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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장애인

[현장] ‘손바닥’ 만한 흉터 안고 살아보니…

등록 2006-09-04 14:32수정 2008-03-10 09:38

한국화상인협회는 2일 서울 명동 유네스코 회관 앞에서 ‘화상장애인 체험 행사’를 했다. 김미영 기자
한국화상인협회는 2일 서울 명동 유네스코 회관 앞에서 ‘화상장애인 체험 행사’를 했다. 김미영 기자
한국화상인협회, 명동에서 일반인 대상 ‘화상 체험 행사’ 열어
예상치 못한 화재 사고로 흉터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한다면?

지난 2일 서울 명동 유네스코회관 앞에서는 한국화상인협회가 주최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화상장애인 체험’ 행사가 열렸다. 화상은 누구에게나 가까운 위험이지만, 화상 장애인이 겪는 고통은 잘 알지 못한다. 이날 행사에서는 누구나 화상 장애인이 될 수 있었다. 체험에 참여한 사람들들은 주로 팔에 손바닥만한 크기의 흉터를 새겨 넣었다.

행사는 오후 3시부터 4시30분까지 분장 체험을 한 뒤 노래패 ‘두레소리’와 화상인들의 공연에 이어 10여명의 화상장애인과 체험단의 ‘대구 지하철 참사 체험’ 상황극 순으로 마무리됐다. 행사 시작 전까지만 해도 낯선 분장과 흉터에 발걸음을 돌리던 일반 시민들도 점차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체험 희망자들이 줄을 이었고, 화상장애인인 최정란(24)씨가 밝은 모습으로 ‘혼자가 아닌 나’ 노래를 부를 때는 박수와 환호로 이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이제 다시 울지 않겠어 더는 슬퍼하지 않아 다신 외로움에 슬픔에 난 흔들리지 않겠어. 더는 약해지지 않을게 많이 아파도 웃을거야 그런 내가 더 슬퍼보여도 날 위로하지마” … (중략) … “힘이 들땐 하늘을 봐 나는 항상 혼자가 아니야 비가 와도 모진 바람 불어도 다시 햇살은 비추니까 눈물나게 아픈날엔 크게 한번만 소리를 질러봐 내게 오려던 연약한 슬픔이 또 달아날 수 있게 앞만 보고 걸어갈게 때론 혼자서 뛰어라도 갈게 내게 멈추던 조그만 슬픔도 날 따라오지 않게” (노래 <혼자가 아닌 나> 가사 중)

체험 행사에는 20여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한국화상인협회는 2일 서울 명동 유네스코 회관 앞에서 ‘화상장애인 체험 행사’를 했다. 사진은 ‘대구 지하철 참사’를 재현하고 있는 화상인과 자원봉사자들. 김미영 기자
한국화상인협회는 2일 서울 명동 유네스코 회관 앞에서 ‘화상장애인 체험 행사’를 했다. 사진은 ‘대구 지하철 참사’를 재현하고 있는 화상인과 자원봉사자들. 김미영 기자
팔과 얼굴에 ‘화상’ 도장 찍고 남들 앞에 나서 보니…

#1. 대학생인 김도권(23)씨는 호기심에 화상인 체험에 동참했다. 흉터 자국은 팔에 새겼지만, “만약 이런 흉터가 있다면 못살 것 같다. 취업이나 학업, 연애나 결혼에 제약이 따를 것이니 삶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남의 일 같지 않다”고 소감을 전했다.

평소 그는 화상인들을 보면, 자리를 피하거나 외면했다. 이들을 배려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도 언제든 이런 불행이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화상인들을 피하기 보다는 먼저 다가가겠다”고 말했다.

박세연(좌)씨와 전주리(우)씨. 김미영 기자
박세연(좌)씨와 전주리(우)씨. 김미영 기자
#2. 앳된 얼굴의 미인형인 전주리(23)·박세연(23)씨도 참여했다. 왼쪽과 오른쪽 팔에 화상의 흔적을 남긴 이들은 “화상은 여성에게 특히 치명적인데, 만약 얼굴에 흉터가 남는다면 마음의 상처가 클 것 같다(전주리)” “자신감을 잃어 다른 사람과의 접촉 자체를 꺼릴 것 같다(박세연)”고 말했다.

박세연씨는 이어 “호기심에 체험 행사에 참여했는데, 화상을 입은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그동안 흉터 있는 사람들을 보면 겁이나 꺼려했는데, 이제는 차별대우를 하거나 다른 시각으로 쳐다보지 않을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노란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은 얼굴 등 겉으로 크게 드러나는 흉터 자국을 연출했다. 분장이 끝난 뒤 몇몇은 달라진 모습과 사람들의 시선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금세 활기를 되찾았다. “화상이 곧 불행이 아니니까요.”

화상 체험에 동참한 남궁현성 군. 김미영 기자
화상 체험에 동참한 남궁현성 군. 김미영 기자
#3. 평소 화상인협회 자원봉사를 해온 아버지를 따라온 정발중학교 2학년인 남궁현성(25)군은 이날 얼굴과 팔이 검게 타들어가 허물이 벗겨진 상황을 연출했다. 화상을 남의 일이라고 여겨왔던 탓인지, 분장을 마친 뒤에는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주위의 시선이 신경쓰인다. 빨리 지우고 싶다”는 그는 “취직이나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화상인 처지를 이해하게 됐다”며 “화상인들을 주변에서 접하게 되면, 친근감을 갖고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4. 지난 7월부터 화상인협회에서 자원봉사를 해온 박진규(30·영업사원)씨는 조금씩 화상인을 이해하는 단계다. 그는 이날 자원해서 얼굴 전체에 화상 분장을 했다. 그는 “평생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다면 집 밖으로 나오는 일은 결코 없을 것 같다”며 “화상 흉터 재건수술에 의료보험이 적용돼 많은 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5. “팔이 아니라 얼굴에도 분장을 해주세요.” 이날 가장 주목받았던 이들은 벽제중학교 1학년들이었다. 엄마가 화상 장애인이라는 김아무개양은 “화상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소정양은 “재미삼아 했는데, 이런 상태라면 자신 있게 밖에 나가지 못할 것 같다”며 “화상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화상인 장애인 대우·피부 재건수술 건보적용 안돼

이날 행사는 한국화상인협회가 지난 7월 서울 등 수도권을 돌며, 진행한 ‘화상인 바로알기’ 캠페인의 하나다. 화상인을 바라보는 시각과 배려는 달라져가고 있지만, 화상인에 대한 장애인 대우나 피부·흉터 재건수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등은 여전히 답보상태다. 전병준 협회 사무국장은 “지난달 보건복지부 담당자와 면담을 했지만, 기대에 부응할 만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며 “외모에 대한 관심이나 중요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재정과 형평성을 들어 화상인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복지부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까지는 화상인들이 흉터 완화를 위해 하는 성형수술이 쌍꺼풀 수술과 같은 미용수술에 분류돼 수천만원에 이르는 의료비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또 현행 장애인복지법에는 얼굴의 60% 이상 화상을 입어야만 장애인 등급을 받을 수 있어 대부분의 화상인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 화상환자는 한해에 40만명 정도 발생하고 있다.

한국화상인협회는 2일 서울 명동 유네스코 회관 앞에서 ‘화상장애인 체험 행사’를 했다. 김미영 기자
한국화상인협회는 2일 서울 명동 유네스코 회관 앞에서 ‘화상장애인 체험 행사’를 했다. 김미영 기자
이날 ‘혼자가 아닌 나’를 부른 화상장애인 최정란씨는 “대학 졸업 후 취업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며 “화상인들이 정상적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피부이식이나 흉터 개선을 위한 수술에 대해서는 의료보험 적용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다섯살 때 입은 화상으로 얼굴과 팔을 비롯 상반신에 흉터가 남아 있다. 최씨는 “화상의 위험은 누구에게나 노출돼 있고 한순간에 당사자의 외모를 바꿀 뿐 아니라 인생을 변화시킨다”며 “많은 이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하며, 정부도 화상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화상인협회는 9월 중에 현행 장애인복지법과 의료보험 적용 기준이 화상인들의 기본권과 인격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판단 하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계획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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