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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35년간 꿈꾼 세상, 대안공동체서 찾았죠

등록 2007-10-29 19:13

황선진 마리학교 교장이 지난 25일 오후 인천시 강화군 양사면에 자리한 학교 교정에서 수업을 마친 학생들과 어깨를 겯고 이야기를 나누며 활짝 웃고 있다. 그는 마리학교를 통해 모든 생명을 하늘로 여기며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밝고 바른 사람을 길러내고 싶다고 했다. 김종수 기자
황선진 마리학교 교장이 지난 25일 오후 인천시 강화군 양사면에 자리한 학교 교정에서 수업을 마친 학생들과 어깨를 겯고 이야기를 나누며 활짝 웃고 있다. 그는 마리학교를 통해 모든 생명을 하늘로 여기며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밝고 바른 사람을 길러내고 싶다고 했다. 김종수 기자
[느림과 자유] 황선진 마리학교 교장
소외된 사람 없는 평등세상·서로 나누는 경제로 전환 꿈꿔
민주화운동부터 대안교육·생명축제까지 ‘회향’의 삶 외길

강화도의 대안학교인 마리학교 황선진(56) 교장의 꿈은 대안공동체 건설이다. 그는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경제, 교육, 의료, 문화 등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자립하는 작은 단위”라고 대안공동체를 정의했다.

구체적인 상은 지난 26일부터 사흘간 강화도 일대에서 열린 생명축제 때 부분적으로 드러났다. 올해로 8회를 맞은 이 행사의 주요 프로그램은 조상들이 하늘에 올렸던 천제, 당대의 주요한 현안에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으는 화백회의, 물품을 교환하는 홍익호혜시장 등. 하늘의 뜻을 따르는 삶, 소외된 이가 없는 지혜로운 의사결정, 생산품과 재주를 사고 파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누는 경제 시스템 등이 그가 만들려고 하는 대안공동체의 운영 원리인 듯하다.

올해로 8회를 맞은 생명축제는 지난해까지 그가 몸담고 있는 마리학교와 마리교육생활협동조합이 주최했지만 올해는 회향해 여러 생명운동 단체와 함께 준비했다. 회향은 자신이 닦은 공덕을 중생을 위해 내어 놓는다는 뜻의 불교 용어.

그의 삶은 늘 모두를 위한 회향이었다. “미련해 한번 시작한 일은 놓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낮추지만 그는 1972년 대학생이 된 뒤부터 지금까지 그 일에서 한발짝도 벗어난 적이 없다. 문학청년으로 글쓰기가 좋아 서울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갔지만 시대는 그에게 펜 대신 돌멩이를 들기를 강요했다. 그는 ‘세상을 위해’ 문학도 버리고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옥살이도 했다. 75년 독재에 항거해 할복자살한 김상진씨의 추모 행사인 ‘5·22 사건’으로 제적되어 수배 생활을 했고, 결국 붙잡혀 옥살이를 한 뒤 군에 끌려갔다.

80년 ‘서울의 봄’ 때 복학해 졸업을 한 뒤 서울의 한 사립고 교사로 “아이들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으나” 신원조회로 ‘전력’을 알아낸 서울시교육청의 지시로 해고됐다. 학교를 대상으로 벌인 법정 싸움에서 이긴 뒤에는 미련없이 사표를 던졌다.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민중문화운동협의회, 한국노동당, 민중당, 진보정당추진위원회 등 우리나라 진보운동의 중심에 늘 있었던 그다. 김정훈, 김도연, 장선우, 유영표, 박원순, 김근태, 이호웅, 유상덕 등 5·22 사건을 함께 겪은 이들이나 이애주, 채희완, 임진택, 장만철, 신동수 등 함께 활동했던 문화패들, 김문수, 이재오, 장기표, 노회찬 등 진보정당을 꿈꿨던 이들이 여러 갈래의 ‘새로운 길’로 떠났을 때도 그는 있던 자리를 지켰다. 76년 막스레닌주의를 소개한 일본어 책 <알기 쉬운 철학>을 읽고 평등 세상을 이루는 일에 신명을 바치치기로 한 결심을 잊은 적이 없었다.

90년대 들어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진 뒤에도 그는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민중당에 몸담고 있던 그는 스페인의 생산자 협동조합 몬드라곤을 우리나라에 만들어 보고자 당원 예닐곱 명과 함께 욕조 생산 공장을 만들었다. 뜻은 높았지만 노동자들의 실력은 시장의 벽을 뚫기에는 너무 형편없었다. 지인들로부터 1천만원을 모아 ‘우리금고’라는 신용협동조합 형태의 금융기관도 만들었지만 대출금이 회수되지 않고 생활 형편이 어려운 직원이 가져다 쓰기도 해 3년만에 실패했다.


“사회주의가 품은 이상은 지금도 옳다고 생각합니다. 방법이 문제였던 것이지요.”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갔다. 생활고에도 시달렸다. 그때 한 후배의 소개로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98년초 한달 동안 부산 안국사에서 ‘이뭣고’를 화두로 들고 정진했다.

“막스레닌주의를 접한 뒤 20년 동안 그 이념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길이 보이지 않아 답답했는데 화두선을 접했을 때는 마치 감로수를 마신 기분이었습니다.”

2001년 다시 화두를 들었다. 3개월째 새로운 경지를 맛봤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사람이 있는 그대로 보였다. 모든 사람이 부처였고, 만물 안에 부처가 있었다. 안국사의 스님으로부터 “공부가 됐다”는 인가를 받았다. 새로운 길이 보였다. 막스레닌주의와 불교는 모두 생명을 하늘처럼 여기는 철학이었다. 그래서 99년 생명축제를 시작했다.

어느덧 그의 구호는 ‘바꾸자’에서 ‘살리자’로 변해 있었다. 생명축제의 슬로건을 ‘스스로를 살리고, 서로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세’로 정했다.

새로운 길을 걷는 일은 힘들었다. 행사비 마련을 위해 그동안 쌓은 인맥을 총동원해 1500만원을 모았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그를 지켜본 사람들은 그의 ‘변신’에 의문을 품었다. 후배된 도리로 행사에 참여한 이들은 많았지만 생명철학에 공감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사흘 동안 인천대공원에 1천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다녀갈 정도로 성공한 행사였지만 음악, 공연, 전시회 등도 생명철학과는 거리가 있었다.

행사가 끝난 뒤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완전히 탈진했다. 고향인 강화로 마음이 갔다. 전 재산 40만원을 들고 고향 강화로 향했다. 예기치 않게 그곳에서 그는 친환경농업을 하는 농민과 귀촌해 생활하는 직장인 등 ‘동지’들을 만났다. 그들이 자녀를 가르치기 위해 만든 문화학교, 마리서당의 훈장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새로운 세상을 준비할 새로운 세대를 키우는 일로서 대안교육에 눈을 떴고, 3년 가량 준비기간을 거쳐 2003년 11월 마리학교를 세웠다. 대안공동체 건설에 뜻을 함께하는 이들의 소통을 위해 ㈔밝은마을이라는 모임도 만들었다.

“서울과 인천에서 일할 때보다 더 바쁜 것 같아요. 하지만 마음은 늘 여유롭습니다.”

불교에 이어 마음공부의 새로운 인연도 찾아왔다. 우리 전통 수련인 선가였다. 이를 통해 하늘 마음으로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수행임을 알게 됐다.

“지금 우리가 사는 주류 세상은 자체 모순 때문에 머지 않아 스스로 무너진다고 봅니다. 대안공동체들의 연대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제가 젊은 시절 꿈꿨던 그런 세상 말입니다.”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황선진 교장의 대안공동체는?

황선진 교장이 추구하는 대안공동체는 대안학교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자급자족형 생산공동체다. 경기도 화성의 야마기시즘경향실현지와 비슷하다. 그는 ‘실현지’ 형태의 ‘정착형 공동체’와 함께 도시와 농촌에 존재하는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참여하는 ‘유목형 공동체’도 필요하다고 여긴다.

그런 점에서 그가 만든 ㈔밝은마을에는 자본주의 현대 과학기술 문명에 대한 대안을 찾고 이를 현실에 구현하려는 뜻을 공유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황씨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당분간은 기존체제와 대안을 넘나드는 양서류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씨가 지향하는 대안공동체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경제시스템이다. 생산은 공동으로 하지만 분배는 성과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 이뤄진다. 여느 공동체의 지향과 비슷하다.

다른 점은 호혜시장이라는 개념이다. 호혜시장은 이윤이 목표가 아니라 “나눔을 목표로 공생과 호혜를 원리로 운영되는 시장”이다. 이곳에서 오가는 재화나 용역은 거래가 아니라 선물이다.

두 번째는 만장일치로 의사결정을 하는 화백회의다. 공동체의 실패는 구성원 사이의 불화로 인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실현지’는 연찬회라는 소통의 틀과 특강과 같은 자신을 돌아보는 장치를 두고 있다. 퀘이커 공동체의 있는 그대로 듣기, 부르더호프공동체의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도 비슷하다. 끝으로 황씨는 대안학교를 공동체의 주요한 기둥으로 본다. 여느 공동체와 다른 점이다.

권복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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