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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문화공동체’ 수영장에 푹 빠졌어요

등록 2007-11-26 18:42

성남시 은행2동 은행주공아파트에서 진행 중인 문화공동체 프로젝트 ‘풀장환상’은 쓰지 않고 방치된 수영장(왼쪽)과 탈의실 등 딸린 건물을 아파트 주민들이 문화를 즐기고 교류하는 공동체 활동의 공간으로 바꿨다. 사진은 지난 3일 ‘풀장’에서 열린 벼룩시장 모습. 밀머리미술학교 제공
성남시 은행2동 은행주공아파트에서 진행 중인 문화공동체 프로젝트 ‘풀장환상’은 쓰지 않고 방치된 수영장(왼쪽)과 탈의실 등 딸린 건물을 아파트 주민들이 문화를 즐기고 교류하는 공동체 활동의 공간으로 바꿨다. 사진은 지난 3일 ‘풀장’에서 열린 벼룩시장 모습. 밀머리미술학교 제공
[느림과 자유]
성남 은행주공아파트 ‘풀장환상’

경기도 성남시 은행2동 은행주공아파트. 지난 8월로 지은 지 20년이 된 1900가구가 사는 이 아파트에서는 재능나눔과 문화프로그램을 매개로 아파트라는 차가운 공간을 주민들의 인정이 오가는 문화공동체로 만드는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이름하여 ‘풀장환상’. 그렇다고 수영장이 중심은 아니다. 아파트 안에 방치된 수영장 공간을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리는 센터 구실을 하도록 만들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풀장환상’은 성남문화재단이 지원하고 미술창작과 교육을 연계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는 밀머리미술학교가 진행한다.

밀머리미술학교, 방치시설 개조 놀이터·영화관·벼룩시장으로
단지 생태조성·벽화그리기 등 함께…새달부턴 부녀회서 운영

21일 오후 5시. 남한산 자락에 있는 초겨울의 아파트 단지에는 벌써 땅거미가 내려 앉고 있었지만 수영장 주위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바닥에 푹신한 깔개를 깐 수영장 안에 들어가 공을 굴리며 뛰어다니는 아이, 낙엽을 주워 던지는 아이, 눈싸움을 하는 아이도 보인다. 은행초 2학년 송민주(9)양은 “이곳에 오면 친구들이 많이 있어 자주 놀러온다”고 했다. ‘풀장환상’을 진행하는 박찬국 총감독은 “우리가 폐인이라고 부르는, 매일 이곳을 찾는 아이들만도 수십 명이 된다”고 했다.

같은 시간 풀장 탈의실 뒤편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서는 책만들기 모임이 열렸다. 엄마와 아이들은 강사로부터 〈청어 열마리〉라는 동화책 이야기를 들은 뒤 각자 이야기를 짓고 그림을 그려서 책을 만들었다. 강사인 남한산 초등학교 사서교사 최정희(39)씨는 “오늘이 7회째인데 아이들은 물론 어머니들도 너무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책만들기처럼 이곳에서 주 단위로 진행되는 프로그램 종류는 열 가지가 넘는다. 예비엄마들이 유아용품을 직접 만드는 ‘테디베어 유아용품 디아이와이’, 가구·소품 등 생활미술 공예품을 만드는 ‘포크아트’, 영화보는 모임인 ‘씨네풀 평론클럽’, 책읽어주는 모임 ‘낄낄마녀’, 풀장에서 마음껏 뛰노는 풀장 댄스 등.

‘풀장환상’의 주요 내용은 문화·공동체 프로그램이지만 아파트 곳곳을 재단장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주관팀은 아파트 단지를 5구역으로 나눠 해당 지역의 생태적 특성에 따라 매미솟는동, 새웃는동, 멋진 아카시동, 청딱따구리동, 큰 은행나무동 등으로 이름지었다. 120동 뒤편에서 남한산 쪽으로 난 길에는 메타세콰이어와 햇빛받기 경쟁을 하며 곧게 뻗는 버즘나무가 있어 ‘쭉 뻗은 버즘나무 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수영장 바로 옆 112동 벽에는 이 아파트 단지 안에서 자라는 나무, 새, 동물 등 생태 환경을 담은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아파트 곳곳에 마을 생태를 안내하는 이정표를 세우는 일도 준비 중이다. 또 103동에서 112동 쪽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103계단’에는 주민들이 걸어올라가며 읽을 수 있도록 시가 쓰여 진다.

성남 은행주공아파트 ‘풀장환상’
성남 은행주공아파트 ‘풀장환상’
이런 은행주공의 ‘변신’은 밀머리미술학교 교장인 박찬국 총감독을 포함 7명의 프로젝트팀이 주로 기획한다. 박연숙(프로젝트 코디), 김형관(공간재생코디네이터), 남미영(프로그램), 김주희(풀장환상), 김주리(자원활동), 이정민(웹사이트 담당 및 홍보), 자원활동가 박효선씨 등. 하지만 이들은 옆에서 도울 뿐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지역 주민들이 직접 하도록 이끈다. 사무실로 쓰이는 수영장 탈의실 입구에 나무 토막을 모아 그림과 글을 써서 벽에 붙인 설치미술은 동네 초등학생들이 만든 것이다. 사무실 안의 책상이나 의자 등 집기들도 아이들이 직접 나무를 자르고, 못질하고, 색을 칠했다. 프로그램 강사도 가능하면 아파트 주민 가운데 찾으려 노력한다. ‘폐인’급인 딸 하윤(9)이가 매일 놀러가는 곳이 궁금해 따라나왔다가 ‘풀장환상’의 열혈 지지자가 된 엄마 이옥화(39)씨는 “생태체험과 책만들기에 참여하고 있는데 너무 재미있고 뜻깊은 프로그램 같다”고 평가했다.


처음 ‘풀장환상’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주민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박 총감독은 “7월부터 10여차례 주민설명회를 열었지만 주민들 반응은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정도였다”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는 분들도 있었다”고 했다.

10여 차례 주민설명회를 통해 설득을 거듭했지만 마찬가지였다. 프로그램이 열리고 아이들을 시작으로 주부들의 참여가 늘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특히 맘껏 뛰놀 공간이 생긴 아이들은 하루에도 100여 명씩 수영장 주위에서 뛰놀았고, 만들기·가면파티·영화보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푹 빠져 들었다. 뒤이어 엄마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어 주민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지난 3일 열린 벼룩시장은 주민들의 성화로 17일 또 한차례 열어야 할 정도였다. 아이들이 단지 안의 생태환경과 동에 사는 특별한 사람을 비디오카메라에 담는 프로그램은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9월15일 시작된 리모델링 프로젝트 ‘풀장환상’은 12월1일 끝이 난다. 기획팀은 이 아파트 부녀회를 운영주체로 만들기 위해 그동안의 활동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앞으로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이들 프로그램을 이어갈 수 있도록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은행주공이 문화와 나눔이 어우러진 살기좋은 마을이 되기를 바랍니다.” 박찬국 총감독의 바람이다.

성남/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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