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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비정규·파견 수두룩…초단기·저임 ‘부평초 노동’

등록 2010-11-03 10:15

서울 구로구 구로동 구로디지털산업단지에서 지난달 29일 아침 출근길 직장인들이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서울 구로구 구로동 구로디지털산업단지에서 지난달 29일 아침 출근길 직장인들이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10년의 전태일들
디지털산업단지등 도급계약 보편화
최저임금 4110원 받고 야근도 밥먹듯
2·3차 하청 노동자는 ‘3등국민’ 취급
20대 후반의 박아무개씨는 지난 4월 서울 구로구 디지털산업단지에 있는 한 전자제품 부품 제조공장을 찾았다. 인력공급업체와 실제 일할 공장에서 간단한 면접을 한 뒤 다음날부터 출근했다. 근로계약서는 쓰지 않았다. 박씨는 26일 동안 297.5시간을 일했다. 출근은 오전 9시였지만 퇴근시간은 공장 마음대로였다. 한달 동안 휴일에 일한 시간만 48시간이었고, 평일 연장근무도 43.5시간에 달했다.

하루 평균 11.4시간씩 일하고도 그가 손에 쥔 월급은 146만4860원. 올해 최저임금 4110원을 적용한 결과다. 사장은 4대 사회보험을 적용하지 않았다. 어차피 오래 머물지 않을 공장인데, 보험료를 내느니 생활비에 쓰는 게 낫다고 박씨는 생각했다. 그는 석달 뒤 공장을 그만뒀다.

굴뚝공장에서 정보·통신(IT) 중심의 첨단산업으로 탈바꿈한다는 찬사를 받는 디지털산업단지에는 박씨처럼 ‘불안정 노동’이 넘친다. 지난 7월 기준으로 입주 기업이 1만개가 넘고, 연간 매출액이 10조4000억원이라는 ‘화려한’ 숫자에 가려진 그늘이다. 박씨 같은 이들을 포함해 이 지역에서 비정규·파견 노동의 굴레를 쓰고 노동력을 파는 이는 5만∼6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노동계는 보고 있다.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간 인력업체와 노동자가 석달짜리 또는 6개월짜리 기간제 계약을 맺으면, 업체는 도급계약이 된 공장으로 부품 배달하듯 노동자를 보낸다. 공장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초단기 저임금 부평초 노동’은 구로뿐 아니라 경기 안산 등 수도권 공단지역에 보편화했다. 임금이 낮으니 생계 유지를 위해선 연장·휴일 근무를 거절할 수 없다. 가난한 노동의 현실은 전태일의 평화시장이나 40년 뒤 디지털산업단지나 크게 다르지 않다. 전국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의 구자현 지회장은 “최저임금 시급제에서 법을 따지며 일하면 자신이 받는 월급이 줄어들기 때문에 노동자 스스로 (시스템에) 동화될 수밖에 없다. 대다수가 대기업 하청업체들이라 이들 역시 비용을 축소하기 위해 간접고용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정규 노동자 안에서도 계급은 철저히 나뉜다. 비정규직 가운데 2·3차 하청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3등 노동자’ 취급을 받는다.

50대인 박성숙(가명)씨가 일하는 곳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지만, 소속을 따지면 복잡하다. 현대차가 현대모비스에 하청을 주고, 모비스는 ㅇ사에, ㅇ사는 ㅎ사에 다시 하청을 줬다. 박씨는 먹이사슬과도 같은 고리의 맨 끝인 ㅎ사 소속이다. 여러 단계의 하청을 거치는 동안 원래 현대차가 지급한 인건비는 계속 깎여, 박씨는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같은 라인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1차 하청업체 노동자에 비해 30만∼40만원이 적다. 1차 업체 노동자가 지급받는 안전화·겨울조끼도 받지 못하다가, 2005년 파업 끝에 간신히 따냈다. 지금도 체육복은 지급받지 못한다. 그들이 쓰는 휴게실을 박씨는 쓸 수 없다.

ㅎ사에서 노조 가입은 금기다. 원청의 눈치를 보는 사장은 조합원을 불러 밥 사주면서 노조 탈퇴서를 들이민다. 80여 직원 가운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은 현재 박씨를 포함해 2명뿐이다. 지난 7월 대법원의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직접고용 판결에 희망을 품은 사내하청 노동자 1600여명이 최근 노조에 대거 가입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1차 하청업체 노동자다. 2·3차 하청업체 직원은 복잡한 소속관계 탓에 1차 업체 노동자처럼 법원에 가도 이기리란 희망을 품기 힘들다.

박씨는 “우리도 원청의 작업지시를 받지만 그들은 ‘너네는 우리와 상관없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소송을 해도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사용자가 필요한 노동력을 갖다 쓰면서도 그에 따른 노무관리 책임은 지지 않는, 간접고용이라는 이름의 노동 형태를 전태일이 본다면 과연 뭐라 할까?

전종휘 김민경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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