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은 구직자들이 실업급여 설명회장에 들어가려고 줄을 서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
실업급여·현금지원·직접일자리를 줄여 구직자의 취업을 촉진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윤석열표 고용 정책의 밑그림’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고용 정책에 견줘 인력난을 겪는 기업들의 미스매치 해소에 집중한 반면, 공공의 역할을 축소하고 일자리의 질에 대한 언급은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일자리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제5차 고용정책 기본 계획’(2023~2027년·고용 기본 계획)을 발표했다. 청년, 여성, 고령자 등 노동 취약계층의 고용률을 집중해서 관리하되, 그 방식은 주로 실업급여, 근로장려금(EITC), 기초생활보장 제도 등 정부의 지원 문턱을 높여 취약층의 ‘도덕적 해이’를 줄이는 데 맞췄다. 노동부는 “그동안 우리 일자리 정책은 현금지원, 직접일자리 확대 등 단기·임시 처방으로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는 선택을 해왔다”며 “미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민간의 일자리 창출 여건을 조성하는 데 미흡한 측면이 있었다”고 정책 전환의 배경을 설명했다.
우선 정부는 기본계획에서 구직자의 구직활동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고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는 실업 인정의 문턱을 높이기로 했다. 국회에 계류돼 있는 ‘고용보험법 등 개정안’의 입법을 지원하는데, 이 법은 구직급여 반복 수급을 막기 위해 5년간 세 번 이상 구직급여를 수급할 경우, 급여액을 3회 10%, 4회 25%, 5회 40%, 6회 이상 50% 감액하는 내용이다. 이에 더해 현재 최저임금의 80%인 구직급여 하한액을 이보다 더 낮추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노동부 쪽은 “구체적인 방식은 논의되지 않았지만 세금을 제할 경우 최저임금 보다 높아지는 구직급여 하한액을 낮추는 방향 자체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근로 빈곤층을 지원하는 근로장려금 또한 “저소득 근로자의 근로의욕을 고취시키는 방향으로 개편하겠다”고 했다. 근로장려금은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이 일정 정도 오를 때까지 장려금을 늘리다가 이후 감소되는 형태인데, 현재 설계로는 단시간 노동을 할 때 더 많은 지원금을 받게 되어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노동부는 “아직 구체적인 방향을 정하지는 않았다”면서도 “더 일하는 이들의 장려금을 높여 근로 의욕을 고취하는 데 재원이 한정적일 경우, 덜 일하거나 부양가족이 적은 구직자는 지원금을 줄이는 방안도 열어 놓고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노동부는 근로능력평가를 통해 일할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가운데 더 많은 이들을 고용 정책인 국민취업제도로 편입하기로 했다. 이 제도는 월 2회 이상의 적극적인 구직 노력 의무를 부여한다. ‘일할 수 없는 몸’임을 인증해야 하는 근로능력평가는 그동안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넓히는 제도로 지적받아 왔는데, 여기 더해 더 많은 빈곤층이 구직 노력까지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정부는 온전한 노동 능력을 가지기 어려운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공공형 노인 일자리 사업’은 적정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대신 주로 55~64살의 건강한 고령층을 일하던 곳에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계속고용제도는, 임금을 낮추는 임금체계 개편과 함께 논의하기로 했다.
정부의 지원을 줄여 취약 계층의 취업을 독려하지만, 그렇게 취업하게 될 ‘일자리의 질’에 대한 논의는 이번 기본 계획에 담기지 않았다. 앞선 기본 계획인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2017년)이 비록 현실화되진 못했지만 노동시장 격차 해소와 근로조건 개선을 내걸며 ‘공공 일자리 81만명 확충’ ‘일자리 안전망 강화’ 등을 앞세웠던 것과 방향 자체가 달라졌다. 정경훈 노동부 노동시장정책관은 “현재 소득이 없는 분들이 빨리 소득이 있는 일자리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정부의 고용 정책 밑그림이 발표되자, 노동 취약 계층이 충분한 직업 탐색 기간이나 교육·훈련 없이 쫓기듯 취업할 경우 저임금·불안정 일자리가 양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어 이번 고용 기본계획이 “친사용자적 일자리 대책이며, 향후 고용취약 계층의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은 “열악한 일터라도 일단 일해야 하는 취약 노동자가 고용 시장에 많아질수록 기업이 일터의 질을 높일 유인이 약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