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이 16일 오전 이 대학 중앙마루에서 ‘노동인권 투쟁 돌입 및 파업 돌입’ 기자회견을 마치고 “노동 3권 보장하라”,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안녕 못한’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삶
쌓인 눈 치우고 강의실 닦으려면
정식 출근시간 지키단 다 못끝내
하지만 수당 말했다 잘릴라 참아
“노조탈퇴 권유 중단·인력 충원을”
중앙대 청소노동자들 파업 돌입
쌓인 눈 치우고 강의실 닦으려면
정식 출근시간 지키단 다 못끝내
하지만 수당 말했다 잘릴라 참아
“노조탈퇴 권유 중단·인력 충원을”
중앙대 청소노동자들 파업 돌입
중앙대에서 청소 일을 하는 윤아무개(56)씨는 요즘 새벽잠을 설친다. 눈이라도 내리는지 살펴야 해서다. 눈을 치우려면 새벽 5시까진 출근해야 한다. 부리나케 근무복을 챙겨 입고 건물 주변 눈을 치우고 염화칼슘을 뿌린다.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일이다. 가을도 편치 않다. 낙엽 치우러 새벽별을 보며 집을 나서야 한다.
바깥 청소를 마치자마자 달려가는 곳은 강의실이다. 학생들이 오기 전에 청소를 마치려면 빠듯하다. 정식 출근시간 아침 7시에 맞춰 왔다간 청소를 끝낼 수 없다. 학생들은 오전 8시가 넘으면 강의실로 밀려드는데, 윤씨 등 4명이 건물 한 동의 청소를 맡고 있으니 1시간에 일을 마치는 것은 어림도 없다. 지상 5층, 지하 1층짜리 이 건물엔 강의실·행정실 등이 60여개다.
눈 내리지 않는 날도, 낙엽이 나부끼지 않는 때에도 새벽 6시께까진 출근해야 가슴 졸이지 않고 비질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상아탑의 새벽은 ‘안녕하지 못한’ 청소노동자들의 노고 속에 열리지만, ‘새벽 노동’의 대가는 없다. 윤씨를 고용해 학교에 파견 보낸 용역업체는 오전 7시~오후 4시로 정해진 시간에 맞춰 월급을 준다. 하루 1~2시간 정도는 ‘무임금 노동’인 셈이다.
다른 대학의 청소노동자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윤씨처럼 ‘새벽 무임금 노동’ 문제는 고질적이다. 대다수 청소노동자들은 오전 7~8시로 정해진 출근시간은 잊어야 한다. 출근시간은 새벽 5~6시다. 새벽 첫차에 탄 이들 중 대부분이 청소노동자들인 까닭이다. 연장근로수당은 제대로 챙겨주지 않으면서 퇴근시간 5분 전 옷을 갈아입기 시작해도 30분치 일당을 빼버린다. 그들의 계산법은 야박하다.
서울 소재 한 대학의 청소노동자 이아무개(54)씨는, 그래도 청소를 게을리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용역업체는 정식 출근시간에 나와서 빨리 일을 마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아들딸 같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을 대충 청소할 수 없는 게 엄마들 마음이에요.” 학생들이 거의 없는 토요일에 출근해 화장실 물청소 등을 하기도 하지만, 휴일근로수당을 받는 일은 드물다.
그래도 그동안은 참고 일했다. 수당 달라고 항변이라도 했다간 해고될지도 모른다고 여겨서다. 최근 들어 이들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집회와 시위라고는 신문·방송에나 나오는 것으로 알고 살아온 50대 이상의 아주머니·아저씨들이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대학에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권리 찾기에 나선 것이다.
서울여대와 광운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용역업체의 부당노동행위와 인권탄압에 맞서 노조를 만들었고, 노조 탈퇴 협박 등을 당한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은 16일 파업에 나섰다.(<한겨레> 6일치 9면, 11일치 12면 참조)
중앙대 청소노동자 109명 가운데 지난 9월 결성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중앙대지회 소속 조합원 54명은 용역회사의 노조 탈퇴 권유 중단과 노동강도에 맞춘 15명 추가 인력 채용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했다. 조합원 전원이 참여했다. 이들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에도 노동자의 인권보호가 명시돼 있다. 많은 나라에서 청소노동자들의 안전한 근로조건을 보장하고 적정 임금을 줘야 한다는 합의가 돼 있는데, 대학 청소·경비노동자들은 기본적인 권리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질 낮은 휴게시설도 문제다. 민조노총 공공운수노조와 은수미 민주당 의원 등이 지난 3월 홍익대·고려대 등 6개 대학과 대학병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학 청소노동자 노동안전 실태조사’를 보면, 단 한 곳도 산업안전보건법이 정한 위생시설을 갖추지 않았다. 휴게 공간은 여전히 지하나 계단 밑에 있는데, 그나마 커튼 하나로 남녀 공간 구분을 해놓아 맘 편히 쉬기도 어렵다. 이 법은 휴게와 세면·목욕, 세탁·탈의, 수면 시설을 갖추도록 하고 있지만, 이를 따르지 않을 때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사고를 막기 위한 설비·장비도 부족해 사고 위험도 크다.
그나마 대학에선 인권과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관심이 많은 대학생들이 주변에 있어 위로가 된다. 서울시립대 청소노동자 윤아무개(62)씨는 “학교가 아무 관심도 없을 때 학생들이 우리의 근로조건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면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이날 중앙대 파업현장에도 학생들이 모였다. 중앙대생 박휘순(21·사회학과)씨가 말했다. “청소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너무 늦게 찾아와 죄송합니다.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지지하겠습니다.”
박승헌 이재욱 기자 abc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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