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호 태풍 마이삭이 부산에 상륙한 3일 오전 부산 기장군 고리 원전 3호기와 4호기의 모습. 이날 태풍으로 신고리1~2호기 등 원전 4기가 순차적으로 가동을 멈췄다. ㈜연합뉴스
제9호 태풍 ‘마이삭’ 영향으로 부산시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가동 중이던 원전 4기가 잇따라 모두 멈춰선 것을 두고 극한기상이 빈발하는 기후위기 시대 원전의 위험성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3일 고리원전에서 0시59분 신고리1호기를 시작으로 새벽 1시12분 신고리2호기, 2시53분 고리3호기, 3시1분 고리4호기가 송전선로의 문제로 자동정지했다고 밝혔다. 원안위는 또 영구정지된 고리1호기와 정비를 위해 정지돼 있던 고리2호기에서는 새벽 2시24분과 3시30분께 외부 전원이 끊어지며 비상 디젤발전기가 자동기동됐다고 덧붙였다. 자동정지 직전 이들 원전 4기는 전체 전력 수요 5900만㎾의 약 7%인 413만㎾의 출력을 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전력 공급량 부족에 전력거래소 중앙관제센터는 양수발전기와 수력발전소 등으로 대응해 수급 균형에는 차질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태풍이 예고된 상황에서 공급 예비력을 여유 있게 잡은데다, 발전기가 시간차를 두고 정지해 대응 시간을 벌 수 있었던 덕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가 태양광 발전기가 가동되는 낮에 동시에 두개 이상 정지되는 형태로 일어났다면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전력계통 전문가의 진단이다. 전영환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전력망의 주파수가 급락하고 태양광 발전기들이 연계의 안정성 문제로 계통에서 연쇄적으로 떨어져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통상 1기당 1GW의 출력을 내는 ‘덩치 큰’ 원전이 갑자기 정지하면 전체 전력망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이 영향으로 태양광 등의 전력 공급까지 중단돼 대규모 정전 사고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통상 태양광 발전기는 생산한 직류 전기를 교류인 전력망에 공급하기 위한 전환 장치를 갖고 있는데, 전력망이 불안정해지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전력망에서 떨어져 나오는 기능이 있다. 앞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대폭 늘려가야 하는 만큼, 대규모 발전기인 원전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대한전기학회 등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돼오고 있다.
전 교수는 “집중형 대형 원전발전단지는 기상이변이 빈발하는 기후변화 시대에 더 이상 맞지 않는다”며 “계통 안정성 측면에서도 분산화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은 “후쿠시마 사고와 이번 고리핵발전소 정지 사고는 기후위기 시대에 핵발전소가 대안이 아닌 위험일 뿐이라는 것을 극명히 보여준다. 핵발전소의 대규모 전력공급 중단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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