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노동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임이자 의원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향 토론회에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유준환 의장 등 참석자들에게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루 9시간씩 일주일에 6일 근무해 주52시간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주 69시간이 통과되면 주말을 아예 안 쉬거나, 과로 위험이 높아질 거에요.”
경북 지역에서 자동차 공장 조립라인 설비 보수·점검을 하는 하청업체 노동자 김아무개(32)씨는 근무경력이 7년에 이르지만 임금이 최저시급과 비슷하다. 잔업과 특근을 하지 않으면 월급이 2백만원이 안될 수도 있어 김씨는 주말 근무도 마다하지 않는다. 김씨는 “상여금이나 성과급이 없고 오로지 시급으로만 임금을 받고 있다”며 “표면적으로는 노동자가 원해서 일을 더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초과 노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임금 체계가 짜여 있는 것”이라고 했다.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자’는 정부안에 대해선 “(대체인력이 없어) 문제가 생기면 밤중이라도 공장에 들어가야 하는데, 휴가를 길게 갈 수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 최대 69시간(7일 근무 80.5시간)’까지 허용하는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방안에 대해 엠제트(MZ)세대 등의 의견을 들어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가운데, 정부가 정작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내몰린 노동 약자들의 목소리는 듣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와 국민의힘은 엠제트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협의회) 위원들의 의견 청취에 나섰지만, 근로시간 문제는 세대 보다 직종별·산업별로 살펴야 한다는 분석이다.
우선 김씨와 같은 블루칼라(생산직) 노동자가 노동시간 관점에선 대표적인 약자로 분류된다. 2021년 노동부가 수행한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와 이를 바탕으로 ‘일하는시민연구소’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장치·기계 조작 및 조립 노동자의 월 평균 노동시간은 187.5시간으로 전체 노동자(164.2시간)보다 23.3시간 길다. 사무종사자(173.5시간)에 견줘도 월 14시간씩 길게 일하는데, 초과근로시간(19.2시간)이 다른 직종(기능직 7.2시간, 사무직 4.4시간 등)에 견줘 압도적으로 길기 때문이다. 근로시간을 유연화하지 않아도 이미 잔업과 휴일근무로 초과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시간 당 임금 수준이 낮아 김씨처럼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가 많다. 장치·기계 조작 및 조립 노동자의 시급은 1만5174원으로 사무노동자(2만66원)의 75%수준이다. 산업별로 보면 광업(월 191.7시간), 제조업(월 185.3시간), 수도·하수·폐기물(월 185.3시간) 순으로 노동시간이 길다.
서비스업 노동자는 시급이 1만2295원으로 전 직종 가운데 가장 낮은데, 이들 노동자가 많이 일하는 도소매·음식숙박업은 52시간 초과노동자 비중이 13.7%로 다른 산업(건설업 5.3%, 제조업 3%)에 견줘 두배 이상 크다. 노동자가 초과근로 수당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에서, 사용자가 인력을 적게 채용해 인건비를 최소화하려고 한다면 노동자는 ‘시간 자율권’을 주장하기 쉽지 않다.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있는 택배기사 등 특수고용노동자와 5인 미만 사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역시 장시간 노동에 노출돼있다. 5인 미만 사업체 노동자 13.7%가 주52시간 초과 노동을 하고 있고, 파견용역노동자(9.2%) 특수고용노동자(7%)도 전체 노동자(4.7%) 보다 초과 노동 비율이 높았다. 주 6일을 꼬박 오전 6시에 출근해 분류작업을 하고 배달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경기 성남 분당지역의 택배 노동자 조아무개(47)씨는 “분류인력을 투입해주겠다고 사회적 합의를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 주 근무시간이 70시간을 훌쩍 넘고 있다”며 “과로로 쓰러지는 동료가 잇따르는데 근로시간 유연화 분위기에 휩쓸려 산업재해 기준도 완화될까 두렵다”고 털어놨다.
노동조합에 소속되지 않은 노동자와 고령 노동자의 노동시간도 살펴봐야 한다. 이들은 유연근로제를 적용받을 때 업무를 몰아서하는 탄력근로제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유연근로제 사용 노동자 중 탄력근로제 적용 비율을 보면, 미노조 노동자는 20.7%로 노조 가입 노동자(16.3%) 보다 많았고, 55~64살 노동자 역시 19.6%로 35~55살(17.7%)보다 많았다. 노조가 있거나 상대적으로 젊은 노동자들이 ‘시차 출근제’처럼 노동자 개인의 필요에 따라 쓸 수 있는 것과 대조된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노인 일자리는 사회적 일자리처럼 아주 짧은 시간이거나, 경비 노동처럼 아주 장시간으로 격차가 크다”며 “경비 노동자들은 4∼5일 연이어 밤샘 근무를 하기도 하지만 구하기 힘든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걱정돼 불만을 제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종진 일하는 시민연구소장은 “정부가 최저임금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영세 제조업 등의 시급을 어떻게 생활임금 수준으로 개선하고, 근로시간을 줄여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며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노동자들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상한 캡’ 설정과 임금 보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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