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청소년 농구단 글로벌 프렌즈 단원들이 8일 서울 용산구 보성여고 체육관에 모여 농구공을 던진 뒤 환하게 웃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한국은 이미 이주 사회다. 출입국 통계를 보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국내 체류 외국인은 250만명을 넘겼다. 전체 인구의 5% 수준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단일민족 신화가 강하게 작동한다. 2021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국민 다문화 수용성 조사’를 보면 성인의 다문화 수용성은 52.27점(100점 만점)에 그쳤다. ‘일상생활에서 이주민을 본 적 없다’는 응답도 성인 10명 중 1명, 청소년은 10명 중 2명꼴이었다. 이처럼 여전히 이주민과 선주민 사이의 거리는 멀기만 하다.
스포츠는 이주민과 선주민을 연결하는 유용한 통로다. 가장 큰 장벽이 되는 언어 문제가 없다. 신체활동 속에서 연대감을 형성하기도 쉽다. 한국보다 먼저 이주 사회에 진입한 유럽 등은 스포츠를 이주민 포용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투자는 자연스럽게 전체 사회의 스포츠 활성화로 이어졌다. 반면 한국에서는 ‘모두를 위한 스포츠’로 가는 길이 여전히 요원하다. <한겨레>는 한국을 포함해 세계 각지에서 이주민과 스포츠가 만나는 현장을 두루 살폈다.
“감독님, 저희도 농구하고 싶어요.”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오후 5시30분. 서울 용산구 보성여고 체육관에는 스무명 남짓 아이들이 모인다. 농구를 하기 위해서다. 연습 시작 전엔 매번 작은 소동이 생긴다. 부쩍 키가 큰 몇몇 중학생이 천수길(62) 한국농구발전연구소장을 졸라댄다. 중학생인 이들은 이제 농구 수업에 참여할 수 없지만, 천 소장은 마지못해 “초등학교 동생들이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며 허락한다. 반짝이는 눈에 담긴 농구 열정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다.
이곳에 모인 아이들은 여느 또래와 다를 게 없다.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를 달고 ‘셀카’를 올리고, 방탄소년단(BTS)이나 뉴진스 노래를 틀고 춤을 춘 뒤 틱톡에 올린다. 농구 훈련 중에도 체육관 한구석에 모여 좋아하는 아이돌을 위해 투표를 한다. 천수길 소장이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다그칠 때면 못 들은 척하다가, 간식 이야기가 나오면 다시 이야기에 집중한다. 단 한 가지 차이점은, 피부색이 각양각색이라는 점이다. 다문화 농구단 ‘글로벌 프렌즈’의 훈련 풍경이다.
이주 청소년 농구단 글로벌 프렌즈 단원들이 8일 서울 용산구 보성여고 체육관에서 농구 연습을 하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나이지리아 엄마·아빠를 둔 마이클스 빅토리(7)도 글로벌 프렌즈에서 처음 농구공을 잡았다. 빅토리 위로 있는 오빠 4명이 모두 이곳에서 농구를 배웠다. 아직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는 빅토리에게 농구는 게임 ‘로블록스’와 더불어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통로다. 처음 농구단에 온 지난 2월에는 체육관 구석에서 농구공을 만지작거리기만 했지만, 두달 만에 연습경기를 뛰고 정확한 패스로 도움을 기록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농구 수업이 없는 날, 빅토리는 주로 혼자 시간을 보낸다. 빅토리는 “체육관에 안 오는 날엔 그냥 집에서 티브이를 본다”고 했다. 그러더니 “기자님은 일이 끝나면 뭘 하느냐”고 되묻는다. ‘집에서 혼자 책을 읽는다’고 하자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그건 외로워요.” “다음번엔 꼭 로블록스를 해보고 재밌었는지 말해달라”고 신신당부하던 빅토리는 튕기던 농구공을 들고 기자 옆으로 다가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공을 바닥에서 서너 바퀴 돌린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당신 차례예요.”(It’s your turn)
글로벌 프렌즈 연습에 참여한 마이클스 빅토리가 8일 서울 용산구 보성여고 체육관에서 농구 연습을 하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글로벌 프렌즈는 2012년 문을 열었다. 엘리트 농구를 하던 천수길 소장이 농구를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고자 창단했다. 그간 300명 넘는 이주배경 청소년이 이곳을 거쳤다. 1세대-2세대-3세대로 나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이른바 ‘졸업생’으로 불리는 1세대-2세대는 이제 코트가 아닌 한국 사회 곳곳에서 각자 ‘포지션’을 잡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모로코 출신 리티 메디(27)는 1세대 졸업생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다. 메디는 2001년 요리사였던 아버지가 주한모로코대사관 수석 주방장으로 발령받으며 한국에 왔다. 5살 때였다. 메디에게 낯선 한국 땅은 두려움이었다. 학교에선 차별도 심했다. 그때 만난 게 글로벌 프렌즈였다. 함께 공을 튕기며 땀을 흘리는 과정에서 메디는 친구를 만났다. 그에게 농구단은 가족이었다. 메디는 지금도 “글로벌 프렌즈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천 소장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서투른 자세로 농구공을 튕기던 메디는 대사관에서 퇴직한 아버지와 이태원에서 모로코 음식점을 운영한다. 4대째 내려온 가업을 한국에서 다시 이어가고 있다. 대학에서 영양학을 전공한 그는 대전에 있는 한 대학에서 강의하며 “교수님” 소리도 듣는다. 올해 초에는 교육부에서 진행하는 직업 탐방 프로그램에 출연해 요리사를 꿈꾸는 청소년을 위해 경험담도 나눴다. 모두 농구단이 없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글로벌 프렌즈에서 활동한 바케르(왼쪽)와 리티 메디가 8일 오후 후배들의 농구연습을 참관하기 위해 보성여고로 향하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바케르(16·압둘쿠두스 아브바케르)는 2011년 한국에 첫발을 디뎠다. 아프가니스탄에 살던 시절 그는 매일 집 근처에서 주검을 봤다. 그때 나이가 4살. 죽음을 이해하기엔 이른 나이지만, 공포를 알기에 늦은 나이도 아니었다. 그가 살던 곳은 미국이 지원하는 북부동맹이 처음 점령한 땅인 마자르이샤리프. 탈레반은 자신들에게 첫 패배를 안긴 이 도시를 수복하길 원했다. 북부 최대 도시는 화염 속에 폐허로 변했다. 가족은 살기 위해 한국으로 향했다.
죽음과 삶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하던 바케르는 “한국에 온 뒤에야 내 인생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 찾아온 이곳에서도 인생은 행복보다는 고통과 더 가까웠다. 이역만리 땅에서 가족은 생계를 꾸려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바케르도 살아남기 위해 중학생 때부터 공부 대신 일을 해야 했다.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했고 때로는 공사장에서 벽돌을 날랐다. ‘코리안드림’은 그와는 거리가 먼 단어였다.
글로벌 프렌즈에서 활동한 바케르가 8일 연습장이었던 서울 용산구 이태원초등학교 앞에서 농구공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바케르가 만난 희망도 농구였다. 지름 약 20㎝짜리 농구공은 그에게 훨씬 커다란 세상을 선물했다. 서로 다른 처지이지만 이주배경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으로 뭉친 아이들이 모여 공을 튕겼다. 생존만을 위해 뛰던 소년은 농구를 만난 뒤 꿈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2022년 같은 농구단 출신인 모델 한현민이 속했던 소속사에 들어갔다. 그는 바닥에 세게 내려치면 더 크게 튀어 오르는 농구공처럼 힘껏 날아오르는 꿈을 꾼다.
이처럼 농구는 이주 청소년과 한국을 연결한다. 글로벌 프렌즈 출신 윌 프레드(19)는 천 소장이 “오바마 대통령 같은 친구”라며 아끼는 졸업생이다. 나이지리아 아버지와 한국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시절 엘리트 농구 영입 제의가 들어올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성격도 좋고 공부도 곧잘 했는데, 용산고등학교 재학 땐 학생회장까지 맡았다. 천 소장은 “농구를 잘해 중학교 때부터 임원을 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고 했다.
농구는 이주민과 선주민이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다문화’ 수식어가 붙는 프로그램은 이주민만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어 교육이나 한국 문화 체험 등에 참여하는 선주민은 없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다르다. 영등포구 ‘컬러풀 농구단’에선 중국 이주 가정 청소년과 부모님이 모두 한국인인 아이들이 함께 농구를 한다. 원래는 이주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이었는데, 농구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친구 손을 잡고 찾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구성이 됐다.
천수길 소장은 “청소년은 서로를 이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이미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은 청소년 대상 스포츠 프로그램을 늘릴 필요가 있다. 어릴 때부터 어울리면 편견이나 거부감 없이 잘 지내는데, 이런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이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 여성가족부 조사(2021년)를 보면, 청소년은 다문화수용성이 71.39점으로 성인보다 19.12점 높았다. ‘다문화 학생이 같은 반이나 친구가 되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는 응답도 90% 이상이었다.
글로벌 프렌즈 단원과 자원봉사자들이 8일 서울 용산구 보성여고 체육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다만 한국에 있는 모든 이주 청소년이 이런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이주 가정을 지원하는 서울 25개구 가족지원센터에서도 이주 청소년 대상 정기 스포츠 프로그램이 있는 곳은 영등포구(농구)뿐이다. 센터는 언어 교육·문화 체험 등에 중점을 둔다. 실제 글로벌 프렌즈 단원 중 상당수가 용산구 아닌 서울 다른 구나 경기도에서 입소문을 듣고 왔다. 스포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이 적은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정부도 이주민 대상 스포츠에 관심이 없다. 지난 4월 관계기관 합동으로 발표한 ‘제4차 다문화가족정책 기본계획’에도 스포츠 지원 관련 내용은 없다.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 교육부 중 어느 곳도 이주민 스포츠 지원을 주무로 하는 부서는 없다. 대한체육회도 마찬가지다. 지역 체육 예산을 편성하는 지방자치단체도 난색을 보인다. 천 소장은 “이주민 인구가 많은 지자체일수록 오히려 담당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손사래를 치는 경우가 많다. 주민 반발을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주민 대상 스포츠 프로그램은 개인 의지나 기업 후원에 의존한다. 후원이 끊기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운명이다. 영등포구 컬러풀 농구단은 예산 문제로 개학 시기인 3월을 훌쩍 넘긴 5월 문을 열었다. 용산구 이촌동 농구단 파스텔 프렌즈는 아동복 업체에서 후원을 받고 있지만, 글로벌 프렌즈는 기존에 후원하던 여행사가 코로나19로 경영 악화를 겪으며 지원이 끊겼다. 천 소장은 “매일이 살얼음판”이라고 했다.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 킬리안 음바페가 지난해 12월5일(한국시각) 카타르 도하 앗수마마 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 폴란드와 경기에서 팀의 세 번째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음바페 역시 카메룬-알제리계 이주 2세다. 도하/로이터 연합뉴스
일찍부터 스포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해온 유럽은 상황이 다르다. 대표적인 게 프랑스다. 프랑스는 1936년부터 스포츠부를 따로 두고 이주민을 위한 스포츠 정책을 펼쳤다. 2024 파리올림픽을 준비하는 프랑스올림픽위원회는 금메달이 아닌 이주민 대상 정기 스포츠 프로그램을 ‘올림픽 유산’으로 남기길 원한다. 파리시는 스포츠 내 포용을 강조해온 럭비 선수 출신 피에르 라바당을 2020년 파리 스포츠부시장에 임명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이 결국 모두를 위한 스포츠로 이어진다는 믿음 덕분이다.
프랑스 파리, 리옹, 스트라스부르에서 활동하는 카부부는 좋은 모델이다. 카부부는 2018년 이주민과 난민을 위해 꾸린 민간 스포츠 단체다. 매주 축구, 농구, 요가, 조깅, 수영 등 스포츠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참가비용은 무료. 누구나 신청만 하면 참가할 수 있다. 프랑스 스포츠부·파리시·국제올림픽위원회의 지원과 자원봉사자 도움을 받아 파리에서만 매주 10개 넘는 수업을 운영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2020년 카부부를 ‘스포츠와 역동적 사회’(SAS) 지원 대상으로 채택하며 “스포츠가 기후 변화, 난민 통합, 성평등 같은 사회 문제 해결에 효과적임을 보여줬다”고 했다.
이주민·난민을 위한 스포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카부부 축구 강의 참가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카부부 누리집 갈무리
유럽은 어떻게 이런 길을 걷게 됐을까? 단순히 이민 역사가 오래됐기 때문은 아니다. 유럽이 스포츠를 두고 본격적인 논쟁을 벌인 건 1930년대부터다. 특히 1936년은 상징적인 해였다. 나치가 집권하고 있던 독일은 스포츠를 아리아 인종 우수성을 선전하고 젊은 군인을 키워내기 위한 도구로 생각했다. 스포츠도 자연스럽게 극렬한 경쟁과 신체활동을 동반하는 젊은 남성을 위한 방향으로 발전했다. 1936년 베를린에서 열린 여름올림픽 때 이런 이데올로기는 정점을 찍었다.
반면 인민전선이 집권하던 프랑스는 달랐다. 프랑스는 나치에 대한 반발로 스포츠를 인종차별 반대와 사회 평등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베를린올림픽이 열리던 해, 프랑스 초대 스포츠부 장관에 취임하는 레오 라그랑주는 이렇게 연설했다. “스포츠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스펙터클로서 소수 특권층만 즐기는 문화입니다. 두 번째는 챔피언 육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에게 복무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노동자, 농민, 실업자가 여가를 즐기는 기쁨과 존엄성을 찾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프랑스와 독일이 정반대 길을 걸으면서 두 나라 스포츠가 향하는 방향도 달라졌다. 전쟁이 유럽을 집어삼키며 스포츠를 즐길 토대 자체가 무너지긴 했지만, 인종차별에 반대했던 프랑스 스포츠 전통은 그대로 남아 전쟁 뒤에도 스포츠 정책에 영향을 줬다. 알레산드로 포로베키오 프랑스 오팔 코스트대 조교수는 “많은 논쟁이 있어야 사회가 스포츠가 해야 할 역할을 탐구할 수 있다”며 “스포츠가 정치와 분리돼 있다는 건 완전히 틀린 말”이라고 했다.
미국 제시 오언스(가운데)가 1936년 베를린여름올림픽에서 독일 루츠 롱(오른쪽)을 꺾은 뒤 시상식에서 경례하고 있다. 당시 히틀러는 베를린올림픽을 아리아 인종 우수성을 선전하는 도구로 쓰려고 했으나 정작 흑인인 제시 오언스가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단일 대회에서 4관왕을 차지했다. 베를린/AP 연합뉴스
물론 역사가 일직선으로 흘러가진 않았다. 전쟁에서 패한 독일 또한 1950년대에 과거를 반성하고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른바 ‘황금 계획’은 그렇게 탄생했다. 독일체육회는 1959년 이 계획을 발표하고 공공 스포츠 클럽에 예산을 투입했다. 이주민·장애인·노인·여성 등 그간 스포츠가 배제해온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 집중했다. 게오르크 폰 오펠 독일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1959년 “우리가 이것을 황금 계획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건강이 인류 최고 자산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럽이 걸어온 길은 한국 스포츠가 나아갈 방향에도 고민을 던진다. 한국은 1962년 국민체육진흥법을 제정하며 본격적인 스포츠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당시 한국이 추진한 정책은 소수를 위한 스포츠에 가까웠다. 특히 1982년 법을 개정하며 ‘체육을 통한 국위선양’을 추가했고, 메달과 성적에 매달리는 엘리트 체육 중심 정책에 방점을 찍었다. 이어서 이른바 ‘3에스(3S)’ 정책 일환으로 프로야구도 출범했다. 모두 정권 필요에 따른 결정이었다. 지금도 한국은 ‘스포츠와 정치는 별개’라는 이데올로기가 강하지만, 실제 현실은 달랐던 셈이다.
프로야구에서 시구하는 전두환. 전두환은 프로스포츠를 출범하고 서울올림픽 유치를 시도하는 등 정치에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대통령기록관 누리집 갈무리
물론 변화도 있었다. 특히 2010년대 후반 들어 체육계에서 각종 폭력 문제가 발생하며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2020년 국민체육진흥법에서 “국위선양”이 빠지고 “연대” “공정” “인권” “행복” “자긍심” “공동체”가 등장했다. 이른바 ‘최숙현법’이다. 2022년에는 스포츠혁신위원회 권고에 따라 스포츠기본법이 탄생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3년 기존 스포츠 헌장과 가이드라인(2010년 제정)을 보완해 “성별·성적지향·장애유무·나이·출신민족 등에 따른 차별 없이 누구나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방향성은 선언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스포츠혁신위가 내놓은 혁신안에 스포츠계는 “현실성이 없다”며 반발했다. “학생 선수들이 운동할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지 않았다”, “현장 목소리를 무시했다”고 했다. 반대쪽에서는 “엘리트 체육 탈피”, “학생들이 공부할 권리”를 앞세웠다. 그간 스포츠에서 배제됐던 이들을 어떻게 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토론은 사라졌다. 엘리트 체육 일변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놓은 혁신안조차 다시 한번 엘리트 체육 논쟁으로 빨아들이는 거대한 관성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출신민족’에 따른 차별이란 논제는 꺼내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2019년 5월 스포츠혁신위원회가 1차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당시 스포츠혁신위원회는 7차례에 걸쳐 권고안을 내놨고 스포츠 혁신 방안에 대한 광범위한 내용이 담겼지만 사회적 논의는 줄곧 엘리트 체육과 관련한 주제에 집중됐다. 연합뉴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논하며 스포츠 정책이 공전하는 사이 글로벌 프렌즈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천수길 소장이 사재를 털어가며 운영하고 있지만, 그도 이미 60줄에 접어들었다. 천 소장은 “농구 연습을 마치면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사주는데, 치즈버거나 불고기버거가 아니면 세트 메뉴를 못 시키게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평생 농구공을 던지며 단련해온 그의 단단한 어깨가 유난히도 작아 보였다.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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