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 다양화 등을 담은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고용노동부 의뢰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검토해온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12일 연장근로 정산 기간을 ‘월 단위’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을 뼈대로 하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현재 ‘1주 12시간’인 연장근로 한도를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특정 시기에 일을 몰아서 시킬 수 있어 집중근로에 따른 과로 위험이 커진다. ‘노동시장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재계의 숙원인 ‘노동시간 유연화’를 밀어붙여 ‘주 52시간제’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장시간 노동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연구회는 노동자에게 근로일 사이 ‘11시간 연속휴식’을 보장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이렇게 하더라도 한주에 최장 69시간을 몰아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휴일 없이 일할 경우 한주 노동시간이 80.5시간까지 늘어난다. 노동시간 총량이 같더라도 특정 시기에 몰아서 일을 하면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 고시는 뇌·심혈관계 질환 발병 전 1주일 이내의 업무시간이 발병 전 12주간의 평균보다 30% 이상 증가한 경우 ‘단기 과로’로 분류해 질병과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한다. 연구회의 권고안은 선택근로제 정산 단위를 3개월로 확대하는 등 ‘몰아서 일하기’의 길을 터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노동부와 연구회는 ‘노사 합의’와 ‘자율적 선택’을 강조한다. 연장근로 정산 기간을 확대하려면 과반수 노조 또는 ‘과반수 노동자를 대표하는 자’(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를 거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처럼 노사관계가 사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황에서 노사 합의는 허울에 그칠 공산이 크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4%로 다른 선진국과 견줘 턱없이 낮다. 근로자대표 제도도 대표를 뽑는 절차 등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아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하다. 사용자 뜻대로 ‘노동시간 선택권’이 오남용될 우려가 크다는 얘기다.
정부는 그동안 유럽 국가들의 노동시간이 유연하다는 점을 들어 우리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 나라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다. 지난해 한국의 노동시간은 1915시간에 이르지만, 독일은 1349시간, 프랑스는 1490시간에 불과하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99시간이나 길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노동시간 유연화가 아니라 노동시간의 단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