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26일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회의실에서 ‘젠더폭력 없는 안전한 일터를 위한 여성노동자 실태 보고 및 종합대책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우연히 상사의 컴퓨터에서 여성 직원들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메시지를 확인했어요. 공동대표와 간부가 다수 포함된 대화방이었습니다. 일상적으로 여직원들을 성기에 비유해서 부르고 (여성 직원을) 성폭행하겠다는 내용까지 있었습니다.”
서울여성노동자회가 ‘고용평등주간’(5월25~31일)을 맞아 22일 발간한 ‘2022년 상담사례집-일하는 여성의 권리찾기 이야기’에 등장하는 상담 사례다. 지난해 서울여성노동자회에 접수된 여성 노동자들의 신규 상담(550건) 가운데,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토로하는 상담이 10건 중 6건으로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상담이 61.5%(338건)로 가장 많았고, 근로조건(임금체불·부당해고 등)과 직장 내 괴롭힘(폭언·폭행 등) 상담이 각각 17.6%(97건), 11.6%(64건)로 뒤를 이었다.
직장 내 성희롱은 여성 노동자들의 퇴사의 주요 요인으로도 지목됐다. ‘퇴사했다’고 응답한 상담 건(126건) 중에서도 ‘직장 내 성희롱으로 퇴사했다’고 응답한 건이 59.5%(75건)으로 가장 많았다. 근로조건이나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퇴사했다는 응답은 각각 31%(39건), 7.1%(7건)에 그쳤다.
직장 내 성희롱은 주로 상급자나 사업주에 의해 이뤄졌다. 상사에 의한 성희롱이 51%로 가장 많았고, 법인대표(14.7%)와 사장(사업주·13%), 동료(12.4%), 고객(2.6%) 등의 순이었다. 서울여성노동자회 관계자는 “직장 내 성희롱이 대부분 고용상 권력을 이용한 행위임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지난해 들어 ‘사내 메신저 채팅방’을 통해 여성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이 일어나고 있다는 상담이 눈에 띄게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여성노동자회는 사내 메신저를 이용한 성희롱을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성희롱 예방·대응 매뉴얼’에 성희롱 유형 예시로 명문화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한편, 현행 남녀고용평등법(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은 ‘사업주(법인 자체, 개인사업주)와 상급자 또는 노동자가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한 성희롱을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할 경우, 사업주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받게 된다. 문제는, 법인대표의 경우 사업주가 아닌 상급자로 분류돼 과태료 부과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1년 직장 내 성희롱 금지 의무를 위반한 법인 대표를 과태료 부과 대상에 포함하는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해당 법안은 아직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여름 서울여성노동자회 사무국장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여성 노동자의 고통이 큰 만큼 조속히 관련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성노동자회 전국 12개 지부는 오는 26일 오전 11시 국회 앞에서 ‘법인대표에 의한 성희롱 처벌 및 구제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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