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23일 국회 앞에서 대한의사협회가 “문제는 인원이 아니라 배치다”는 현수막을 들고 의사 증원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2025학년도 입시에 의과대학 신입생 정원을 현재 3058명에서 3570명으로 512명 늘리는 방안을 확정함에 따라 의사 증원 논의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올해 1월부터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열어 의사 증원도 논의 중이었으나, 구체적인 정원 규모에 대해선 안건으로 다루지 못했다.
의대 정원을 지금 수준보다 512명 늘려 10년 동안 유지할 경우 의사 부족 문제의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10년 동안 의사 5천여명을 추가 양성하는 것을 전제로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로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수준을 맞추기엔 부족하지만, 응급·분만·소아 등 필수의료 분야를 비롯한 각 진료 과목에 고루 배분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정부 방안엔 2025학년도 이후 늘어난 정원을 유지할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국내 인구 1천명당 활동 의사 수(한의사 제외)는 2.1명으로 오이시디 회원국 평균 3.7명에 크게 못 미친다. 여나금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부연구위원이 16일 복지부가 주최한 ‘의료보장혁신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2019년 한국 의사 1명당 진찰 건수는 6989건으로 오이시디 회원국(평균 2130건) 가운데 가장 많았다.
정부 계획대로 의사를 늘리기 위해선 의협 등 의사단체 반발을 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유행 첫해인 2020년 의대 신입생 정원을 매년 400명 늘려 10년 동안 의사 4천명을 충원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의사들의 집단 진료거부 등 거센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의협은 여전히 의사 증원이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필수의료 진료과목 의사 부족 문제는 의사 수가 부족해서가 아닌 의사가 이런 분야에서 일할 유인책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의협 관계자는 “(대형병원 등) 필수의료 과목은 의사들의 격무 관행으로 지탱돼왔다”며 “전공의를 육성할 지원 방안이나 근무환경 개선 없이는 의사 수를 늘려도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의료계 내부에선 2020년 집단 진료거부 때와는 다른 분위기라는 분석도 있다. 당시 최대집 회장이 주도한 의협 집행부는 의사 증원이나 비대면 진료 제도화 등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의료 정책을 반대했던 것과 달리, 이필수 현 회장을 비롯한 의협 집행부는 윤석열 정부에 대해 상대적으로 ‘협상 기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시한 비대면 진료 제도화 방안에 대해 의협이 ‘진료 범위를 재진 환자로 제한한다’는 조건을 붙여 수용한 게 대표적이다.
의협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의료계 관계자는 “2020년 집단 진료거부로 응급실 등 필수의료 분야까지 차질이 생기며 의사단체에 대한 지탄 여론이 커졌다”며 “(2020년 집단행동의 구심점이었던) 전공의 단체도 근무 여건 개선 같은 요구 사항을 충분히 얻어내지 못한 채 당시 파업을 끝냈다는 생각이 있어 의협이 주도하는 집단행동에 쉽게 동참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부 계획대로 의대 정원을 늘린다 하더라도, 의사들이 수익이 좋은 인기 과목이나 수도권에 몰리지 않고 각 지역 필수의료 현장에서 일하도록 하는 정책이 동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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