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노동시장 개혁 방안 마련을 위한 전문가 집단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이하 연구회)가 발표한 권고안은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정부의 국정과제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이뿐만 아니라 파견법제 개선, 파업 때 대체근로 허용 등 경영계 숙원 사항들도 후속 과제에 포함돼, 노골적인 친정부·친기업 행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12일 발표한 연구회의 권고안을 보면, 핵심 내용에 해당하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 월·분기·반기·연 단위 확대는 지난 6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동시장 개혁 방안의 핵심 과제로 꼽았던 내용이면서, 경영계의 대표적인 건의사항이었다. 지난 6월, 당시 주 단위로 관리되던 연장근로(주 12시간)를 월 단위(월 52시간)로 관리 단위를 늘리고, 이를 한 주에 몰아 쓰면 주 92시간 노동이 가능하다는 비판이 잇따랐는데, 이번에 연구회는 ‘11시간 연속휴식 보장’을 옵션으로 내세워 정부의 발표를 사실상 확정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미래의 노동시장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국정과제를 연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노동시간 관리단위와 임금체계 개편을 핵심 내용으로 한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1시간 연속휴식 보장이 전제된다 하더라도 주 최대 80.5시간, 1주에 하루를 쉬어도 69시간 근무가 가능하고,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로 연장근로가 특정 기간에 집중되면 과로에 따른 질병 위험성도 높아진다. ‘뇌심혈관계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은 발병 전 4주 동안 평균 주 64시간을 일한 경우 업무와 질병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판단한다. 노동부는 이 기준을 근거로 특별연장근로 인가 때 주 64시간을 최장 노동시간으로 삼는데, 연구회의 권고대로 근로기준법 개정이 추진되면 뇌심혈관 질환을 유발하는 장시간 노동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연구회가 권고한 △선택적 근로시간제(정산 기간을 평균해 주 52시간을 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노동자가 출퇴근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 정산 기간 전 업종 3개월로 확대 △근로시간 저축계좌제(연장근로를 저축해 휴가로 쓰는 제도) 도입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근로시간 규제 제외 △부분근로자대표제 도입 △임금체계 개편 추진 등도 윤 대통령 공약이나 정부 국정과제 등과 겹친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 노동시장 개편안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애초 정부는 지난 6월만 하더라도 시급한 과제인 근로시간과 임금체계 개편만 먼저 연구회에 대안 검토를 맡기고, 나머지 노동시장 개혁과제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해 논의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이번 연구회 권고에는 후속 과제로 주로 경영계가 요구해왔던 파견법제 개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개정 관련 내용을 포함시켰다.
파견법과 관련해 연구회는 “(파견업무) 대상과 기간 조정, 고용안정 도모, 사용사업주 책임 강화 등 파견제도 전반의 개선 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파견허용 업종을 늘리고 현재 2년인 파견 기간 역시 늘려야 한다는 경영계의 요구는 반영된 반면, 노동계가 주장해왔던 불법파견 처벌 강화 등은 권고에서 빠졌다. 노사 관계에서 예민한 주제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도 후속 과제로 포함시켰다. “노동조합 설립·운영, 단체교섭 구조, 대체근로 사용 범위, 사업장 점거 제한 등 법·제도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는 권고인데, 이 가운데 대체근로 사용 범위 확대, 사업장 점거 제한 등은 경영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내용이다. 정부가 연일 민주노총 등 노조에 대한 강경한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실제 입법으로 추진한다면 노정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18일 출범한 연구회는 노동법·경제·경영·보건 등 대학교수 12명으로 꾸려졌다. 이른바 ‘보수’ 일색으로 꾸려진 위원회는 아니었지만, 권고의 내용은 기업의 요구가 많이 반영됐다. 논의 과정에서도 경영계·전문가 간담회는 여러번 있었지만, 노동계와의 공식적인 간담회는 열리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성명에서 “평생 적게 받고 많이 일해 자본(기업)의 곳간을 채우라는 것”이라며 “노골적인 친기업 행보”라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회도 논평을 내어 “사용자들이 요구한 연장노동시간 관리단위 확대 등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내용인 반면, 노동자의 건강권 보장과 휴식·휴가 등의 조치는 매우 추상적이고 개괄적”이라며 “이 권고문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하는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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