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31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비정규직 당사자 실태조사 보고 및 현장증언대회가 열려 참석자들이 발표 내용을 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Q. 3년째 계약직으로 근로하고 있습니다. 매년 계약서를 새로 작성했는데요, 2021년부터 일을 해서 이미 2년이 넘었습니다. 저는 무기직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주일 전쯤 계약만료 통보서를 받았습니다. 계약만료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부당해고로 신고해야 할까요?(2023년 12월, 닉네임 ‘멋쟁이’)
A. 진짜 나쁜 회사네요. 2년 지나면 정규직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 계약만료 통보라니, 참 나, 누굴 호구로 아나. 걱정 마세요. 선생님은 이미 정규직이니까 계약만료는 부당해고입니다. 해고일로부터 3개월 안에 사업장 관할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하면 됩니다. 계약만료일 다음날부터 신청할 수 있지만, 차분히 준비해서 3개월째에 하세요. 계약직이라고 무시하고 괴롭히는 일이 많았을 텐데, 해고 기간 임금 다 받을 수 있으니 편히 쉬세요. 빨리 구제 신청했는데 회사가 바로 복직시키면 쉴 시간도 없잖아요.
2021년 12월1일 계약직으로 일하기 시작해 중단 없이 계속 근무했고, 사업 완료나 휴직자 대체 근무가 아니라면 ‘기간제법’에 따라 2023년 12월1일부터는 정규직입니다. 회사가 며칠 일하지 않는 기간을 뒀더라도, 계속 근무할 것이라는 기대를 줬다면 ‘갱신기대권’이 인정됩니다. 정규직 전환 관련한 채용 공고나 녹음 등 증거를 잘 모으시고요.
그런데 구멍이 너무 많아요. 일단 2년을 초과하기 전에 계약 기간이 끝나면 ‘꽝’이에요. 현대자동차에서 23개월 동안 일을 시키고 계약을 만료시킨 사건이 있었는데 대법원까지 정당하다고 판결했어요. 또 파견직으로 2년, 계약직으로 2년 일을 시킨 뒤 계약을 종료하는 꼼수도 많습니다. 계약직과 파견직을 뺑뺑이 돌려도 규제할 법이 없거든요.
얼마 전 받은 사연. 대기업 파견직인데 2년이 지나면 정직원이 될 수 있다는 기대로 갑질을 참으며 일했대요. 무시하고, 온갖 잡일 떠넘기고, 파견직만 빼놓고 정규직끼리 밥 먹으러 가고….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파견사원 주인공처럼 서럽게 살았던 거죠. 죽을힘을 다했고,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그런데 2년 뒤 회사에서 제보자 자리에 정규직 채용 공고를 냈어요. 제보자가 원서를 넣었는데 다른 사람을 뽑았고요. 회사가 제보자에게 다른 업무의 계약직을 제안하면서, 파견직에서 계약직 되는 건 쉽지만 정규직은 몇배 어렵다고 했대요. 갑질 당해도 입 닥치고 죽어라 일만 하라는 거죠.
도대체 이게 뭐죠? 정규직이 고관대작 벼슬이에요? 정규직이 되기 위해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혀도 참고 견디는 게 공정인가요? 계약직과 파견직을 번갈아가며 4년을 노예로 살다가 버려지는 삶이라니, 누가 이런 법을 만들었나요? 파견법은 김대중 정부, 기간제법은 노무현 정부가 제정했어요. 문재인 정부는 상시업무에 비정규직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공약을 내팽개쳤죠. 그런데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반성하지 않고 있고요.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부는 거꾸로 계약·파견 기간과 업종을 늘리겠다고 했죠. ‘평생 비정규직’을 만들겠다니, 진절머리가 나네요. 비정규직 설움을 위로할 정치는 대체 어디에 있나요?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직장갑질119에서 평범한 직장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노동권·인권 침해에 대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