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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무언의 항의?…산업계, 탄소중립 선언에 ‘무반응’

등록 2020-10-29 16:15수정 2022-01-03 13:46

정부 ‘2050년 탄소 중립’ 선언에
탄소감축 나서야할 산업계 무반응

배출권 축소 등으로 강한 신호 보내야
안될땐 탄소세 등 추가수단 필요할 듯
지난해 1월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부총리-경제단체장 간담회'에서 홍남기 부총리와 손을 맞잡은 경제단체장들. 왼쪽부터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홍 부총리,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김영주 한국무역협회장.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해 1월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부총리-경제단체장 간담회'에서 홍남기 부총리와 손을 맞잡은 경제단체장들. 왼쪽부터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홍 부총리,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김영주 한국무역협회장.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밝힌 ‘2050년 탄소 중립’ 선언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문 대통령 연설 직후 성명을 내 “지난 7월 발표된 한국의 모범적인 ‘그린 뉴딜'에 이어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매우 긍정적인 발걸음”이라고 환영했습니다. 내년 영국에서 열릴 제26차 기후변화총회 특사로 때마침 한국에 와 있던 존 머튼은 트위터에 “문 대통령의 ‘넷-제로’ 선언을 듣고 한국을 떠나게 돼 환상적”이라고 적었습니다.

국내에서도 환경단체들과 지난 달 국회의 ‘기후위기 비상대응 촉구 결의’를 이끌었던 의원들 사이에 환영 성명이 이어졌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다른 곳에선 다음날까지도 잠잠합니다. 특히 의아한 것은 산업계입니다. 3대 경제단체 중에서 경영자총협회가 28일 “기업들 72.9%가 탄소 중립을 추진할 경우의 부담 증가를 우려한다”는 내용의 미리 준비된 설문조사 결과를 때맞춰 내놓았을 뿐입니다. 어느 곳에서도 탄소 중립 선언에 대해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산업계 이익을 적극 대변해온 보수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것은 우리가 생산하고 소비해온 패러다임을 바꿔야 가능한 어려운 과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독일에선 2차대전 전후 ‘경제 기적’을 재현하는 일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저탄소 산업이 육성되는 등 새로운 기회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되지만, 화석에너지에 기초한 기존 산업들이 퇴출되고 에너지 비용이 비싸지는 등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협약 파리협정에 따라 세계 각국이 유엔에 제출한 2030년까지의 감축계획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온도 상승폭을 2도 이내로 묶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감축에 소요될 비용을 감당할 각오가 안 돼 있는 까닭입니다.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IPCC)가 2018년 발표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 보고서’를 보면, 인류가 2050년 탄소 중립을 거쳐 지구온도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2도 억제 목표 때보다 약 3~4배 많은 온실가스 평균 한계감축비용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2050 탄소 중립 선언은 이 과정이 힘들어도 기후변화가 계속될 경우에 치러야할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인 셈입니다.

2050 탄소 중립으로 가는 과정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은 산업계입니다. 온실가스는 발전, 건물, 수송, 산업공정,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배출되지만, 배출주체로 보면 산업체가 절대적입니다. 환경부 자료를 보면 2018~2020년 배출권거래제에 의무 참여한 589개 업체에 할당된 온실가스 배출량이 국가 온실가스 배출총량의 70.2%에 이릅니다. 산업계가 때늦지 않게 행동하지 않고는 2050년 탄소 중립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산업계는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의 배출권 할당계획을 수립할 때마다 할당량 축소와 유료 할당비율 확대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습니다. 이들이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요구될 변화를 모를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탄소 중립 선언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탄소 중립 선언에 반발하고 나서는 것보다 더 문제일 수 있습니다. 탄소중립 선언이 산업계에 아무런 신호가 되지 않는다는 방증이기 때문입니다. 향후 사업계획을 세우고 투자를 결정하는데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산업계가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두 달 뒤부터 적용될 제3차 배출권거래제의 배출권 할당량을 줄이는 것입니다. 정부는 지난 9월29일 국무회의에서 내년부터 2025년까지 5년 간의 연평균 온실가스 배출허용총량을 6억970만톤으로 잡은 배출권거래제 3차 할당계획을 확정하고 할당 신청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만약 현재 할당계획대로 기업들에게 배출권이 할당되고 나면 배출허용총량을 줄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일단 할당된 배출권은 재산권과 같은 성격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배출권거래제 주무부처인 환경부 쪽에서는 3기 배출권거래제에 반영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분위기입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할당계획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기본 로드맵’에 따르도록 돼 있다”며 “시행일까지 남은 두 달 사이에 로드맵을 수정해서 할당계획을 새로 짜서 할당까지 마치는 것은 물리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적어도 2025년까지는 배출권거래제를 ‘2050 탄소 중립’을 위한 추가 감축수단으로 활용하기 어려울 것이란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배출권거래제를 보완할 다른 감축 수단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탄소세를 비롯한 다른 감축 수단을 도입할 수 있을 지 주목됩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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