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화상장애인협회는 이달 내내 수도권 등지를 돌며 화상환자 사진전과 실태를 알리는 ‘화상인 바로알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화상인들은 얼굴의 60% 이상 화상을 입을 경우 장애인에 포함된다. 온 몸에 흉칙한 흉터가 남아도 기능에 장애가 없으면 장애인이 될 수 없다. 김미영 기자
보험적용 안되는 피부재건수술 ‘아물지 않는 상처’
장애인 판정과 수술시 건강보험 혜택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화상인들의 목소리가 구체화함에 따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사)한국화상인협회는 현재 화상장애인법령 제정과 현행 장애인복지법의 위헌 여부를 판정하기 위한 헌법소원을 준비중이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은 지체·시각·청각·언어·정신지체·정신·발달장애·심장·신장·뇌병변 등 10가지로 장애인 범주를 규정하고 있다. 법은 정신적·사회적 현실보다 신체구조나 기능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때문에 화상환자의 30% 가량이 사회복귀가 어려운 생존자들로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 적응이 어려운 형편인데도 장애등급이 나오지 않는 현실이다. 화상인들은 헌법의 평등권과 장애인 형평성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전병준 한국화상인협회 사무국장은 “어린이들의 경우 친구들의 놀림과 따돌림 등으로 성장 후에도 대인기피증이나 우울증·자기비하 같은 정신과적 문제가 더 크게 나타난다”며 “어릴 적 화상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청소년 시기에 자살을 시도한 사례가 절반 이상으로 나온 것을 볼 때 소아화상인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정부 차원의 보호가 절실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화상장애인이 차별과 편견에서 벗어나 평등한 기회를 얻고, 자립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라도 관련 법령을 개정해 장애인 등록, 수술과 재활까지 포함한 의료보험 적용 등 지원 확대, 국립암센터와 같은 ‘국립화상센터(화상전문병원)’가 설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현주 비전호프(어린이화상환자후원회) 대표도 “미국은 13살까지, 화상전문병원에 입원할 경우 만 18살까지 국가에서 전액 치료비를 부담한다. 일본도 화상 수술 및 그 재료까지 보험 적용이 되고, 독일은 화상 치료 및 재료는 물론 보험이 적용되고 화상 후의 심리치료까지도 배려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어린이 화상환자의 재건성형수술을 이뻐지기 위한 미용성형으로 분류해 수술비 부담으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그는 “뼈와 근육이 자라는 아동환자의 경우 피부재건·이식수술 등을 제때 하지 못하면 살이 터지는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며 “어린환자에 대해서는 100% 국가에서 지원하고, 다른 환자에 대해서는 일부만이라도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화상환자들, 기댈 곳이 없다”
협회는 2000년 화상 흉터로 고통받는 환자를 1만3532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상으로 인해 진료실을 찾는 인원도 1998년 13만5624명, 1999년 23만9715명, 2000년 25만5085명 등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이 가운데 화상과 부식으로 안면, 손, 손목, 발 그리고 발목 등의 노출부위를 다친 환자의 진료실 입원 수는 2000년 한 해에 17만6명으로 전체 화상환자의 67%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화상치료 전문병원은 한강성심병원, 구로성심병원, 한일병원, 베스티안병원 등 4곳뿐이다. 이 또한 서울에 집중돼 있고, 지역의 종합병원 응급실들이 화상환자 대응에 필요한 물품 등을 구비하지 않은 곳이 많아 지방에서 심각한 화상을 당한 사람들은 이송과정에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보건복지부 내에 화상환자를 담당하는 부서나 인력도 없다. 화상환자 발생현황 및 화상 정도, 소득수준 및 생계, 사회진출 정도 등에 대한 기본적인 통계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화상인들의 ‘절규’가 허공에 묻히는 이유다. 안현주 대표는 “복지부 안에 화상환자를 담당하는 전담부서가 없다. 만약 없다면 보건사회연구원 등에 의뢰해 실태조사만이라도 한다”며 “화상인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고민과 노력이 없다보니 정책이나 개선대책 또한 낼 수 없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전 사무국장과 안 대표는 이런 이유를 병원과 의사들이 내세우는 “시장의 논리”에 복지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화상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냄새와 고름 등 때문에 화상환자를 치료하는 전문의는 외과에서도 ‘3D업종’에 분류되지만, 낮은 의료수가 등으로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한때 서울대학교병원이 화상전문 치료서비스를 실시했다가 중단한 배경에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것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도 “화상수술에 보험수가 20~30%를 적용할 경우, 수술하려는 의사가 누가 있겠냐. 또한 노력에 대한 보상이 뒤따르지 않는데 제대로 된 수술을 하겠냐”며 이런 고충을 토로했다.
◇ “화상전문병원 및 응급치료 시스템 있어야”
때문에 이들은 ‘국림암센터’와 같은 ‘국립화상센터’ 같은 의료기관 건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경우 연간 약 250만명 정도의 화상환자가 발생하고 이중 10만명 정도가 입원치료를 받는다. 화상전문 치료기관도 캐나다를 포함한 북미지역에만 159개에 달하며 각 지역마다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만 해도 미국화상학회와 외과학회가 기준으로 정하고 있는 화상전문센터의 수가 1995년 기준 50여곳에 이른다.
또 화상환자를 장애인 범주에 포함하지 않는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은 추형(醜形) 장애에 대한 기준을 정해 외형적인 추형을 상당한 장애로 인정하고 있다. 일례로 대만, 독일, 미국, 프랑스 그리고 호주 등지의 나라에서는 화상으로 인한 안면기형을 장애범주에 포함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화상환자들의 사회적 적응과 정신적 충격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화상으로 인해 이웃으로부터 소외당하거나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없게 되는 일이 없도록 정부 차원에서는 정부보조금, 복지기금은 물론 화상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자원봉사제도, 시민들의 기금으로 조성된 재단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병준 사무국장은 “화상장애인이 느끼는 고통은 기능적 장애보다는 사회적 차별로 인한 정신적 장애에서 비롯된 면이 크다”며 “보건복지부와 국회와 연계해 8~9월 세미나와 공청회, 서명운동을 벌이는 한편 현행 장애등급 기준과 건강보험 비적용이 위헌임을 알리는 한편 화상장애인법령 제정의 정당성을 공론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보건복지부, “장애인 범주 확대·건보 적용 검토 중”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심정을 이해하지만,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화상인들의 처우 개선과 장애인 범주 확대, 의료보험 적용 등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이들의 주장을 수용하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적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우선 장애인복지법상 장애등급 판정 확대는 현행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 계획에 따라 빠르면 내년부터 가능한 상황이다. 올해 말까지 3단계 연구확대 용역을 끝낸 뒤 내년 열리는 공청회를 거쳐 의학계와 관련 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 확정된다. 2003년의 경우 안면기형을 장애인 범주에 포함시킨바 있다.
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정재우 주무관은 “화상환자들이 받는 고통과 현실을 감안해 장애인 병명과 범주를 확대할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도 “화상환자들의 경우 보행이나 언어 등 일상적 생활이 가능한 점, 수술 등으로 인해 상처를 완화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어디까지 장애인 범주로 봐야 하나’에 대한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존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화상장애인이 흉터로 인해 취업이나 대인관계에서 차별과 편견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흉하게 생긴 사람을 장애인으로 포함시킬 수도 없지 않냐”며 “장애인 등급판정을 정할 때 검토하겠지만, 현재로서는 화상환자에 대한 장애 범주 포함은 확답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수술비의 보험적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시술 자체가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 아니고 완치 여부가 환자의 주관적 판단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 의료보험 적용시 소요되는 예산과 급여대상 범위와 기준을 구체적으로 만들기 어렵다고 복지부 관계자는 해명했다.
보험급여기획팀 손영래 사무관은 “화상환자 치료와 관련해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것은 거의 없는데, 문제는 피부복원술”이라며 “피부복원술의 경우 지난해부터 건보 적용을 검토했지만 생명과 직결된 필수치료 부분 여부, 건보재정 예산, 급여대상의 범위와 기준의 모호 등으로 진척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화상환자들의 피부복원술은 대체로 3~20회까지 시술을 받아야 하는데, 한번 수술할 때 소요되는 비용이 500만~1천만원이다. 예를 들어 화상환자가 다섯번에 걸쳐 피부복원술을 받았을 경우 2500만원이 들고, 이를 건보재정에서 충당할 경우 환자 1만명을 기준에 2500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기 때문에 재정압박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손 사무관은 “화상환자 입장에서는 의료보험 적용을 원하지만, 이 경우 다른 환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며 “시술 횟수도 의학적·과학적 기준에 의해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주관적 판단에 좌우되기 때문에 기준을 잡는 것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 상황에서 대안은 안면부위 화상에 대한 보험급여를 적용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 사무관은 “안면화상 흉터의 경우 치명적이기 때문에 색조변조 등을 제외한 피부손상, 눈·코·입·귀 등의 교정 등에 대해서는 무조건 보험을 적용했으면 하는 것이 복지부 입장”이라며 “확실하게 가능하다고 얘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가능한 방향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 장향숙 의원실, “화상 장애인법령은 글쎄…치료 혜택이 우선”
화상인의 장애인 등록이나 수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에 대해서는 정치권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지난 5월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장향숙 의원실은 “장애판정 기준은 종합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측면이며, 화상환자의 피부재건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 의원실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화상인들에 대한 실태와 현황, 장애인 등록과 건강보험 적용 문제 등을 다룰 생각이다.
김명신 비서관은 “지난해 7월 화상환자에 대한 보장내역을 확대했지만 비급여인 것이 상당부분”이라며 “보건복지부나 화상학회나 한강성심병원쪽에 우선 성장기 어린이만이라도 보험적용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바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요구할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화상장애인법령 제정에는 유보적 태도를 취했다. 김 비서관은 “장애인 적용시 각종 할인혜택과 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인데, 화상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이보다 치료비가 아니겠냐”며 “다른 환자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화상장애인법을 제정하는 것보다는 현행 장애인복지법에 화상환자들의 요구안을 녹여내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일 것 같다”는 입장을 조심스레 밝혔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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