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준씨가 경기도 포천시의 한 목공소에서 우리나라 소나무로 만든 나무 레고를 조립해 보이고 있다.
[느림과 자유] ‘퓨전 활동가’ 김기준씨
서울 창동의 마당발 활동가. 김기준(58)씨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그는 “여러 곳을 분주하게 왔다갔다하는 사람” 정도로 스스로를 낮춘다.
하지만 설악산을 100번 이상 올라갔을 정도의 전문 산악인으로, 시민단체인 열린사회시민연합 회원으로, 생명운동단체인 한살림의 초기 창립 멤버이자 환경운동가로 그의 활동은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그는 자신에 대해 “퓨전 활동가”라고 했다.
“저는 관심있는 분야가 생기면 열심히 공부합니다. 좋은 것을 배우면 주위에 알리는 일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저 자신이 종합 웰빙 전문가처럼 됐습니다.”
그는 산을 오르다 환경 문제에 눈을 떠 관련 책을 보며 공부해 생태교육 강사가 됐고, 아이들에게 원목 책상을 만들어 주기위해 목공을 배운 뒤 생태목공 교실을 만들어 이를 보급하고 있다. 한옥문화원의 회원으로 한옥 건축을 공부하는 한편 한옥의 우수성을 알리는 일에도 열심이다.
김씨의 요즈음 활동은 아이들과 관련이 많다. 결혼 뒤의 변화다. “한없이 자유로운 삶”을 꿈꿨던 그는 99년 늦깍이 결혼을 한 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독신의 자유”를 그리워하기도 했으나 “이웃들과 함께 아이들을 올바로 키우는 것을 고민하면서 또다른 자유를 찾았다”고 했다.
그는 최근 친환경 장난감 제작에 힘을 쏟고 있다. 22일 그를 따라 경기도 포천시의 한 목공소 찾았다. 김씨가 네모 모양의 크기가 다른 얇은 나무토막을 바닥에 쏟아 놓았다. 우리나라 소나무로 만든 나무 레고다.
“우리나라 소나무가 촉감이 가장 좋습니다. 서로 부딪힐 때 나는 소리가 청아하고 무늬도 아름다워요. 향기도 좋구요. 플라스틱과 달리 촉각, 청각, 시각, 후각 을 함께 자극하는 최고의 장난감입니다.” 그는 나무레고 10벌을 만들어 자신이 아는 어린이집에 실비로 보급할 계획이다.
그는 실제 크기의 8분의 1로 줄인 나무 모형으로 한옥을 짓는 과정도 보여줬다. “돈만 있으면 교육청마다 한옥 모형을 하나씩 보내 교보재로 쓰게 하고 싶다”고 한다. 산악인·시민활동가·환경운동가서 이번엔 육아연구에 푹~
친환경 장난감 등 만들어…아이들은 구속? 또 다른 자유! 김씨는 한달에 한두번씩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들로 나간다. 지난 8월에는 창동의 공동육아 꿈꾸는어린이집 출신 초등학생들과 제주도 자전거 일주여행을 다녀왔다. 30명 모두 220㎞를 완주했다.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은 그는 아이들과 제주 월드컵 경기장을 찾아 17살 이하 청소년 월드컵에 참가해 잉글랜드와 싸우는 북한을 응원하기도 했다. 아이들에 대한 그의 사랑은 창동이라는 지역을 넘어선다. 지난겨울 초등학생인 아들 선웅(12), 딸 선민(10)이와 눈썰매를 타던 일이 너무 좋아 강원도 인제군 설피마을 아이들을 위해 플라스틱 눈썰매 10개를 사서 보냈다. 지난 2월에는 금강산을 다녀오다 북한 아이들을 보고 북녘에 플라스틱 눈썰매 1만개를 보내겠다는 원도 세웠다. “북한 아이들이 겨우내 눈썰매를 열심히 타면 건강에도 좋고 마음도 밝아질 것 같습니다. 북한 아이들이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는 것은 우리 민족의 자산이지요.” 그는 1998년까지 공기업을 다니며 안정된 삶을 누리던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산을 타면서 환경 문제에 눈을 떴고 열혈 운동가가 됐다. 산악회 후원은 물론 환경 관련 행사, 강연, 강좌를 섭렵했고 시민단체의 후원에 번 돈을 대부분 쏟아넣었다. “늘 적자였어요. 카드로 돌려막기를 할 정도였습니다.” 실천도 철저히 했다. 80년대 후반 유기농산물 도농직거래 운동을 시작한 한살림에 초기멤버로 참여했다. 승용차를 한 시간 타고 갈 때 자동차가 소비하는 산소량이 한 사람이 1년 동안 마시는 산소량과 같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결혼 뒤 아이를 낳기까지 대중교통만을 고집했다. 98년에는 직장까지 그만두고 음식물쓰레기 처리회사를 만들어 3년 동안 운영하다 모은 돈을 다 까먹기도 했다. 그는 “대학 교직원인 아내의 이해와 도움이 없었다면 가정이 큰 어려움에 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단한 직장생활에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면서 김씨는 최근 ‘시민운동’과 ‘생활’의 조화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에게 있어서 나무레고 제작과 보급은 친환경 장난감 보급과 생활비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쫓는 실험이기도 하다. “결혼 전의 자유로움이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아이는 물론 동네 아이들과 함께 놀러다니면서 또 다른 차원의 자유를 알게 됐습니다.” 글·사진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그는 실제 크기의 8분의 1로 줄인 나무 모형으로 한옥을 짓는 과정도 보여줬다. “돈만 있으면 교육청마다 한옥 모형을 하나씩 보내 교보재로 쓰게 하고 싶다”고 한다. 산악인·시민활동가·환경운동가서 이번엔 육아연구에 푹~
친환경 장난감 등 만들어…아이들은 구속? 또 다른 자유! 김씨는 한달에 한두번씩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들로 나간다. 지난 8월에는 창동의 공동육아 꿈꾸는어린이집 출신 초등학생들과 제주도 자전거 일주여행을 다녀왔다. 30명 모두 220㎞를 완주했다.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은 그는 아이들과 제주 월드컵 경기장을 찾아 17살 이하 청소년 월드컵에 참가해 잉글랜드와 싸우는 북한을 응원하기도 했다. 아이들에 대한 그의 사랑은 창동이라는 지역을 넘어선다. 지난겨울 초등학생인 아들 선웅(12), 딸 선민(10)이와 눈썰매를 타던 일이 너무 좋아 강원도 인제군 설피마을 아이들을 위해 플라스틱 눈썰매 10개를 사서 보냈다. 지난 2월에는 금강산을 다녀오다 북한 아이들을 보고 북녘에 플라스틱 눈썰매 1만개를 보내겠다는 원도 세웠다. “북한 아이들이 겨우내 눈썰매를 열심히 타면 건강에도 좋고 마음도 밝아질 것 같습니다. 북한 아이들이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는 것은 우리 민족의 자산이지요.” 그는 1998년까지 공기업을 다니며 안정된 삶을 누리던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산을 타면서 환경 문제에 눈을 떴고 열혈 운동가가 됐다. 산악회 후원은 물론 환경 관련 행사, 강연, 강좌를 섭렵했고 시민단체의 후원에 번 돈을 대부분 쏟아넣었다. “늘 적자였어요. 카드로 돌려막기를 할 정도였습니다.” 실천도 철저히 했다. 80년대 후반 유기농산물 도농직거래 운동을 시작한 한살림에 초기멤버로 참여했다. 승용차를 한 시간 타고 갈 때 자동차가 소비하는 산소량이 한 사람이 1년 동안 마시는 산소량과 같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결혼 뒤 아이를 낳기까지 대중교통만을 고집했다. 98년에는 직장까지 그만두고 음식물쓰레기 처리회사를 만들어 3년 동안 운영하다 모은 돈을 다 까먹기도 했다. 그는 “대학 교직원인 아내의 이해와 도움이 없었다면 가정이 큰 어려움에 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단한 직장생활에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면서 김씨는 최근 ‘시민운동’과 ‘생활’의 조화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에게 있어서 나무레고 제작과 보급은 친환경 장난감 보급과 생활비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쫓는 실험이기도 하다. “결혼 전의 자유로움이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아이는 물론 동네 아이들과 함께 놀러다니면서 또 다른 차원의 자유를 알게 됐습니다.” 글·사진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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