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인 인천 가천대 길병원이 전공의(레지던트) 부족으로 내년 2월까지 소아청소년과(소청과)의 입원 환자를 받지 않기로 했다. 최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이 소아 청소년의 응급실 야간 진료를 중단한 데 이어 대형병원의 입원도 중단되는 등 소아청소년과 의사 부족이 심각해지고 있다.
가천대길병원은 지난 12일 누리집에 “의료진 부족으로 소아청소년과 입원이 잠정적으로 중단된다. 빠른 시일 내 정상운영하겠다”고 공지했다. 이 병원은 이달부터 내년 2월까지 소아·청소년 입원 병동을 운영하지 않는다. 전국 상급종합병원 중 의사가 없어 진료과 입원을 중단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가천대 길병원에서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5명 중 4명이 전문의 자격시험으로 업무에서 빠지며 2년 차 의사 1명만 진료를 하고 있다. 앞서 이 병원의 손동우 소아청소년과장은 최근 지역 의원들에 편지를 보내 “가천대 길병원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수급이 되지 않은 지 이미 수년이 흘렀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은 입원 환자를 진료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며 “내년 3월에 전문의 충원이 이뤄지거나, 그 사이라도 입원 전담 전문의 모집이 이뤄지면 입원환자를 재개할 계획”이라고 알렸다.
문제는 소아청소년과 의사 부족이 이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한병원협회가 지난 7일까지 전국 67개 수련병원의 내년도 전반기 전공의(레지던트 1년차)를 모집한 결과, 소아청소년과는 정원 191명에 33명만 지원해 지원율이 17%에 그쳤다. 특히 이른바 ‘빅5’ 대형병원인 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서울성모병원·서울아산병원·강남세브란스병원 중 이번 모집에서 정원을 채운 곳은 서울아산병원이 유일했다.
소아청소년과 인력이 줄어드는 데는 저출생 추세에 이 분야 진료 수요가 줄어든 영향이 크다. 최근 감염병 유행으로 어린이들의 활동이 줄며 환자가 더욱 감소한 데다, 환자 부모 등 보호자들의 민원과 의료분쟁도 다른 진료과에 비해 심한 편이어 수련의들이 지원을 기피한다는 게 의료계의 설명이다.
이에 정부는 소아청소년과 진료에 대한 건강보험 수가 등을 늘려 인력 확대를 유도할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8일 발표한 필수의료 지원 대책에서 내년부터 병·의원의 신생아 입원 진료에 대한 수가를 올리고,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적자를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재정 지원에 더해 소아·청소년 의료의 전달 체계에 대한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김윤 서울대 교수(의료관리학)는 “저출생 추세에서 당분간 전공의들의 소아청소년과 지원 감소는 불가피한 면도 있다. 줄어든 의료 수요에 맞춰 소아청소년과 입원이 가능한 3차병원 수를 조정해 의료기관들이 24시간 진료체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의 수는 아직 부족하지 않은 만큼, 병원들이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를 채용해 소청과 입원실을 유지하게 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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