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상생임금위원회 발족식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노동시장 이중구조 및 임금격차 해소를 논의할 고용노동부 소속 민·관 협의체인 ‘상생임금위원회’가 출범했다. 소외된 노동자를 위한 임금체계 개편 총괄 논의체를 표방했지만, 회의 첫날부터 임금 격차의 주요 원인을 노조 탓으로만 돌리는 한계를 드러냈다. 학계·정부 인사 중심으로 위원회가 꾸려지면서 노동 현장 목소리를 대변할 노동자 참여는 구색 맞추기에 그쳐 그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일 고용노동부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상생임금위원회를 발족하며 “임금을 매개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제도 개편 방안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안 마련을 위한 전문가 집단인 미래노동시장 연구회가 ‘임금 격차 해소 지원을 위한 사회적 대화 기구인 상생임금위원회를 설치하라’고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상생임금위원회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같은 가치를 지닌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은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위한 임금격차 실태조사 △해외 정책 분석 △임금체계를 개편한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원·하청 상생모델 개발 △상생임금 확산 로드맵 마련 등을 주요 과제로 정했다.
특히 이날 상생임금위원회는 노동시장 격차 원인을 ‘노조 소속 노동자의 연공급 임금체계’로 집중해서 짚었다. 연공급 임금체계란,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 등을 의미한다. 발족을 알리는 12쪽의 노동부 보도자료엔 ‘노조’라는 단어가 19번 등장한다. 공동위원장인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유노조·대기업에서 (임금의) 연공성이 집중적으로 나타난다”며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조직화된 근로자들은 과도한 혜택을 받지만, 중소기업·비정규직의 조직화되지 못한 근로자들은 일한 만큼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불균형한 산업 구조, 임금 교섭 형태 등 복합적인 원인이 혼재된 임금 격차 문제를 노동자 사이의 분배 문제로만 한정한 셈이다. 공동위원장인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또한 “이중구조의 주된 원인은 대기업과 정규직 노조의 하청·비정규직에 대한 상생 인식과 성과공유의 부족”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임금 격차를 노동자 간 문제로만 보는 인식은 지나치게 협소한 데다 핵심을 놓친 진단이라고 평가했다.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본질적인 문제인 재벌 중심 경제체계나 원·하청 (불공정 거래로 인한) 착취 구조, 기업별로 쪼개진 노사 관계 등은 빼고 소수 유노조·대기업 노동자의 연공급이라는 지엽적인 문제만 언급했다”며 “해결 방안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구현 취지에 걸맞지 않다”고 말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확립한 국가들은 각 기업을 넘어선 ‘산업별 임금 교섭’이나 노조 조합원이 아니어도 임금 교섭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단체 교섭 효력 범위의 확대’ 같은 방안을 활용했는데, 이러한 정책은 발족식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 정부는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를 내걸었는데, 성과급의 경우 노동자 사이의 경쟁과 격차를 오히려 심화하는 임금 형태로 지목돼 왔다.
더구나 노동자와 사용자 간 자율적 합의가 중요한 임금 문제를 논의하면서, 현장 목소리를 대변할 노동자·사용자 쪽 참여는 구색 맞추기에 그쳤다. 전문가 위원 13명 가운데 11명은 대학교수·연구자로, 그 밖에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과 한석호 전태일 재단 사무총장이 이름을 올렸다. 노동부가 보도자료에서 노동계 인사로 소개한 한석호 사무총장은 이날 <한겨레>와 통화에서 “연 소득 3천만원도 되지 않는 노동자 문제를 제대로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에 고심 끝에 참여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전날까지 위원 명단에 포함됐던 노진귀 전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상생임금위원회 발족 하루 전 위원 자리를 고사했다.
이날 양대 노총은 논평을 내어 상생임금위원회가 임금격차를 해소하겠다면서 노동자 간 갈등만 부채질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상생임금위원회는) 노동시장 임금격차 해소를 빌미로 노·노 갈등을 유발하고, 상생으로 포장한 대기업이윤사수위원회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도 “노동시장 양극화 주된 원인은 재벌 중심 경제체제에 있다”며 “왜곡된 현실진단과 엉터리 해법을 찾아본들 제대로 된 상생 해법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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