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장 개편의 밑그림이 나왔다. 현재 주 단위로 규제가 이뤄지는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월과 분기, 반기, 연 단위로 다양하게 하자는 게 핵심 내용이다. 이 경우 현행 1주 최대 52시간인 노동시간이 80.5시간까지 가능해지는 등 노동시간 단축 흐름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고용노동부 의뢰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검토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했다. 우선 현행 주 단위인 연장근로의 단위 기간을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는 방안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선 원칙적으로 일주일간 노동시간이 40시간을 넘을 수 없지만, 사용자와 노동자가 합의하면 1주일에 최대 12시간 연장노동이 가능하다. 연장근로의 단위 기간을 월 단위로 확대할 경우 한달치 연장근로시간에 해당하는 52시간(12시간×4.345주)을 한달 범위 안에서 몰아서 쓸 수 있다. 근로기준법에 1주에 7일 근무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없어, 주 7일을 일할 경우 1주일에 최대 40.5시간까지 초과근무가 가능해진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연구회) 좌장을 맡은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왼쪽 둘째)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연구회는 장시간 연속 노동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분기 단위는 월 단위 대비 90%인 140시간, 반기 단위는 월 단위 대비 80%(250시간), 연 단위는 월 단위 대비 70%(440시간) 수준으로 제한하자고 제안했다. 또 노동자가 일을 마친 뒤 다음 일하는 날까지는 최소 11시간의 연속 휴식을 보장해 건강권 보호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하루 24시간 중 11시간 연속 휴식 시간을 뺀 13시간에서 근로기준법상 4시간마다 30분씩 줘야 하는 휴게시간을 고려하면, 특정 주에는 매일 11.5시간씩 7일 최대 80.5시간, 1주에 하루를 쉬더라도 69시간 근무가 가능하다.
연구회는 이 밖의 노동시간 개혁과제로 △근로일과 출퇴근 시간 등에 대한 노동자의 선택 확대 △야간노동에 대한 보호 조치 마련 등을 제시했다. 임금체계와 관련해선 호봉제 등 연공급 중심의 틀을 벗어나 직무와 성과를 반영한 임금체계로 개편하라고 제안했다.
노동계는 이번 권고안이 노동시간 단축에 역행하는 안이라며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성명을 내어 “이번 권고안이 노동자의 자율적 선택권보다는 노동시간에 대한 사용자 재량권을 확대해 유연 장시간 노동체제로 귀결되고, 노동자 임금을 저하시킬 가능성이 크다”며 “전면 재검토하라”고 촉구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본부장은 “권고안이 기업의 수요 변동이나 기업 활동의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취지 이외에 실제 노동자의 선택권을 통해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는 쪽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전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근로시간 단위기간 확대와 임금체계 개편은 즉각 추진하고 추가 과제는 사회적 논의를 거치기로 했다. 내년 초께 관련 추진일정을 발표할 계획이지만, 근로시간 관련 내용 대부분은 근로기준법 개정 사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미래연구회 자체가 대기업 편향적인 인사로 구성되고 노동자와 사용자가 참여하지도 않는 등 문제가 많다고 지적해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김영진 의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권고안이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지 등을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꼼꼼히 따지겠다”고 말했다.
전종휘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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