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해 6월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간 제도 개편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6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에 대해 “파업 만능주의로 사회적 갈등이 커질 것”이라며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노란봉투법이 법치주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입법이며, 노사 관계의 불안과 경제적 손실로 인해 노사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계의 노란봉투법 반대 논리와 판박이다. 경제부처 장관도 아닌 노동 주무 장관이 재계 대변인 노릇을 자처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지난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개념과 ‘노동쟁의’ 대상을 확장해 ‘합법 파업’의 범위를 넓히는 것을 뼈대로 한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과 교섭할 권리를 보장하고, 파업이 ‘웬만하면 불법’인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사쪽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헌법이 규정한 노동3권 보장’이라는 노동조합법의 목적에 비춰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줄곧 한국 정부에 권고해온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재계는 원-하청 간 산업생태계 교란, 법치주의 훼손, 노사 관계 파탄, 경제 악영향 등 온갖 ‘혐의’를 씌워 노란봉투법 폐기를 주장해왔다. 불법 파업에 대한 손배소 자체를 금지하자는 게 아님에도 ‘불법 파업 면책법’ ‘불법 파업 조장법’이라는 왜곡된 주장까지 폈다. 이정식 장관의 발언은 재계의 주장을 ‘복붙’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선 “(파업을) 법 테두리 안에서 하면 손해배상 얘기가 안 나온다”고 했다. 지나치게 협소한 ‘법 테두리’를 헌법과 국제 기준에 맞게 넓히자는 것이 노란봉투법의 취지인데, ‘동문서답’이 아닐 수 없다.
이 장관의 노란봉투법 비판은 ‘약자 보호’를 역설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노란봉투법이 약자 보호를 위한 상생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하청 노동자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원청 사업주와 교섭할 권리를 보장하는 게 왜 대안이 아니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청년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대다수 청년들이 간접고용 노동자로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궤변에 가깝다. 노동 약자의 삶을 개선하려면 되도록 많은 이들에게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상식을 노동운동가 출신 노동부 장관이 외면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