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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대기업 노조 ‘불법행위’ 보호법?…노동부 장관이 외면한 것들

등록 2023-02-20 15:59수정 2023-02-21 02:46

21일 ‘노란봉투법’ 환노위 전체회의 상정
이정식 장관 언급 ‘9개 사업장’ 살펴보니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조합법 상 쟁의행위 범위를 확대하고 기업의 노동자에 대한 무분별한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을 두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국회에 신중한 검토를 요청하고 나섰다. 특히 이 장관은 이 법이 ‘일부 노동조합’(민주노총)과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보호한다고 거듭 주장했는데, 그 근거로 삼은 손해배상청구 사건들이 오히려 노란봉투법의 필요성을 드러낸다는 반론이 나온다.

20일 이정식 장관은 브리핑을 열어 노란봉투법이 “헌법·민법과 충돌문제, 노사관계 및 법·제도 전반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추진되었다”며 “국회가 다시 한번 신중하게 고민해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은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된다. 이 장관은 특히 이 법이 “일부 노동조합의 불법행위를 과도하게 보호하게 될 것”이라며 “기존 대기업·정규직 노동조합은 정당한 쟁의행위 범위 확대와 불법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예외를 통해 더욱 두텁게 보호 받고 다수의 미조직 근로자에게 그 비용이 전가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 장관과 노동부는 16일 관훈클럽 토론회, 보도반박자료 등을 통해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 노동부의 실태조사 결과를 든 바 있다. 지난해 10월 노동부가 발표한 ‘손해배상 소송·가압류 실태조사 결과 및 해외 사례’는 ‘민주노총을 상대로 제기된 (기업의) 손해배상 소송이 전체의 94%(151건 중 142건)이고, 9개 대규모 사업장(현대제철·대우조선해양·쌍용차·현대차·한국철도공사·문화방송·한진중공업·케이이시·갑을오토텍)이 제기한 소송이 전체 손해배상 청구액의 80.9%’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는 이 실태조사가 시민단체 ‘손잡고’의 손배가압류 소송 사건 기록을 모은 아카이브를 참고했지만, 손잡고 스스로 이 아카이브가 ‘전체 기록으로 볼 수는 없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는 점이다. 손잡고 운영 위원이기도 한 윤지영 ‘노동법2·3조 개정운동본부’(운동본부) 정책법률팀장은 “민간단체인 손잡고가 수집할 수 있는 소송 자료는 주로 민주노총을 통해서 구할 수 있는 사건에 한정됐고 그 때문에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이 많이 포함됐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정부가 ‘대규모 기업’ 소송이라고 밝힌 9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 사건을 살펴보면 최근으로 올수록 하청·비정규직 등 노동시장 약자를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다. 손배 청구액 기준 상위 9개 기업 가운데 현대제철(2021년), 대우조선해양(2022년) 등이 최근 낸 소송 대상은 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비정규직·하청 노동자가 대상이었다.

예컨대 현대제철은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근로자가 아니므로 단체교섭 상대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246억1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지난해 1심 법원은 현대제철의 불법파견을 인정하며 이들이 현대제철의 노동자임을 인정했지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윤지영 변호사는 “하청·비정규직에 집중되는 최근 손해배상 청구의 흐름을 보면 정부가 말하는 약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이들이 법정 다툼과 갈등으로 긴 시간을 고통 받는 대신, 노란봉투법을 통해 노동 기본권을 보장받고 스스로 교섭할 권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법이 규정한 지나치게 좁은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 범위로 인해 갈등이 격렬해진 경우도 9개 대기업 사건 가운데 여럿 포함됐다. ‘정리해고’가 문제가 된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 ‘공정방송’을 요구한 <문화방송>(MBC)이 대표적이다. 정리해고는 노동자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지만 단체교섭이나 쟁의행위의 대상으로 인정받지 못해 노동자와 회사 사이에 갈등이 특히 격렬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2012년 ‘공정보도’를 요구했던 문화방송 노동자의 파업 또한 회사는 “근로조건을 벗어난 파업(목적)”이라며 195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2022년 대법원은 이를 ‘방송사업 종사자의 근로조건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판단해 정당한 쟁의행위임을 인정했다.

손해배상청구액 상위 9개 기업으로 꼽힌 케이이시(KEC)와 갑을오토텍은 미리 짜놓은 계획에 따라 파업을 유도한 뒤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 노조를 파괴하려 했음이 드러난 회사다. 2011년 드러난 KEC의 노조파괴 시나리오인 ‘인력구조조정로드맵’에는 “손해배상 가압류로 경제적 압박”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지난해 서울고법 또한 이같은 기업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해 회사에 노동자들에 손해배상 할 것을 요구했다. 다만 이와 별개로 노동자들은 기업에 30억원의 손해배상액을 3년동안 모두 갚아야 했다.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는 “고용노동부가 대기업 노조·민주노총을 강조하려고 제시한 9개 기업에서 봐야할 것은 오히려 취약한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와 교섭 거부가 격렬한 파업으로 이어지고, 이에 대해 막대한 손해배상이 청구되는 구조”라며 “노사관계가 갈등보다 교섭과 대화를 바탕으로 나아가고, 미조직 노동자도 노동조합을 만들어 노동권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 위해서라도 노란봉투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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