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초빙교수가 지난 8일 오후 자신의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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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12일, 인천의 상급종합병원인 가천대 길병원이 “의료진 부족”으로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를 중단했다. 지난 몇년 동안 소아청소년과를 지원한 전공의가 거의 없었던 결과였다. 이 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2명을 새로 채용하면서 지난 1월 말부터 입원 진료를 재개했지만, 전공의는 충원하지 못했다. 소아청소년과 기피 현상은 보편적이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1일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전국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50곳의 올해 상반기 전공의 확보율은 20.1%에 그쳤다. 이들 병원의 76%에 이르는 38곳은 아예 전공의를 단 한명도 구하지 못했다.
의료법은 소아청소년과와 더불어 내과, 외과, 산부인과 등을 ‘필수진료과목’으로 규정하고 있다. 통상 ‘필수 의료’라고 할 땐 이에 더해 응급환자, 중증환자를 돌보는 과도 포함한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구인난에서 확인되듯, 필수 의료 분야의 인력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지역 의료 공백과 공공의료 부족도 심각하다. 가장 큰 원인은 2006년부터 지금까지 의과대학 정원을 연간 3058명으로 묶어둔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올해 초 의료현안협의체를 가동해 이런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지만, 엉뚱하게도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간호법 제정 추진을 의협이 문제 삼으면서 제동이 걸렸다.
지난 8일 오후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초빙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나, 이런 난맥상의 해법을 물었다. 예방의학 전문가인 나 교수는 대학과 공공병원 등에서 공공보건의료 체계를 연구했고, 2020년 6월까지 4년 동안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을 지내며 지역보건의료정책 수립과 코로나19 대응 등을 맡았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어떤 재원도 아끼지 말고 지원하라”며 소아청소년과 지원 의지를 밝힌 뒤, 정부가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추가 지정, 달빛어린이병원 확대,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확대 등의 대책을 내놨다.
“소아청소년과 관련 진료 기관 지정을 확대하고 수가를 올리는 것은 이전부터 추진해온 일이고 필요하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잘 안됐는지 제대로 분석하고 대안을 내놔야 한다. 한 10년 전에 분만 취약지 지원 사업을 모니터링한 적이 있다. 국비로 매년 5억원 정도 들여서 분만 수가 올려주고, 의사·간호사 인건비와 시설 리모델링, 장비 구입비 등을 지원해주는데도 분만을 잘 안 받더라. 왜 그런가 봤더니, 위험 부담을 의사 혼자 지게 돼 있었다. (산부인과뿐만 아니라) 소아청소년과·마취과 등 다른 과와 연계하는 병원 차원의 지원이 전반적으로 부족하고, 분만 간호사는 숙련도가 높아야 하는데 교육을 받을 데가 없었다. 보건소와 연계해서 모자보건사업 등록 관리, 산전 진찰 안내, 위험요소 파악 같은 것도 해야 되는데 그런 것도 잘 안됐다. 병원과 지방정부의 협력이나 공공보건의료 전달체계 작동이 잘 안되니, 개별 사업을 지원해도 성과가 안 나온 거다. 소아과도 이와 마찬가지로 보건의료 전달체계에 문제가 있다. 대도시는 이런 의료기관 지정과 획기적 수가 인상으로 해결된다고 해도, 지역의 중소도시나 시골은 어떻게 할 것인지 대안 제시가 없다.
의사 수 자체도 워낙 부족하다. 수가 인상은 필요하지만, 그걸로는 필수 의료 분야 인력을 확충하는 데 한계가 있다. 야간 어린이 진료만 해도 수가를 올려줬지만 별로 많이 안 하지 않나. 야간 당직, 주말 당직을 하려면 의사 여러명이 필요하다. 서울시에서 당직 개념의 휴일·야간 진료기관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건 (예산과 의료 인력이 상대적으로 많은) 서울이니까 가능하지 의료 취약지에선 힘들다. 사실 아직 서울도 휴일·야간 진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의협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한다.
“의협의 반대에 집단이기주의 성향이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당분간 의사 수 증가 요인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머지않아 인구감소가 의료 수요에 영향을 미치면 의사 수는 다시 줄여야 할 거다. 정부가 의사 면허제도를 운영하는 건 아무나 의료 행위를 하지 않도록 전문가를 지켜준다는 것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수요와 공급을 따져서 늘릴 땐 늘리고 줄일 땐 줄이는 게 정부의 중요한 정책 기능이다. 그런데 왜 의사들이 집단행동까지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이런 논의에 국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다만, 정부와 정치권이 의사를 늘릴 때의 대안을 설득력 있게 내놓는 것도 필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비교할 때 의사가 부족하다는 단순한 통계만으로는 안 된다. 의사 수 증가가 수도권 대도시의 경쟁적인 수익 중심 의료를 강화하지 않도록 하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숫자만 보면, 농촌 같은 의료 취약지에 의외로 의사가 많다. 공중보건의(공보의) 때문이다. 그런데 공보의는 일반 의사랑 달리, 1년 정도 지나면 다른 지역으로 간다. 또한 대부분 의대를 갓 졸업한 사람들이라 응급상황 대처나 진료 능력이 떨어진다. 그런 부분을 보완할 수 있도록 정부가 교육을 시키거나 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그냥 사람 하나 달랑 두는 걸로 끝이다.
외국 사례를 보면, 벽지에 있는 의사가 디지털 엑스레이, 디지털 시티(CT) 촬영을 해서 대도시 큰 병원의 해당 분야 전문의한테 보낸다. 전문의가 ‘골절이 아니다’라고 판독하면 이 의사는 캐스트만 대주고 환자 상태를 며칠 관찰하면 되는 식으로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선 정부가 대도시 교육병원 체계를 활용해 시골 병원 의사들 교육훈련도 책임져주더라. 의학 교육용 인형을 다양하게 갖춘 버스를 보내, 그 안에서 의사들이 심폐소생, 분만, 기관지 삽관을 비롯해 다양한 의료시술 실습을 하게 해준다. 도시의 전문 간호사나 교육 의사는 원격으로 이를 지켜보고 도와준다. 아무리 의사라도 자주 이런 환자를 돌보지 않으면 당황하기 때문에 의료사고를 막고, 의료기술 역량과 자신감, 그리고 자문 체계를 갖추도록 지원하는 거다.”
지난 8일 오후 인터뷰에 앞서 사진 취재에 응하고 있는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초빙교수.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문재인 정부에서 의대 정원 확대 방안으로 공공의대 설립과 지역의사제 도입을 추진했지만, 의협의 반발이 거셌고 실효성 논란도 있었다.
“기존 의대 체계에서 정원만 늘리는 건 안 된다. 공공의대 설치를 비롯한 공공의료 중심의 의학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요즘 의대 학생들은 의사면허를 수익이 보장된 안정적 직업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건 학교에서 의학기술과 지식은 전수하지만, 지역 공공의료 관련 교육은 많이 안 하는 탓도 있는 것 같다. 일본에 자치의과대학이 있는데, 각 지역에서 2~3명씩 선발해 등록금 등을 지원해 공부를 시킨 뒤 해당 지역의 병원이나 공공기관 등에서 9년 동안 일하게 한다. 그런데 대부분 의무 복무 기간이 끝나도 거기 남아 의사로서 역할을 한다. 그럴 수 있는 건, 학교 다닐 때부터 지역 공공의료에 대한 관점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방학 때 자기 출신 지역에 가서 어떤 질환이 흔하고 어떤 의료가 모자란지 조사하고 대안을 만들어 학술발표나 논문 출간을 하도록 적극 지원한다. 현장을 보고 일종의 정책을 만드는 데서 오는 자부심, 그게 실현될 때 실제 주민들의 삶이 개선되는 효능감을 느끼면서 지역에 정착하는 거다.
내가 생각하는 공공의대는 정부가 설립한다는 걸 넘어, 역할과 비전, 교육 커리큘럼이 완전히 지역 공공의료 중심으로 돌아가는 형태다. 졸업 이후 교육에도 굉장히 신경을 써야 된다. 가령 학생이나 수련의(인턴) 때부터 가정의학과나 내과 수련 과정에 보건의료원, 보건소, 보건지소를 경험하고 방문 진료도 하게 하는 코스를 넣어볼 수 있지 않겠나. 수련의부터 전문의까지, 공공의대는 지역에서 어떤 진료를 하면서 전문성을 높일지에 초점을 맞춰야 된다. 폐교한 서남대 정원(49명)에 국방부의 사관학교 위탁 교육생 10여명을 합쳐서 60~70명 규모로 일단 해보면 좋을 것 같다.”
―공공의대 관련 고민이 꽤 구체적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공공의대가 없지만 시골에 의사들이 많이 간다. 보건부가 의대 평가를 할 때 지역에 졸업생이 얼마나 많이 가는지, 몇년 동안 장기근속하는지를 보고 그에 연계해 장학금이나 학교 지원금을 주니까 학교에서 지역의료 관련 교육을 강화하지 않을 수가 없다. 졸업 뒤 지역에서 일하는 걸 전제로 멘토링에 참여하면 학비에 생활비까지 지원해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학생한테 지역 개업 의사나 병원 원장 등을 멘토로 붙여주고, 주기적으로 만나 논문이나 리포트를 쓰게 한다. 이 과정에서 시골 의사는 학생의 ‘인생 멘토’가 돼 준다. 학문적인 성취에 더해 인간적인 교유까지 깊어지면서 지역에서 일할 마음이 더 커지는 거다.
우리도 공중보건 장학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의사가 어떤 마음으로 지역에서 일하고 싶은지 전반적으로 분석하고 대응하는 정책은 아니다. 사실 대한민국 모든 의대가 일차 의료 의사를 양성한다고 하지만, 정작 교육 커리큘럼엔 그를 위한 가정의학이나 지역사회 의학 교육이 별로 없다. 일차 의료는 개원 의사 옆에 가서 보기만 하는 걸로 되는 게 아니다. 의원이나 보건소와 함께 지역의 흔한 질병이 어떤 건지 조사하고, 어떻게 관리할지 해결책을 찾으면서 학문적인 흥미와 자부심을 느끼게 해야 된다. 정부가 이런 부분을 의대 교육에 정책적으로 연결시키고 모니터링을 해야 되는데, 복지부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에 인증 평가를 맡겨만 놓고 교육부는 학교 제도 운영만 할 뿐이니 답답하다. 공공의대가 그런 커리큘럼을 선도적으로 만들고, 기존 의대로 확산시킬 수 있도록 해야 된다.”
―지역 간 의료격차는 어떻게 해소해야 하나?
“아프면 빨리 서울 큰 병원에 가는 게 아니라, 그 지역 안에서 의료가 해결되도록 역량을 끌어올리려면 지방 국립대병원부터 강화해야 된다. 지금 지방 국립대병원의 지역 공공의료 기능이 부재하다 보니, 공공병원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외국 주립대병원은 수익 걱정 없이 지방정부의 지원 속에서 지역 공공의료 사업을 많이 하면서, 의료가 지역 안에서 자체적으로 완결되는 데 기여한다. 그런데 우리는 국립대병원이 교육부 관할이다 보니 그런 부분에 신경을 안 쓴다. 보건복지부 관할로 바꿔, 치료 가능한 사망률(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살릴 수 있었던 사망자 비율)을 관리하게 해야 한다. 국립대병원, 전국 70개 중진료권별 지방의료원, 지역의 민간 병·의원, 보건소가 잘 연계해 환자를 지역으로 보내고 지역 민간 병·의원들이 이들을 관리하도록 만드는 게 보건의료 전달체계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공공의료의 중요성은 크게 깨달았지만, 정부의 ‘공공의료 강화’ 약속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
“지방의료원을 현대화하고 인력도 늘리려면 돈이 필요한데, 지방정부에 자체적으로 해결하라고 할 뿐 국비에서 시설비·운영비 지원을 너무 적게 해준다. 지방정부에만 책임을 맡겨놓지 말고, 중앙정부 차원에서 1년에 1조원 정도 기금을 만들어 지방의료원 인력 확충과 시설 개보수 등을 지원해야 한다. 담배에 붙는 일반소비세가 연간 2조원가량인데, 이 가운데 45%를 소방안전교부세로 지역에 내려준다. 나머지 돈을 활용하면 충분히 재원은 마련할 수 있다. 지역 사정에 맞게 보건의료원이나 지방의료원 분원을 추가하고, 상주하지 않는 전문진료과 의사는 국립대 병원이나 지방의료원 등에서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려면 ‘공공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행정위원회 형태로 격상시키고, 예산도 개별 사업이 아니라, 지방정부가 제시하는 필수의료 충원율, 예방 가능한 합병증, 치료 가능한 사망률의 지역 격차 완화를 지표로 삼아 편성해야 한다. 지금 광주와 울산의료원 신축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처럼, 예비타당성조사 같은 경제성 평가로 설립 여부를 심사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으로 일하면서 공공병원 문제를 더 구조적으로 들여다보게 됐을 것 같다.
“시립병원에 장기 입원 환자가 많은데, 어떤 사람들은 그걸 두고 시립병원에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 그런데 지역의 돌봄 시스템이 제대로 안 돼 있으면 퇴원시켜도 금방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시립병원에서 퇴원환자 연계 서비스를 시작했다. 보건소마다 동네를 다닐 수 있는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영양사로 건강돌봄팀을 꾸리고, 시립병원에도 전담팀을 만들었다. 환자가 퇴원한 뒤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치료받고 약을 먹고 제때 식사할 수 있게 하고 심리지원도 받게 하는 거다. 포괄적인 건강돌봄 서비스를 통해 한번 퇴원한 환자는 다시 병원에 오지 않도록 만드는 게 제일 큰 목표였다. 지역 안에서 의료가 해결되게 하는 것, 이게 바로 앞서 언급한 의료 전달체계다.
의료 체계가 튼튼해지려면 수가 인상만으로는 안 된다. 선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된다’는 걸 보여줄 선수가 필요한데, 그게 공공병원이다. 중환자 진료 역량을 포함해 공공병원을 강화해서 ‘공공병원도 좋다’는 인식이 퍼지면, 의사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민간병원의 의료공공성도 높아질 수 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