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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동일노동 동일임금’ 여당도 법안 발의…호봉제 폐지 뜻?

등록 2023-06-06 07:00수정 2023-06-06 12:59

뉴스분석 _ 국회 ‘근로기준법 개정’ 논의 물꼬
2020년 7월14일 한국공항공사의 자회사 노동자들이 준법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자회사 신설 등을 통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됐지만, 임금 등에서 실질적 처우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반발했다. 연합뉴스
2020년 7월14일 한국공항공사의 자회사 노동자들이 준법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자회사 신설 등을 통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됐지만, 임금 등에서 실질적 처우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반발했다. 연합뉴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쪽에서 노동계가 오랫동안 요구해온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담긴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그 파장이 주목된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비슷한 취지의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라 여야가 공감대를 이룬다면 법안 논의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있다. 다만 노동계와 야당에선 지난 1년여간 윤석열 정부가 지속적으로 노동탄압 기조를 이어온 가운데 여당 쪽에서 나온 법안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국회 노동개혁특위 간사인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31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정규직-비정규직, 원청-하청의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과제”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에는 “사용자는 근로자의 근로계약의 내용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정당화할 수 없다”(제6조 2항)거나, “사용자는 동일한 사업 내에 고용 형태가 서로 다른 근로자들 간의 동일가치노동에 대해 동일한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제6조의2 1항)는 등의 조항이 포함됐다. 고용 형태나 근로자의 소속 업체, 계약 상태 등과 관계없이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다.

실제 현행 근로기준법은 국적, 신앙, 사회적 신분에 따라 근로조건을 차별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고용 형태'는 명시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원청-하청 간 임금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법안을 발의한 김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에서 “고용 형태에 따라 노동 강도 또는 임금에 차별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대한민국헌법이 차별금지 및 근로에 대하여 명문화하고 있는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국힘 내부에서 공식 논의하지 않았지만 상임위 차원이나 상당수 의원은 공감대를 갖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서는 법안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박대출 정책위의장는 <한겨레>에 “큰 방향에 대해선 지도부도 공감하고 있다. 우리가 가야 될 방향이 맞지만 방법론에서는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철규 사무총장도 “더 많은 일, 더 중요한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가 임금의 수준을 결정하는 잘못된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국힘 내부에서) 공식 논의된 건 없다”고 설명했다.

이미 ‘동일노동 동일임금’ 관련법을 추진하고 있는 민주당 쪽에선 김 의원의 법안 발의 취지에 동의하면서도 진의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개정안이 적용 대상에 ‘고용 형태가 다른 근로자’를 명시하고 파견 노동자를 포함한 반면, 민주당 안은 동일가치노동의 개념을 구체화하거나(박광온 의원), 노동시장 양극화의 근본 문제인 도급·위탁·용역·파견 등 간접고용을 제한하고 직접고용 원칙까지 나아간(강병원 의원) 법안이다. 민주당 정책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모든 산별 업종으로 확장해야 하는 문제인데, 재계가 워낙 반대하는데 (국힘이) 그런 것까지 설득할 의지가 있는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에게선 노동탄압 기조를 유지해왔던 여당 입장에서 ‘의미 있는 법안’을 내놓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국민의힘이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간접고용에 있는 사람들도 임금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향적 의미가 포함됐다”고 평가했다. 박은정 인제대 교수(법학)도 “이번 개정안이 차별금지 규정이 있는 비정규직보호법이나 남녀고용평등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다룬다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실제 김 의원 개정안에는 ‘동일가치노동의 기준은 직무 수행에서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 및 작업 조건 등으로 한다’(제6조의2 2항)는 식의 내용만 명시됐다. 박 교수는 “법안이 통과돼도 현장 적용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차별적 처우에 대한 처벌 규정도 없다”고 지적했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는 “(개정안에서) 동일가치노동 기준을 사용자가 정하는 대목은 우려된다”며 “노사가 합의하는 방향으로 수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용자가 동일임금이 적용되는 동일가치노동의 기준을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한편에선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직무성과급제를 도입하기 위한 정지작업에 불과하다는 시선도 있다.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부원장은 “순수하게 직무급을 개편하는 게 아니라 (이번 정부가 추진해온) 직무성과급제 전환의 의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김 의원의 개정안 발의 취지를 보면 “연공형 임금체계(호봉제)에서 직무 형태별, 성과 중심의 세대상생형 임금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지속된다”고 적혀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공식 논평을 내어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직무성과급제 도입 및 확대’ 등과 연동돼 상위의 임금을 깎아 전체 임금을 하향 평준화시킬 것”이라며 “소수의 최상위 임금 노동자와 전체 노동자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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