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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노사정 합의 문구, 재계엔 ‘백지수표’…노동계엔 ‘덕담’만

등록 2015-09-15 20:13수정 2015-09-16 10:35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왼쪽)이 1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사정위원회 제89차 본위원회에서 김대환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이 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는 동안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노사정 대표자는 이날 회의에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에 서명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왼쪽)이 1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사정위원회 제89차 본위원회에서 김대환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이 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는 동안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노사정 대표자는 이날 회의에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에 서명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노동자엔 희생…사용자엔 지원·세금 혜택
해고·취업규칙·비정규직 등
노동계 고용유연화는 명확
청년고용·감원 최소화 강제커녕
‘노력한다’ ‘강구한다’로 채워져
정부의 지원도 기업에만 편중
노사정이 15일 서명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두고 ‘불공정 합의’라는 비판이 나온다. 노동자들은 일반해고·취업규칙 요건 완화, 비정규직 확산 등 고용안정과 노동조건의 근간을 내어줘야 하는 반면, 사용자는 사실상 손해 볼 게 없는 탓이다. 고용을 창출한다는 명분으로 기업에는 각종 지원금과 세제 혜택을 주면서도 기업의 의무와 관련한 부분은 ‘노력·자제·협력’ 따위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채워진 탓이다. 노사정 합의가 사회적 대타협이 아니라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과 양보 위에 쌓아올린 우골탑’이 될 판이다.

<한겨레>가 15일 노사정 합의문을 분석해보니, 정부는 노동계와 달리 재계에는 수많은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에 대한 지원의 일부가 노동자한테 돌아가는 측면이 있으나 노동자의 희생과는 크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우선, 정부는 “청년고용을 확대하는 기업에 세대 간 상생고용지원,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세무조사 면제 우대, 중소기업 장기근속 지원, 공공조달계약 가점 부여 등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협력업체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지원하는 것도 세제지원 대상에 포함한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청년고용을 늘린 기업에 주는 상생고용장려금 지원 방안을 강구키로했다. 아울러 노동시간 단축에 따라 발생하는 중소기업의 경영상 애로 및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소득 감소와 관련해 회사 쪽에 설비투자와 인건비 보조금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세금과 관련해 기업에 주는 혜택은 투자세액공제, 세무조사 면제 우대에서 그치지 않는다. 기업의 사내근로복지기금을 활용하고 중소협력업체 간 공동근로복지기금 등을 도입해 중소협력업체나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복지사업을 활성화하는 기업에는 그 금액을 법인세 산정 때 손비로 인정하고 기업소득환류세제 과세에서 빼주는 내용도 합의문에 포함됐다.

심지어 기업의 고용창출과 임금지불능력,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정부가) 가격 규제를 최대한 자제한다”거나 “세제 및 사회보장제도를 고용친화적인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한다”고 해 세금제도를 조정해주기로 했다.

권한과 의무가 비례한다는 건 민주사회의 기본원칙이지만, 합의문은 그렇지 않다. 기업한테 각종 혜택이 쏠리는 반면, 기업이 맡을 의무는 한가하기 그지없다. “고소득 임·직원은 자율적으로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기업은 이에 상응하는 기여를 통해 청년 고용을 확대하도록 노력한다”, “고용안정성을 확보하고 감원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인력 운용을 효율화하고, 임금·근로시간 등 내부노동시장 운영기제가 효율적으로 작동되도록 노력한다”, “경영상의 사유로 고용조정이 필요한 경우 경영계는 감원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등 기업은 ‘노력’만 하면 된다.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는 중요치 않다는 게 노사정 합의문의 태도다.

기업은 정규직 채용이나 전환 등도 ‘가급적’ 이행하면 된다. “가급적 정규직·직접고용으로 채용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한편, 기존 근로자의 고용이 안정되고 청년 신규채용이 확대될 수 있도록 노사가 함께 합리적 인사원칙을 정립하도록 한다”거나 “노사정은 불합리한 차별은 금지하는 한편, 상시·지속적 업무에 대해서는 가급적 정규직으로 고용하고”라는 등의 부분이 그렇다. 국어사전을 보면, ‘가급적’은 “형편이 닿는대로”라는 뜻이다.

이는 “단체협약·취업규칙 개정에 적극 협력하고”처럼 노동자한테는 적극적인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것과는 크게 대비된다. 이밖에 합의문은 재계가 해야 할 일들은 주로 “강구한다”거나 “제시한다”는 등 규범력이 없거나 약하게 서술하고 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연구교수는 “경영계가 해야할 고용안정 조처는 ‘노력한다’는 정도로 추상적으로 표현됐지만 노동계가 내어줘야 할 고용유연화는 명확하고, 정부는 노동자가 아닌 기업한테만 각종 지원을 약속했다”며 “이번 노사정 합의는 기업의 이해와 핵심 요구를 관철하는 거수기 노릇밖에 하지 못한 불공평한 합의”라고 비판했다.

김민경 전종휘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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