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직장갑질119가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연 ‘성희롱 방치, 성차별 신고하세요’ 캠페인.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Q. 직장 상사의 성희롱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퇴사를 생각하고 회사에 알리면서 정당한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소문나면 안 되니까 비공식적으로 처리하자면서, 자발적 퇴사 형식을 취하되 그 조건으로 위로금 500만원을 제시했습니다. 성희롱 증거는 지인과 카카오톡 대화뿐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2023년 5월 닉네임 ‘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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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성희롱으로 인한 퇴사는 실업급여(구직급여) 수급 요건에 해당합니다. 2023년 기준 1년 이상 일했으면 최소 923만원, 1년 미만도 738만원을 받을 수 있는데, 사건 입막음용 위로금이 고작 500만원이라고요?
위로.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줌(국어대사전). 튜브님, 회사로부터 ‘따뜻한 말과 행동’을 받으셨나요? 그래서 괴로움과 슬픔이 줄었나요?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라지만, 위로도 돈으로 한다니, 그럼 얼마를 받아야 위로가 될까요?
드라마 <더 글로리>처럼 처절한 복수로 가해자를 응징할 수 있다면 위로가 되겠죠. 현실에서 튜브님이 겪은 고통을 치유하는 길은 말씀하신 ‘정당한 처벌’입니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른 회사의 5대 의무(신속 조사, 피해자 보호, 가해자 징계, 비밀 유지, 보복 금지)를 이행하지 않으면 바로 노동청에 신고하세요. 혹시 상사가 신체 부위에 불쾌한 접촉을 했다면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으로 경찰에 고소할 수 있고요. 또 정신적 고통에 대한 산재 신청, 가해자와 회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합니다. 모두 회사 ‘뼈 때리는’ 일입니다.
증거가 걱정된다고요? 성범죄 특성상 증거를 남기기 어렵기 때문에 법원은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을 중요하게 판단합니다. 지인과 카톡 내용은 증거가 될 수 있고요. 직장 내 성희롱이나 괴롭힘으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의 경우 가해자뿐만 아니라 회사의 배상 책임도 인정하고 있어요. 금액도 과거에는 변호사 수임료 주면 남는 게 없었는데, 최근엔 소송 비용을 빼고도 조금은 ‘위로’가 될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먼저 회사와 가해자에게 내용증명을 보내 소송을 예고하세요. 심각한 사건이라면 언론 보도도 검토하시고요. 다만 이렇게 ‘소송전’이 될 경우, 보복 소송이나 2차 가해를 당할 수 있습니다. 친했던 동료들의 배신을 목격할 수도 있고요. 그로 인해 덧난 상처가 더 깊어질 수도 있습니다. 튜브님의 용기로 회사에 경종을 울릴 수 있겠지만 권리를 향한 투쟁에는 상처가 따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회사가 위로금 합의를 제시했다면? 실업급여 금액은 ‘기본값’이어야죠. 여기에 퇴사 뒤 치료받으면서 건강을 회복해야 하고요. 실업급여 수급이 끝나더라도 재취업까지 시간이 걸리니 그 기간도 고려해야겠죠. 무엇보다 성희롱을 겪지 않았다면 회사를 계속 다녔을 테니까 그에 합당한 금액, 후회하지 않을 위로금을 요구하세요. 교통사고도 후유장애까지 계산하잖아요. 마음속 최저선을 명확히 정하시고요. 말로 그치지 말고 반드시 합의서를 쓰세요. 다만 ‘부제소 합의’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합의 파기가 아니라면 별도의 문제제기를 할 수 없고, 가해자가 떵떵거리고 다닐 수도 있다는 사실은 명심하시고요. 튜브님이 당한 성희롱과 괴롭힘이 돈으로 위로가 되진 않겠지만, 생각해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만한 위로도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너무 속물인가요?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직장갑질119에서 평범한 직장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노동권·인권 침해에 대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