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8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 공청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문윤수 | 대전을지대병원 권역외상센터 교수
잠들기 직전 후배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다. 갓 돌 지난 아이가 열이 안 떨어진다며, 아는 의사라고는 나밖에 없어 부득이하게 전화를 걸었단다. 안타까운 마음에 아이 상태에 관해 이것저것 물었다. 후배의 아이는 며칠째 고열이 이어졌는데, 그날 밤에는 해열제를 번갈아 먹이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39℃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의대생 시절 배운 소아청소년과 지식과 개인적인 육아 경험까지 더해 후배 아이 상태가 조금이라도 낫길 바라며 이런저런 조언을 해줬다.
나 또한 의사면허를 가진 아빠지만 10여년 전 어린 자식이 아플 때면 속수무책이었다. 큰아이 첫 생일을 병원에 입원한 채 보낸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일까. 후배와 통화하면서 이곳 광역시 여러 대학병원 중 어디라도 가서 능숙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선생님께 진료받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자정 앞둔 시각 어린아이를 진료해 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선생님을 어디서 만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아주 많이 태어나 밤에도 아픈 아이들도 적지 않았기에, 늦은 시간에도 전문의들이 아픈 아이들을 진료, 치료해줄 수 있었던 20여년 전 전공의 시절이 그립고 부러울 뿐이었다. 이런저런 생각 속에 후배와 상담전화는 길어졌지만, 후배 아이는 다행히 그날 밤을 무사히 넘겼고 큰 탈 없이 잘 회복했다.
그 뒤 얼마 안 돼 의료전문지 사이트에서 ‘소아청소년과 10%대 처참한 지원율’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봤다. 내년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모집정원이 199명인데 30여명만이 그 길을 가겠다고 지원했단다. 연말이면 대학 입시와 기업 신규채용이 이뤄지듯, 의료계에서는 다음 해 전공의 수련을 시작하는 이들의 원서접수가 이뤄진다. 내가 태어난 해 출생아 숫자는 86만명이었는데 이제는 30만명 아래로 떨어져 그 3분의 1에 불과하니, 기피분야가 된 것이다.
특정 분야에 적정 의료인력의 10%만이 공급된다는 건 매우 심각한 일이다. 특히 출생률 저하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크게 줄었다지만, 사회 환경과 인식 변화 등으로 소아청소년과를 찾아 진료하는 횟수는 더 늘었다. 상황이 이런데 매년 배출되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30여명이란 건 매우 큰 문제다. 게다가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라 매년 반복되며 악순환이 고착화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별 관심이 없는지 의료전문지 사이트에서나 작은 기사로 다뤄질 뿐이다.
이날 퇴근해 아내에게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이 10%대여서 큰 걱정’이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오히려 되물었다. ‘언제까지 권역외상센터 일하며 밤에 잠 못 자고 일할 것이냐?’고. 실제 생각해보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 10%대 만이 문제가 아니다. 외과계 전공의 지원율도 한참 떨어진다. 큰 외부 충격으로 뼈가 부러지고 머리·가슴·배에 심한 손상을 입은 다발성외상 환자들이 주로 실려오는 권역외상센터에서도 수술은 40, 50대 전문의들의 몫이 된 지 오래다. 30대 전문의가 근무하는 권역외상센터가 전국에 몇 곳이나 있을지 손에 꼽을 정도다.
얼마 전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9% 확률을 뚫고 16강에 진출했다고 온 국민이 환호했다. 이때 많은 이들이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구를 새삼 되새겼다. 그런데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11명 선수가 구성돼 있어야 한다. 한두명이라도 퇴장당하거나 부상으로 뛸 수 없게 돼 그라운드를 뛰는 선수 숫자가 줄어들면 그 경기는 절대적으로 불리해진다. 의료계도 다르지 않다. 지금처럼 이른바 비인기 과목에 참혹한 수준의 전공의 지원율이 계속된다면, 장기적으로 국민건강에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가 그렇지만, 의료계에서도 뭔가 큰일이 터져야 바뀐다. 지난 7월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이던 간호사가 뇌동맥류가 터져 원내 응급실을 찾았지만, 뇌수술이 가능한 신경외과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가 숨진 사건이 있었다. 그제야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지원 대책 방안 공청회를 열고 연내 논의 결과를 발표한다고 한다.
소는 이미 떠났지만, 다시 신발 끈을 고쳐매고 외양간을 새롭고 튼튼하게 지어야 한다. 누구는 시간이 너무 지났다고 한탄하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제라도 필수 진료과목에 대한 적극적 지원과 희망적인 미래를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