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조선소 노동자 천명가량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88%가 “조선소 노동자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답했다. 이유는 보고서 조사와 놀라우리만큼 똑같다. 저임금(47%), 높은 노동강도(25%), 작업장 안전(17%). 그렇게 떠난 노동자는 일감이 늘어도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도장 업무를 20년 가까이 해온 어느 노동자는 <매일노동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떠나간 동료들에게 같이 일해 보자고 하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조선소 불황 오면 다시 내쳐질 게 뻔한데 왜 굳이 들어가느냐 한다.”
이상헌 |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싫으면 떠나라.”
번잡하거나 민감해진 일에 또 다른 목소리를 보태면 이런 반응이 나올 때가 많다. 딴에는 좋은 뜻으로 꺼낸 말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돼버리면, 마음 접고 미련없이 떠나게 된다. 훗날 남은 사람들이 그 목소리의 소중함을 알게 될 때도 있으나, 때늦은 후회일 뿐이다.
물건에 냉정하게 가격을 매기고 팔고 사는 시장경제는 이런 번잡한 고민의 여지를 아예 없애자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다. 물건이 마음에 안 들고 서비스가 신통치 않으면, 안 사면 그만이다. 더 좋은 물건과 서비스를 다른 곳에서 사면 된다. 불평할 것도, 말 섞을 것도 없다. 또 그렇게 해야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라는 것이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믿음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실이 그리 간단치 않다. 어떤 때는 냉정한 등돌림보다 목소리 높이는 것이 필요하고 더 효율적일 때도 있다. 자동차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차로 옮겨 가면 되지만, 자동차의 안전성이 문제라면 목청을 높이는 게 낫다. 음식 맛이 별로라면 옆 식당으로 가면 그만이지만, 위생이 문제라면 식당 주인과 얼굴을 붉히는 것이 좋다. 소비자의 선택 자체가 제한적인 경우도 있다. 시장이 독점적이거나 기업들끼리 짬짜미하는 상황에서 등돌림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 뿐이다. 제품 질은 떨어지는데 가격은 비싸지고, 안전과 건강도 같이 나빠진다. 이런 때는 ‘목소리 내기’가 시끄럽긴 하지만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다. 반세기 전에 앨버트 허시먼이라는 경제학자가 ‘떠나기’보다는 ‘목소리 내기’가 나을 수 있다고 주장한 이유다.
이런 ‘목소리 내기’는 일터에서 특히 중요하다. 노동자는 소비자처럼 물건 바꾸듯이 고용주를 바꿀 수 없는데다, 일하면서 쌓은 숙련된 기술을 가진 노동자들이 유목민처럼 옮겨 다니는 것은 기업에도 그다지 득이 되지 않는다. 떠나면 그만인 것도 아니다. 빈자리에 사람을 새로 뽑고 생산수준과 품질을 유지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이 든다. 그래서 고용관계는 돈 받고 일하는 상품관계이지만, 필연적으로 시끌벅적하다.
지난여름에는 짠내 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묵직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이대론 살 순 없다”고 하소연했다. 조선업종 경기는 좋아진다며 봄소식인데, 임금은 여전히 꽁꽁 얼어붙은 겨울날이었기 때문이다. 그 험하다는 조선소 일 중에서도 힘들다는 용접, 도장, 발판작업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조선업계와 정부는 용접 불꽃이 튀는 곳에 가스통을 밀어 넣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듯이 대응했고, 결국 노동자는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4.5% 인상에 합의하고 물러났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쇳밥일을 하면서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액수의 손해배상 청구가 뒤따랐다. 목소리를 냈다가, 완전히 투항하거나 아니면 떠나라는 메아리만 돌아왔다.
그런데, 사실 노동자는 벌써 떠나고 있었다. 지난달 ‘2022년 조선해양산업 인력현황 보고서’가 나왔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 지원을 받아서 작성된 보고서인데, 조선업계의 자업자득을 담담하게 숫자로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기존 기술인력은 썰물처럼 빠져나오는데 새로운 인력 유입은 기약 없다. 그 결과, 지난해 조선업종 미충원율은 두배 가까이 올라 30.9%에 이르렀다. 전산업 평균의 두배가 넘는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해당 보고서는 선박 도장 인력을 중심으로 그 이유를 꼼꼼히 분석했다. 우선 조선업계의 호황으로 인력 수요가 늘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이유를 꼽은 업체 비율은 7%에 불과했다. 대신, 무려 60%가 이직이나 퇴직으로 인한 결원을 꼽았다. 한마디로 노동자들이 조선소 도크를 떠나고 있다. 그러면, 떠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보고서는 경력 인력이 퇴사하는 가장 큰 이유로 저임금을 들었다. 39%다. 여기에 “장기간 근로 및 높은 노동강도”(12%)도 겹쳐 있다. 현재의 기술과 경험으로 다른 곳에서 보다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옮기는 비율도 상당하다. 한마디로, 대우가 마땅치 않으니 노동자들은 조선업을 떠난다.
물론 빈자리는 새로운 사람으로 채우면 된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신규인력 충원은 대부분 두가지 때문에 어렵다. 저임금(41%)과 구직자 기피업종(33%)이다. 요약하자면 임금, 작업환경, 안전이 문제다. 게다가 어찌어찌 신규인력을 뽑아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곧 떠난다. 이유는 똑같다. 저임금(49%), 장시간 노동과 높은 노동강도(16%), 근로환경(9%). 이를 근거로 보고서는 조선업종에 가장 필요한 1순위로 “임금문제 개선”을 꼽았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봄 조선소 노동자 천명가량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88%가 “조선소 노동자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답했다. 이유는 보고서 조사와 놀라우리만큼 똑같다. 저임금(47%), 높은 노동강도(25%), 작업장 안전(17%). 그렇게 떠난 노동자는 조선 수주가 늘고 일감이 늘어도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도장 업무를 20년 가까이 해온 어느 노동자는 <매일노동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떠나간 동료들에게 같이 일해 보자고 하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조선소 불황 오면 다시 내쳐질 게 뻔한데 왜 굳이 들어가느냐 한다.”
어찌 보면, 지난해 조선소 하청노동자 파업은 잔뼈 굵은 조선노동자들의 ‘마지막 외침’이었다. 그걸 끝으로 노동자들은 떠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떠남의 상처와 비용은 크기 마련이다. 정부는 서둘러 숙련기능인력 충원하겠다며 취업정착금, 조선업희망공제 지원, 훈련지원금 등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다. 당장 수백억원 이상 재원이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기업이 감당해야 할 비용을 정부와 사회가 떠맡고 있다. 부랴부랴 외국노동자들도 데려올 계획이다. 엠제트(MZ)세대가 조선업에 유입되도록 각종 혜택도 마련한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문제의 핵심인 임금에 관해서는 여전히 모호하거나 아예 말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직업훈련을 통해 젊은 인력을 양성한다고 한들, 그들이 조선업에 남아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배움이 끝난 뒤엔 그들도 떠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목소리를 내서 경제가 파탄 난다고 걱정했다면, 이제 목소리 내는 것을 포기하고 떠나가는 것의 비용은 얼마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그게 진정 경제와 기업을 걱정하는 자세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한다면, 그 절에는 ‘땡중’만 남게 되고 사람은 더는 절을 찾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