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환경

태풍 때마다 ‘원전 불안’…한국 안전대책 이행률은 56%뿐

등록 2021-03-10 19:23수정 2021-12-30 14:53

작년 태풍 마이삭 바닷물 염분
고리 3·4호기 등 설비에 붙어 불꽃
MB때 안전사업비, 집행중 ‘반토막’
일본 원전 1개 집행액에도 못미쳐
“졸속으로 보여주기식 그쳐” 비판
스트레스 테스트 최종결과도 ‘아직’
지난해 9월3일 태풍 마이삭이 몰고온 강풍의 영향으로 가동을 멈춘 고리 원전 3호기와 4호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조사 결과 이날 발생한 원전 집단정지는 강풍을 타고 날아온 염분이 원인이 된 것으로 드러났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3일 태풍 마이삭이 몰고온 강풍의 영향으로 가동을 멈춘 고리 원전 3호기와 4호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조사 결과 이날 발생한 원전 집단정지는 강풍을 타고 날아온 염분이 원인이 된 것으로 드러났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3일 새벽 부산시 기장군 한국수력원자력 고리 원전단지에서 가동 중이던 원자로 4기(고리 3·4호기, 신고리 1·2호기)가 잇따라 정지했다. 폐로 예정인 고리1호기와 정비 중이던 고리 2호기도 외부 전원 공급이 끊겼다. 고리 원전단지가 통째로 멈춰 선 것이다. 태풍 마이삭이 몰고 온 강풍 때문이었다.

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조사 결과 고리 3·4호기 정지는 강풍을 타고 날아온 바닷물 염분이 전력 설비에 흡착돼 불꽃이 튀면서 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신고리 1·2호기의 사고는 송전탑에 느슨하게 설치된 전선이 강풍에 심하게 흔들린 것이 원인이 됐다.

2011년 3월11일 대지진과 쓰나미 여파로 일본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했다. 그해 5월 이명박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를 계기로 50개 과제로 된 원전 안전개선 대책을 수립해 한수원에 이행명령을 내렸다. 정부는 사고가 난 일본을 앞질러 세계에서 가장 먼저 안전대책을 마련했다고 홍보했다. 지난해 발생한 원전 집단 정지 사태는 이 대책의 실상을 말해준다.

염분이 원인이 된 원전 정지는 2003년 9월 태풍 매미 때도 있었다. 예상 가능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만들었다는 안전대책이 실상은 이미 발생한 문제도 고려하지 않은 날림 대책이었던 셈이다. 원안위와 한수원은 지난해 9월 사고 뒤에야 염분 흡착을 막기 위한 설비 변경에 나섰다.

후쿠시마 후속 안전대책은 △일정 규모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때 원자로를 자동 정지시키는 시스템 구축 △중대사고에 대비한 격납건물 배기·갑압설비 설치 △수소 폭발을 막아줄 피동형 수소제거설비 설치 △해일에 대비한 해안방벽 증축 △침수 때 냉각계통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이동형 발전차량과 축전지 확보 등 한수원이 수행할 47개 사업과 원자력연구원 등 다른 관련 기관의 3개 사업으로 구성됐다. 총 사업비는 1조1226억원으로 잡혔다. 일본의 후쿠시마 후속 안전대책 사업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금액이다.

사업비 최대 핵심대책, 백지화 뒤 변경 수순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본은 에히메현 이카타 원전 3호기에서만 안전대책비로 1700억엔(약 1조7800억원)을 사용하고, 대테러설비 건설 예산으로 따로 230억엔(약 2400억원)을 현재 집행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 전체 원전을 대상으로 한 안전대책 사업비가 일본 1개 원전 사업비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 사업비마저 실제 이행 과정에서 반토막 났다. 사업 개수가 56개로 확대 조정됐는데도 사업비는 6070억원으로 되레 줄었다. 예상보다 용역 낙찰가가 내려가고 일부 과제를 축소 수행해 비용이 절감됐다는 것이 한수원 설명이다.

이명박 정부는 후속 안전대책을 2015년까지 완료하기로 했다. 하지만 원안위가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당 노후원전안전조사티에프 간사)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처음 발표된 50개 사업 가운데 지진에 대비한 안전정지유지계통 내진성능 개선, 냉각기능 상실 사고에 대비한 원자로 비상냉각수 외부 주입유로 설치, 격납건물 안에서 전력 공급 없이 수소를 없애주는 피동형 수소제거 설비 설치 등 3개 사업은 2018년에야 완료됐다. 비상전력계통 등 주요 안전설비의 침수에 대비한 방수문과 방수형 배수펌프 설치, 주증기 안전밸브실과 비상급수펌프실의 침수를 방지하기 위한 시설 보완 등 2개 사업은 지난해 말까지도 원자력안전기술원의 완료 판정을 받지 못했다. 특히 후속 대책 전체 사업비의 44%(2651억원)를 투입하기로 한 격납건물 배기·감압설비 설치는 전면 수정돼 완료 시점이 2024년으로 미뤄졌다.

일부사업은 2024년에나…끝난 과제들도 논란

안전대책에 따른 격납건물 여과배기설비(CFVS)는 2012년 월성 1호기에 처음 설치됐다. 하지만 안전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운 것으로 평가돼 다른 원전으로 확대되지 못했다. 한수원은 설치된 설비의 철거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월성 1호기에 이 설비를 설치하기 위한 기초 공사과정에서는 사용후핵연료저장조(SFB) 하부 차수막에 구멍이 뚫리는 사고까지 일어났다. 이 사고 손상부는 아직도 복구되지 않아 최근 불거진 삼중수소 지하 유출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배기·감압설비보다 고유량 이동형 펌프를 이용하는 방법이 안전성이 우수한 것으로 검토돼 대체 설계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안전대책 대표 사업이 이미 투입된 500억여원과 원상 복구비만 낭비한 채 사실상 백지화된 셈이다. 완료된 사업에 집행된 사업비를 기준으로 하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 1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후속 안전대책 이행율은 56%에 불과하다.

완료된 사업들도 애초 발표와 다르거나 부실하게 진행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문제가 적지 않다. 피동형 수소제거 설비(PAR) 설치, 안전정지유지계통 내진 성능 개선 등이 대표적이다.

피동형 수소제거 설비는 격납건물 배기·감압 설비와 함께 후쿠시마 원전에서 발생한 것과 같은 수소 폭발을 막기 위한 핵심 사업이다. 여기에는 후속 대책 56개 사업 가운데 가장 많은 514억원이 투입됐다. 이 사업은 이미 2013년부터 말썽이 됐다. 고리 3·4호기 등 11개 원전에 시험 성적서가 위조된 설비가 설치된 사실이 검찰 수사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원안위가 재시험에 나서 “성능에는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으나, 얼마 뒤 전문기관의 재시험 결과 보고서까지 조작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 문제는 최근 특정 업체 제품의 성능이 규격의 30~60%에 불과하고, 작동 중 불티를 일으켜 위험할 수 있다는 공익 제보가 언론에 보도되며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한수원이 원안위에 보고한 자료를 보면, 실제 독일의 한 전문기관이 실시한 시험에서 장치에 장착된 세라믹 촉매체의 코팅이 떨어져 불티 형태로 날리는 현상이 확인됐다.

이에 대해 한수원은 지난달 19일 원안위 회의에서 “섭씨 500도가 넘는 고온의 가혹한 시험 환경에서 나온 결과”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외 제품에 적용된 금속 촉매체는 온도가 800도까지 올라가는데, 500도가 가혹한 환경이냐”고 반문하는 원안위원들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문제된 업체 제품은 24개 국내 가동원전 가운데 신고리 1~4호기와 신월성 1·2호기를 제외한 18개 원전에 설치돼 있다.

최악의 원전사고 발생 10년을 앞둔 후쿠시마 제1원전에 폐로 작업을 위한 크레인이 여러 개 설치돼 있다. 10년 전 수소폭발로 앙상한 철근을 노출했던 원전 건물은 커버로 상흔을 감췄다. 연합뉴스
최악의 원전사고 발생 10년을 앞둔 후쿠시마 제1원전에 폐로 작업을 위한 크레인이 여러 개 설치돼 있다. 10년 전 수소폭발로 앙상한 철근을 노출했던 원전 건물은 커버로 상흔을 감췄다. 연합뉴스

‘안전정지유지계통 내진성능 개선’은 가동 원전들이 설계기준(지반가속도 0.2g)을 넘는 지진에도 안전하게 정지해 있도록 관련 설비의 내진 성능을 0.3g 수준까지 보강하는 사업이다. 원자로 냉각재 압력 제어와 잔열 제거, 사용후핵연료 냉각 기능 등과 관련된 계통과 설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차분한 분석 없이 대책 급하게 만든 게 문제”

한수원은 안전정지유지에 필요한 3만8561개 기기를 가려내 내진성능을 평가한 뒤 고리 2호기 격납건물 온도·수위계측기 등 46개를 교체하고 283개를 보강했다. 나머지는 내진성능을 시험·평가만 하고 과제를 마무리한 것이다. 이 과제의 사업비는 914억원으로 잡혔다가 4분의1인 206억원으로 줄었다. 이 가운데 설비 교체와 보강에 투입된 사업비는 90억4000만원이었다. 사업비의 절반 이상이 시험·평가 용역비로 지출된 것이다.

월성 2·3·4호기 설계에 참여한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후속 안전대책 과제들에 투입된 사업비를 보면 하드웨어적 개선은 극히 일부에 그치고 대부분 공학적 평가를 통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고 끝낸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력공학자인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이미 지어진 원전에서 내진 성능을 높이는 것은 쉽지 않아서 막상 하려고 해도 할 게 없었을 것”이라며 “후쿠시마 후속 대책은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보여주기식 사업에 그쳤다”고 말했다.

후속 안전대책이 부실 논란을 빚는 것은 충분한 준비 없이 졸속으로 만들어진 탓이라는 지적이다. 김호철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은 “어떤 대응이 효과적인지, 기술력은 있는지 등에 대한 차분한 분석이나 평가 없이 대책을 너무도 급하게 서둘러서 만든 것이 원인의 하나”라고 말했다. 한준호 의원은 “후속 안전대책이 사고 직후 급하게 만들어져 이행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전반적으로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한 달 가량의 민관전문가 점검 결과를 바탕으로 급하게 안전대책을 만들 때 유럽연합은 모든 원전에 ‘스트레스 테스트’를 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었다. 원전에 설계기준 이상의 재해가 닥치는 상황을 가정한 이 테스트로 취약 부분을 정확히 가려내 대책을 세우려는 것이었다.

유럽연합은 2012년 4월 140개가 넘는 역내 모든 원전을 대상으로 이 테스트를 끝냈다. 사고 수습에 정신이 없던 일본도 이 때까지 50개 원전을 대상으로 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마쳤다. 한국에서 스트레스 테스트는 2015년이 돼서야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에 처음으로 실시됐다. 이후 나머지 원전들까지 확대됐으나 아직 최종 결과가 확정되지 않았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지금 당장 기후 행동”
한겨레와 함께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