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노동인권 교육 실태
경남에 있는 특성화고에 다니는 최종석(가명·18)군은 초·중·고교를 다니면서 노동교육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현장실습 나가기 전에 딱 하루 노동법에 대해 배운 것이 전부라고 했다. 최군이 알고 있는 것은 최저임금뿐이다. 최군은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건 알고 있는데, 내용은 잘 모르겠다”며 “최저임금은 일을 할 때 중요하니까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조합이나 노동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최군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유독 최군만 이런 건 아니다. 우리나라는 학교에서 노동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학생들 가운데 대부분이 노동자가 되지만, 헌법에 명시된 노동3권과 근로기준법 등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동안 노동인권 교육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여러번 있었다. 지난 2007년 노사정위원회는 제8차 교육과정 개편 작업에 맞춰 노동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교육부에 보냈다. 노동교육 실태가 너무 심각했기 때문이다. 노사정위의 건의문을 보면, 노동자들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근로기준법과 노동3권의 경우 중학교 2·3학년 사회 교과서에 다섯 문장 정도 언급된 게 전부다. 또 고교 1학년 사회 교과서에도 국민경제와 사회공동체가 서술돼 있지만 ‘노동’은 아예 빠져 있다. 그러나 노사정위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10년 “중·고교 교과과정에 노동기본권, 안전과 보건에 관한 권리 및 남녀 고용평등에 관한 권리 등 노동인권 교육을 필수 교과과정으로 포함시키고 교육의 내용을 내실 있게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권고했으나 교과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지난해 1월엔 곽노현 당시 서울시교육감이 “노동법 교육뿐만 아니라 노조의 역할과 노동권 그리고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응하는 방법까지 포함하는 노동인권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노동인권 교육이 계급적 성향의 교육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고, 근로자의 권리만 강조하는 방향으로 편향될 수 있다”며 중단을 촉구하는 등 논란이 인 끝에 결국 흐지부지됐다.
노동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인데다 정부조차 별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학교에서의 노동교육은 지금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진국은 어떨까? 노동행정연수원(옛 한국노동교육원)이 낸 ‘선진 5개국 학교노동교육 실태 보고서’(2003년)를 보면, 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 등 선진국들은 노동문제에 대해 경제·사회·윤리적 측면의 광범위한 교육을 학교 교육과정에 포함시키고 있었다. 성공회대 하종강 노동대학장이 쓴 ‘한국 노사관계에 대한 이해’ 보고서를 봐도, 선진국들은 초등학교 정규 수업 과정에서부터 철저하게 노동문제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 초등학교에서부터 ‘모의 노사교섭’이 일상화된 수업으로 자리 잡혀 있어, 기업 경영에 관한 자료들이 주어지면 학생들은 스스로 경영자 대표와 노조 대표들을 뽑아 협상을 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교과서의 단체교섭 부분 목차를 보면, 항의 문건을 만들고 협약을 체결한 다음 언론과 인터뷰하는 요령, 연설문을 작성하는 방법까지 가르치고 있다. 프랑스는 고등학교 1학년 과정에서 인문·실업계 공통으로 ‘단체교섭의 전략과 전술’까지 가르친다.
경기도 산본공고 장윤호 교사는 “노동인권 교육을 접해본 적이 없으니 청소년은 노동권을 침해받고, 사업주들도 자신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에게 지켜줘야 할 인권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게 되는 것”이라며 “초·중·고교 전 과정에서 노동인권 교육이 이뤄지는 것은 물론, 학교 밖 청소년과 교사, 사업주들도 노동인권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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