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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용산 대통령실에서 ‘다음 소희’를 상영하라 [김영희 칼럼]

등록 2023-02-20 14:38수정 2023-02-21 02:37

파묻힐 뻔한 홍양의 사건을 공론화한 건 몇몇 언론사 기자들과 지역 시민단체 그리고 민주노총 전북본부 같은 노조였다. 2020년 구로디지털단지의 한 외국계 보험회사 하청 콜센터에서 코로나 집단감염이 나타났을 때, 그들의 실태를 알리고 도움을 준 건 소속 원청 회사의 노조였다.
영화 <다음 소희>의 한 장면.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영화 <다음 소희>의 한 장면.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김영희 | 편집인

윤석열 정부의 엠제트(MZ)세대 사랑이 요즘 각별하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우리 노동시장이 여전히 후진적 모습에 머물러 있다며 “그 피해는 미래세대와 노동시장의 약자에게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뜨거운 사랑’을 보내는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두달 전 영빈관에 200여명 청년을 초청해 ‘미래세대가 이권 카르텔에 의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할까’ 우려해 출마했다며 노동 개혁 지지를 당부했다. 역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들을 만나선 노-노 간 비대칭구조가 노동 개혁의 핵심이라며 이는 ‘이중구조가 아니라 착취구조’라고 일갈했다. 얼마 전 유튜브 쇼츠 ‘윤석열 대통령의 단짠단짠-MZ 공무원과의 대화 비하인드 컷 공개’를 보면, “산업 현장의 불법들이 판을 치게 놔두면 그게 정부고 국가인가” “노조 채용 장사를 국가가 놔둬도 되는 것인가”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노동계의 투쟁에 늘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단호한 모습도 한두번이지, 노조가 기업보다 힘이 큰 양 하루가 멀다 성내는 모습은 의아하다.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대통령이 말하는 ‘미래세대’가 누구인가라는 대목이다.

개봉 중인 영화 <다음 소희>는 엘지유플러스(LGU+) 고객센터 위탁업체인 엘비(LB)휴넷의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다 2017년 1월 저수지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전주의 특성화고 3학년 홍수연양 실화가 모티브다. 서울의 내가 그 사건을 인지했던 건 그해 3월 이후였던 것 같다. 탄핵의 촛불이 전국을 덮었던 때이기도 하지만, 회사, 학교, 노동청, 교육청, 경찰, 어느 한곳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학교·회사·홍양이 맺은 현장실습계약과 회사에서 홍양에게 건넨 근로계약서는 급여도, 하루 노동시간도 달랐다. 2011년 자동차 공장에서 주 70시간 가까이 일하던 현장실습생이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야근과 8시간 이상 근로 등이 금지됐지만, 홍양은 콜 수를 못 채우거나 ‘과책’을 이유로 저녁까지 남아 있는 날이 많았다.

대통령실은 유튜브 쇼츠 영상을 공개하며 이날 대화에 ‘엠제트(MZ) 공무원’이 절반이 넘었다고 강조했다. 유튜브 갈무리
대통령실은 유튜브 쇼츠 영상을 공개하며 이날 대화에 ‘엠제트(MZ) 공무원’이 절반이 넘었다고 강조했다. 유튜브 갈무리

영화 속 소희가 일하는 곳의 풍경은 공식 종사자 40만명, 비공식적으론 200만명까지 추산되는 전국 콜센터의 현실이다. 서울 구로의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 산재한 콜센터를 연구한 인류학자 김관욱은 <사람입니다, 고객님>에서 ‘감정노동’이란 단어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그곳의 삶을 보여주며 과거의 ‘공순이’가 현재의 ‘콜순이’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화장실 가기는 단 1명씩만 허용돼, 수치심을 무릅쓰고 메신저 방에 ‘손’이라고 써서 의사를 밝히거나 사무실 벽에 걸린 부채를 잽싸게 일어나 쥐어야 갈 수 있는 곳도 있다. 영화에서 소희가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에 끌리듯 가게를 나와 저수지에 이르는 모습은 이 책 가운데 한 여성노동자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이 콜센터는 햇빛이 없는데도 블라인드를 내려요. 콜만 열심히 받으면 되지 창밖을 볼 필요 없다는 거예요.”

오늘의 현장실습생이 내일의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고 있다. 2009년 설립된 엘비휴넷에 2016년 9월 입사한 홍양은 212기였다. 약 2주마다 사람들을 뽑은 꼴이다. 2016년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 유지보수를 하다 숨졌던 김군도 현장실습생 형태로 은성피에스디(PSD)에 입사했다. 원청의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하청업체에 현장실습생은 갈아 끼우면 되는 값싼 부품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그들에게 손을 내민 건 누구였나. 영화에선 배두나가 맡은 경찰이지만, 현실에서 파묻힐 뻔한 홍양의 사건을 공론화한 건 몇몇 언론사 기자들과 지역 시민·노동단체 그리고 민주노총 전북본부 같은 노조였다. 2020년 구로의 한 외국계 보험회사 하청 콜센터가 코로나 집단감염 ‘원흉’처럼 찍혔을 때, 그들의 실태를 알리고 지원한 건 원청 회사의 노조였다.

정부는 연일 노조 회계 투명성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을 계기로 기업들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2018년부터 시행된 개정 외부감사법을 완화하려 하고 있다. 기업들이 회계법인을 자유선임하는 기간을 현행 6년에서 9년으로 늘리거나, 지정감사를 받는 기간을 3년에서 2년으로 줄이자는 안이 금융위원회 연구용역 결과 발표됐다. 기업 비용이 가중된다는 이유다.

이렇게 기업 비용을 걱정하는 정부에서 설사 정규직 노조가 ‘이기주의’를 내려놓더라도 그 비용이 하청업체나 중소기업으로 제대로 흐를까. 윤 대통령이 진심으로 미래세대를 걱정한다면 대기업의 비용 후려치기부터 경고하는 게 순리다. 하나 더, 대통령의 진심을 보이는 방법이 있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다음 소희>를 상영하시라. 이 영화를 보고 청년노동자들과 유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시라. 기우겠지만, 극장에서 김건희 여사와 팝콘을 나눠 먹던 사진 같은 이벤트는 없어야 한다.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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