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돈문 가톨릭대 교수·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
기고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가 급격하게 진전되면서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양극화의 주범으로서 주요한 사회적 의제로 대두되었다.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비대한 규모에 대해 우려가 깊어졌지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졌고, 경제위기가 극복되면 쉽게 치유될 수 있는 문제 정도로 치부되기도 했다.
한때 제조업 부채비율이 300%를 훨씬 웃돌며 굴지의 재벌기업들마저 부도로 내몰렸으나 2000년대 초·중반부터 100% 수준으로 하락하며 매년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고 현금자산 보유액은 매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기에 이르렀다. 경제위기는 말끔히 극복되고 자본은 축적의 절정기를 구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비정규직 문제 해소는 진전되는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규직-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날로 확대되고 있고, 비정규직 비율은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서 사내하청과 특수고용 비정규직의 상당부분이 배제된 채 산정되었음에도 여전히 전체 피고용자의 절반 수준에 달하며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감축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관심을 모았던 비정규직 관계법 제·개정은 기간제 사용 사유 제한 대신 기간 제한을 택하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산업 수준이 아니라 개별 사업장 단위에만 적용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사업장 수준의 동일임금 원칙은 사쪽의 직무 재조정으로 유명무실화되었고 미온적인 최저임금 인상 조치는 확대일로의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를 제어할 수 없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비정규직 규모이다.
우리는 산업구조 변화의 효과를 간과했었다.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며 서비스산업은 꾸준히 팽창하는 반면 제조업은 크게 위축되고 있고, 이런 추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올해 3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제조업의 비정규직 비율이 30%로서 전산업 평균에 비해 크게 낮은 반면 서비스산업의 비정규직 비율은 54%로서 비정규직 중심 인력구조를 지탱하고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이런 산업구조 변화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각 산업·부문·사업장 단위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정규직 중심 신규채용을 강제해야 한다. 비정규직을 특수한 상황에 한정하여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사유 제한 중심 규제 방식으로 비정규직 관계법들을 개정할 것이 요청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핵심-주변의 직무구분 방식과 외주화 압박 정책을 폐기하고 일시적 노동력 수요에 한해서 비정규직을 한시적으로 허용하되 상시적 노동력 수요에 대해서는 정규직 채용을 원칙으로 하여 사적 부문에 대해 모범을 보여야 할 터인데, 실상은 거꾸로 가고 있다. 국회와 중앙정부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진보·개혁 세력이 선출된 지자체들부터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절반의 노동력을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사회는 분명 비정상적인 사회이며, 더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조돈문/가톨릭대 교수·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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