·폐합 등 정부의 언론정책에 반대하는 언론인 출신 의원 7명의 입장을 밝힌 뒤, 보도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이낙연 민주당 의원(맨 왼쪽)과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왼쪽 두번째)이 23일 국회 브리핑룸인 정론관에서 기자실 통·폐합 등 정부의 언론정책에 반대하는 언론인 출신 의원 7명의 입장을 밝힌 뒤, 보도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선진화’된 기자의 하루
브리핑 후딱하고 사라져도 따라가 물어볼 수 없어
수십개 언론사 전화취재 매달리고 통화돼도 답변 부실

2007년 9월10일 오전 9시50분. 과천 정부청사 1층 브리핑 룸에 도착하니 벌써 기자들이 가득하다. 재정경제부 차관이 들어온다. 지난해 말 나온 ‘1단계 기업 환경 개선 대책’에 이은 ‘2단계 대책’을 발표하려는 것이다.

어제 전자우편으로 들어온 자료를 미리 읽어봤지만, 100쪽이 넘는데다 전문적인 내용이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들이 많았다. 차관은 보도자료를 간단하게 읽고 질문을 받았다. 2~3명의 질문에 대답하더니 갑자기 마지막 질문을 받겠다고 했다. 10시40분부터 산업자원부의 브리핑이 잡혀 있어 어쩔 수 없단다. 손을 들었지만 다른 기자를 호명했다. 밖에는 진작부터 산자부 공무원들과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관을 비롯한 재경부 직원들은 재빨리 브리핑 룸을 빠져나갔다. 보충 취재를 하고 싶었지만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이 실시된 뒤 사무실 방문 절차가 워낙 까다로워져 따라 올라가 물어보기도 어렵다.

‘기사 송고실’(기자실)도 없으니 신문사로 빨리 돌아가 전화로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신문사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 1시가 넘었다. 전화를 걸어봤지만 다른 기자들도 똑같이 전화를 거는지 “띠~띠~” 소리만 울린다. 겨우 담당 과장과 연결이 됐다. 시간이 없다고 해 꼭 필요한 질문 서너 가지만 물어보고 전화를 끊었다. 보충 취재가 제대로 안 되니 대책의 의미와 문제점이 뭔지 알기가 어렵다.

마감시각이 다가온다. 어쩔 수가 없다. 아는 범위에서 쓰는 수밖에. 보도자료를 요약하는 수준에 그친 것 같다.

지난해 말 발표된 1단계 기업환경 개선 대책 때는 발표 전날 사무실로 찾아가 담당 과장한테 1시간 정도 설명을 자세하게 들었다. 내용도 정확히 알 수 있었고 추진 배경과, 그 과정에서 빚어진 부처간의 갈등, 이익집단의 로비 같은 소소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도 덤으로 들었다. 그때 들었던 몇 가지 뒷이야기는 후속 취재를 통해 기사로 쓰기도 했다. 공무원들도 자신들의 뜻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으니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고 본다.

기자실이 없어지고 사무실 출입이 통제되면서 요즘은 공무원들 보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전에는 가끔 공무원들이 기자실로 내려와 현안 설명을 하고 기자들의 의견도 들었다. 미리 전화를 해 ‘차 한 잔 하자’고 말한 뒤 사무실로 올라가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가벼운 이야기를 하다가 슬쩍 현안에 관한 질문을 던지면 의외로 ‘솔직한’ 대답이 돌아올 때도 있었다. 민감한 문제를 취재할 때도 얼굴 맞대고 꼬치꼬치 물어보면 마냥 외면하지는 못한다.

전화로는 어려운 일들이다. 얼굴도 모르는 공무원한테 정책의 배경까지 물어보기가 쉽지 않다. 물어도 대답도 잘 안 해준다. 공식 발표된 내용이 아니면 “결정된 바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혹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모르는 일이다” “내 담당이 아니다”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며 끊어버리기 일쑤다. 오랫동안 재경부를 출입한 고참기자는 형편이 조금 낫다. 신참 출입기자나 재경부 출입기자가 아닌 기자는 ‘관료주의’가 뭔지를 실감하게 된다.

더구나 ‘전자브리핑제’를 한다면서 ‘일주일에 한 개씩 질문하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그나마 대답도 정부 홈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다시 옮겨적은 수준이다. 정보 공개도 제자리다. ‘공익상 필요한 경우 적극적으로 공개하겠다’는 규정을 정보공개법에 담았지만, 그야말로 선언 수준이다. 지난달에 공개를 요청한 ‘재경부 공무원 해외 장기연수 실태와 연수 뒤 이직 현황’ 자료는 아직 감감 무소식이다.

국정홍보처는 기자실 통폐합의 이유 가운데 하나로 ‘기사의 획일화’ 문제를 들었다. 기자실에서 기자들이 짬짜미(담합)를 통해 일제히 비슷한 방향으로 기사를 쓰는 것을 막기 위해서란다. 하지만 2003년 현 정부가 브리핑룸 체제를 도입한 이래 이런 식의 기사 생산 방식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짬짜미는커녕 기자들 사이에 ‘대화’도 없어진 지 오래다. 오히려 각 언론사의 편집 방향에 따라 기사 방향이 갈린다는 것은 취재 현장에 있는 기자라면 모두 아는 사실이다.

기사를 마감하고 나니 오후 4시30분이다. 피곤하다. 육체적인 피곤함보다 자꾸 ‘부실 기사’를 쓰고 있다는 자괴감이 기자를 더 지치게 한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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