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기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가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첫 회의를 열고 활동을 시작했다. 열린편집위원장인 제정임 세명대 교수(가운데) 등 위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11기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가 지난 22일 첫 회의를 열고 활동을 시작했다. 열린편집위원회는 한겨레신문사가 독자의 다양한 의견을 콘텐츠 제작에 반영하기 위해 2013년부터 운영해온 제도다.
열린편집위원장은 제정임 세명대 교수(저널리즘대학원장)가 맡는다.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지금은 대학원에서 예비 언론인 교육에 힘쓰고 있는 제 교수는 앞으로 1년간 시민편집인을 겸하며 열린편집위원회를 이끌게 된다.
열린편집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해 8명으로 구성된다. 김우경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 피아르(PR) 담당 부사장, 불안정 노동 문제에 천착해온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 방준성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겨레 주주·독자 온라인 커뮤니티 <한겨레:온>의 심창식 편집위원,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장, 미디어·문화 연구자인 이준형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이채현 부산대 학생(전 부대신문 편집국장) 등이 함께한다. 연령대별로는 60대 이상 1명, 40~50대 4명, 20~30대 3명이며, 성별로는 여성 4명, 남성 4명이다.
첫 회의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한겨레에서는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 이주현 뉴스룸국 뉴스총괄, 전정윤 뉴스룸국 인사교육부국장이 참석했다.
유튜브 콘텐츠 친근한 접근 아쉬움…뉴스레터 흥미로워
제정임 중요한 시기에 위원장을 맡게 되어서 어깨가 무겁다. 애정어린 비판과 건설적인 대안 제시로 한겨레의 혁신을 돕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자리에 왔다. 이번을 포함해 열두 차례 회의를 하게 될 텐데 허심탄회한 토론이 이뤄지는 위원회가 됐으면 좋겠다. 일단 오늘은 한겨레 보도에 대한 총평이나 제언을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을 했으면 한다.
이채현 유튜브와 에스엔에스(SNS)를 중심으로 한겨레 콘텐츠를 많이 봤다. 그런데 한겨레는 이미 많은 걸 알고 있는 사람한테 얘기하는 것처럼 접근하니까 좀 어렵다. 타사의 경우는 젊은 기자들이 나와서 콘텐츠 제작 과정을 보여준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친근하게 접근한다. 그렇게 하니까 기사까지 읽고 싶게 만든다. 한겨레에도 좋은 기사가 많은데 독자들이 일단 읽고 싶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기사를 써내도 소용없으니 그런 방안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제정임 다른 매체에서는 눈높이가 비슷한 젊은 기자들이 나와서 알아가는 과정까지 재미나게 보여주는데, 한겨레는 해당 현안에 대해 많이 아는 분들이 나와서 자기가 아는 걸 드러내는 식으로 해서 비교가 된다는 뜻인가?
이채현 그렇다. 다른 예를 들면, 한겨레는 한글을 많이 쓰려고 노력하는데, 그때 어떤 고민을 하는지도 보여주면 ‘아, 이런 생각도 하는구나’ 해서 독자들이 공감할 것 같다.
김우경 한겨레가 새로운 어젠다를 던지고 문제를 포착하는 부분에서는 탁월한 장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를 던지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해결책을 제안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까지 나아갔으면 좋겠다. 기업의 입장에서 한겨레는 제일 불편한 신문이지만 꼭 필요한 신문이기도 하다. 앞으로 기업에 대해서도 좀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탐사·기획 한겨레의 장점…희망 주는 밝은 내용 많아졌으면
심창식 한겨레가 기자협회의 이달의 기자상을 꾸준히 받고 있던데, 주로 탐사보도들이더라. 기자들의 노고와 열정이 돋보인다. 최근에는 창간기획
‘이주시대, 스포츠로 경계를 넘다’를 인상 깊게 읽었다. 이런 탐사·기획 보도가 한겨레의 장점인 것 같다. 이런 장점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론 독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긍정적인 기획들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너무 팍팍한데, 신문을 보면 재미도 좀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한겨레에 제안할 게 있다. 첫째, 해외 전문가들이 쓰는 ‘세계의 창’ 필진을 좀 늘리고 분야도 다양화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너무 국제정치 쪽에 편중돼 있는 것 같다. 둘째, 주주·독자들의 의견을 단문 형태로라도 상시적으로 받아주고, 가끔씩 모아서 오피니언면에 실었으면 좋겠다.
제정임 심 위원의 의견에 제 얘기를 좀 보태고 싶다. 한겨레는 참 유익한 신문이다. 우리 학생들이 밑줄을 쳐가면서 공부를 한다. 그런데 신선하거나 흥미롭거나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약간 부족하다. 사실 우리가 항상 뭔가를 배우겠다는 생각으로만 신문을 읽는 건 아니지 않나. 새로운 이야기, 다양한 관점 이런 것들을 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런데 한겨레는 좀 무겁고 교육적이고 심각하다. 좀더 신선하고 다양하게 해볼 필요가 있다.
김종진 한겨레는 집단적 노사관계 보도에 장점이 있다. 예를 들면, 민주노총, 한국노총 관련 기사들. 그런데 그 비중을 조금 줄여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노동 기사에 코멘트를 해주는 전문가들이 대부분 나하고 친한 사람들이더라. 의견을 구할 전문가 풀을 더 넓힐 필요가 있다. 앞에서 다른 위원께서도 말씀하셨지만, 현실의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그다음을 위한 의제, 그러니까 대안을 찾는 일에 한겨레가 조금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이윤소 콘텐츠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뉴스레터를 구독하게 됐는데 재미있더라.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사안에 다가가게 하는 것이 지금 필요한 방식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이기 때문에 큐레이션을 해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아침에 뉴스레터를 보면서 하루를 시작하면 뭐랄까 교양인이 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그리고 토론해보고 싶은 기사가 하나 있다.
‘모텔 끌고 가 옷 벗겨도 무죄, 가해자 중심 대법원’이라는 기사다. 기사에 피해 상황이 찍혀 있는 시시티브이 영상이 담겨 있다. 물론 피해자 관련 단체에서 공개한 영상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다고 해도 전체 영상을 실어도 되는 것인가 하는 고민이 들었다.
이주현 피해자 쪽의 동의를 받아서 실은 것이긴 한데, 불편하게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한겨레가 그 영상을 쓴 이유는, ‘이런 상황인데도 왜 준강간으로 처벌받지 못하냐’는 메시지를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물론 끔찍한 피해 장면을 얼마만큼 재현해야 하나 하는 문제는 정말 고민스러운 지점이다. 예를 들면, 광주 5·18 항쟁 때 총격을 당해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의 사진을 그대로 실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비슷한 고민을 던진다. 당시의 참상을 알리려면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너무 끔찍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기는 게 아니냐, 가족들이 보면 어떻게 느낄까, 이런 점들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실은 매번 건건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한국사회 고착화된 정파인식 적극적으로 탈피 시도 필요
이준형 한겨레는 정파성과 관련해 가장 많은 고민을 하는 언론사라고 생각된다. 저널리즘의 객관성이나 비판성은 어떤 권력으로부터도 거리를 두고 언론의 권력화로부터도 거리를 두는 그런 작업 끝에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 고착화된 정파적인 인식에서 저널리즘이 벗어나려는 시도를 좀더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대중들이 편향된 인식체계를 갖고 있어서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을 본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 저는 비판적인 저널리즘에 대한 수요는 생각보다 클 거라고 본다. 그런 언론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그 수요가 좀 과소 평가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허심탄회하면서도 좀 분석적인 방식으로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지면에 기획특집 같은 것도 좀 드러내놓고 할 필요가 있겠다. 그러면 같은 보도를 하더라도 독자와 시민들이 다르게 보는 기회가 좀 생기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다.
제정임 아마 한겨레에도 고충이 있을 것 같다. ‘저쪽은 저렇게까지 하는데 한겨레는 뭐 하고 있는 거야’라는 요구가 분명히 있을 테니까.
전정윤 고충처리인을 겸하고 있어서 고객센터로 들어오는 각종 의견을 늘 보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정파성을 요구하는 독자들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될지 고민이 많다.
AI 등 신기술과 젊은세대 문제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게 전해주길
방준성 인터넷으로만 기사를 보다가 오랜만에 신문을 보니 느낌이 색달랐다. 덕분에 요즘 신문 보는 재미를 다시 느끼고 있다. 최근 기사 중에는 ‘조작된 입양’ 기사가 감명 깊었다. 언론에선 주로 국가적인 큰 이슈를 다루곤 하는데, 이 기사는 자기 얘기를 못해 마음이 답답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뤄줘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공학자 입장에서 ‘웹툰 그리는 AI’ 기사도 재미있게 봤다.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기술이 할 수 있는 일, 그것에 대한 관점, 앞으로 예상되는 상황 등을 죽 설명해줘서 좋았다. 저희 어머니도 기사를 보고 이해를 하시더라.
제정임 한겨레가 인공지능이나 블록체인 같은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우리 사회의 변동과 연결해서 의미 있는 얘기들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 요즘 젊은층이 신문을 잘 안 보는 이유가 정보가 필요 없어서가 아니다. 젊은 세대는 미래가 너무 불안하기 때문에 정보에 대한 욕구는 굉장히 강하다. 유튜브로, 에스엔에스로 뛰어가고 있을 뿐이다. 한겨레 같은 좋은 매체가 자기들이 궁금해하는 거, 고통스러워하는 거, 한숨 쉬는 문제를 공감할 수 있게 다뤄주면 아마 많이 볼 거다. 근데 한겨레가 정치 등 다른 분야에 비해서 그런 부분이 좀 부족하다. 젊은 세대가 ‘내 문제구나’ 하는 것들을 현장을 통해 보여주려는 시도를 좀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
전정윤 여러 위원들께서 해주신 제안들을 뉴스룸국에 잘 전달해서 시도해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