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비상’ 걸린 지구
environment_기후변화 대응의 당위성을 이야기하는 글에 빠지지 않는 것이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이라는 식의 표현이다. 사람들이 ‘기후변화는 인류 최대 위협’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우선 떠올리는 ‘인류’는 자신과는 먼 미래 사람들이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이런 생각이 틀렸을 수 있다고 말한다. 기후변화 시계가 예상보다 빨리 돌아가면서 미래가 현재로 더 빨리 끌어당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라케시 기후회의 오늘 개막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마라케시에서는 7일 세계 190여개 나라가 참여하는 유엔 기후회의가 개막된다. 1995년부터 해마다 지구촌 공동의 과제인 기후변화 대처 방안을 논의해온 중요한 회의다. 18일까지 이어지는 올해 회의에서는 1992년 채택된 유엔기후변화협약의 당사국회의(COP22), 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 당사국회의(CMP12)와 함께 4일 발효된 파리협정의 당사국회의(CMA1)도 열린다.
기후변화협약과 교토의정서는 주요 당사국들이 비준을 미루는 바람에 채택하고 3년, 8년이 흐른 뒤에야 첫 당사국회의를 할 수 있었다. 반면 파리협정은 미국, 중국, 인도 등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나라가 적극 비준에 나서면서 지난해 12월 채택되고 만 1년도 안 돼 첫 당사국회의를 열 수 있게 됐다. 2020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 체제 후속 기후체제를 열어줄 파리협정이 예상보다 일찍 국제법적 효력을 갖게 되자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서는 고무된 분위기의 보도자료를 내놨다.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회의를 이끈 고위급 인사들이 총회 마지막 날 새 기후체제에 합의한 파리협정이 채택된 뒤 서로 손을 맞잡고 기뻐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프랑시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총회 의장인 로랑 파비우스 프랑스 외무장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 유엔기후변화협약사무국 제공
파리협정은 “지구 평균온도를 산업화 이전 온도에서 2도 훨씬 못 미치게 증가하는 정도로 억제하면서, 증가 폭을 1.5도까지 낮추기 위해 노력한다”고 천명했다. 24년 전 기후변화협약에서 “기후 시스템에 대한 인간의 위험한 개입을 예방하는 수준에서 온실가스 농도를 안정화한다”고 추상적으로 제시한 목표를 온도 상승폭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2도 억제 목표에 덧붙여 1.5도를 추구해야 할 억제선으로 추가한 것은 2도 상승한 세계가 생각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데 국제사회가 합의했기 때문이다.
파리협정 목표치 무리였나
파리협정이 내건 온난화 억제 목표는 그러나 이미 진행된 온난화 수준과 지구 전체 온실가스 감축 계획으로 미뤄볼 때 달성되기 극히 어려울 것이란 진단이 지배적이다. 대기화학자인 영국의 로버트 왓슨을 비롯한 6개국의 대표적인 기후변화 전문가 7명이 9월말 내놓은 <기후변화에 대한 진실>이라는 보고서의 결론도 마찬가지다. 이런 부류의 글은 그동안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주저자인 왓슨이 국제사회에 기후변화 논의의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 의장까지 지낸 저명한 과학자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보고서에서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 상승 폭을 1.5도에서 억제하는 목표는 이미 거의 확실히 빗나갔고, 2도 억제선도 2050년이면 도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구 온도는 지난해까지 이미 산업화 이전 대비 1도 상승했다. 이런 상태에서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에 의해서만 0.4~0.5도의 추가 상승이 예상되는 반면, 각 나라의 온실가스 감축 속도는 충분히 빠르지 않다는 게 그런 판단의 근거다. 보고서는 또 모든 나라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 계획(INDC)을 100% 이행해도, 2030년에 대기 중에 배출될 온실가스는 2도 억제선을 넘기지 않으면서 최대한 배출할 수 있는 양보다 33% 많을 것으로 분석했다. 게다가 80%가 넘는 나라가 감축 계획 실행을 선진국들이 연간 1000억달러 규모의 지원금을 내놓는 것과 조건부로 묶어 놓았다. 부족한 온실가스 감축 계획마저 이행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높은 셈이다.
2도 억제선 방어가 어렵다는 진단에는 유엔기구도 동의한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2015 배출량 격차 보고서>에서 지금까지 제시된 각 나라의 감축 계획대로면 세기말까지 지구 기온은 2도 억제선을 훨씬 뛰어넘어 3~3.5도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의 온실가스 배출량 시나리오에서 2도선 억제 가능성이 큰 경로를 따르려면 2010년 475억tCO₂-eq(이산화탄소 환산 톤)인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2020년 520억tCO₂-eq에서 정점을 찍고 이후 빠르게 줄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각 나라가 약속한 2030년까지의 감축 계획을 모두 이행해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계속 늘어나, 2030년의 지구 온실가스 배출량은 2도 억제선을 지킬 수 있는 양보다 140억tCO₂-eq 많은 수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관측 결과와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에서 제시한 시나리오를 비교해 보면 복잡한 분석을 하지 않고도 파리협정이 설정한 기후변화 억제 목표가 얼마나 무리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지난해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는 이산화탄소로 환산해 485ppm·CO₂-eq을 기록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이 이산화탄소(CO₂)와 메탄(CH₄), 아산화질소(N₂O) 등 기후변화협약에 규정된 6가지 온실가스를 모두 측정해 분석한 결과다. 온실가스 농도 485ppm은 어느 수준일까?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는 <제5차 기후변화평가보고서>에서 미래 기후변화를 전망하는 데 4가지 온실가스 배출 대표농도경로(RCP) 시나리오를 사용했다. 이 가운데 지구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내에서 억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제시한 RCP2.6 시나리오의 2100년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는 평균 450ppm·CO₂-eq이다. 지구 온도가 이번 세기 이후에도 1850~1900년 대비 2도 이상 오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제시한 2100년의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는 평균 500ppm·CO₂-eq이다. 지구 온실가스 농도가 2도 상승 억제선을 넘지 않을 ‘가능성이 큰’ 농도를 이미 넘어, 억제할 ‘가능성이 있는’ 농도의 턱밑까지 다가간 셈이다.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가 결국 대기 중에 누적된 이산화탄소를 제거해 온실가스 농도를 다시 떨어뜨리는 이른바 ‘바이오에너지 탄소포집저장’(BECCS)과 같은 ‘지구공학’ 방안을 2도 억제선 방어 수단으로 제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가 제안한 지구공학 기술은 언제 완성될지 기약이 없다. 또 가능해진다 해도 천문학적인 비용과 또 다른 환경 훼손 논란을 넘어야 한다.
주요 온실가스 대기 중 농도 추이 (자료:미국립해양대기청(NOAA))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HFC 추가감축효과 크지 않을 듯
지난달 르완다 몬트리올의정서 당사국회의에서 강력 온실가스인 수소불화탄소(HFCs)의 단계적 퇴출에 합의한 것도 그 효과가 알려졌던 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수소불화탄소 감축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체 온실가스 연간 배출량의 2배에 이를 수 있다는 계산까지 제시된 것으로 보아 그 자체로 작은 효과는 아니겠지만, 그것은 현재 추세로 계속 배출할 경우와 대비해 그렇다는 것이고, 그에 따른 감축도 대부분의 나라가 이미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계획(INDC)에 포함돼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수소불화탄소가 이미 각 나라들이 감축 실적에 포함해온 온실가스의 하나여서 추가 감축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유엔기후변화협약사무국에 제출된 각 나라의 감축 계획을 보면,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 가운데 수소불화탄소를 제외하고 이산화탄소만 감축 기준으로 삼은 나라는 중국뿐이다.
지구는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도 상승한 상태에서 이미 다양한 기후변화 피해를 경험하고 있다. 지구촌 곳곳이 돌아가며 폭염과 열파와 같은 극한 현상에 시달리고, 관측 기록을 깨는 집중 호우에 따른 홍수와 가뭄으로 농작물 생산과 경제활동에 큰 피해를 보고 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생물종들은 점점 멸종 위기를 향해 가고, 병원체나 모기와 같은 질병을 매개하는 해충의 서식지와 활동 기간이 늘어나면서 전염병 위험 지역이 확대되고 있다. 극지의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작은 섬나라와 해안 저지대에는 상습적인 침수와 폭풍 해일 등의 위험에 노출돼, 기후난민까지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서 다시 1도가 더 올라가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상승한 세계는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상이다. 게다가 그것이 지금 살아 있는 사람 대부분이 떠난 뒤일 세기말이 아니라 불과 35년 뒤인 2050년으로 확 앞당겨 도착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기후변화 전문가들은 그 세상이 산업화 이후 지금까지 1도 상승하는 동안 나타났던 기후변화 정도가 딱 1도만큼만 더 심해지고 마는 세상은 아닐 것이라고 설명한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이 0.5도 올라간 상태에서 0.5도 더 증가하는 것과 1도나 1.5도에 도달한 상태에서 다시 0.5도 올라가는 것은 모두 같은 0.5도의 온도 변화지만, 그 영향은 뒤로 갈수록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민승기 포스텍 환경공학과 교수는 “온난화 영향 가운데서도 폭염이나 열파 같은 이상 기상현상은 특히 더 선형이 아니라 비선형으로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온도가 증가하는 데 따라 직선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지수함수적으로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이다. 극지에 있는 얼음도 온도 증가와 같은 속도로 천천히 녹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빠르게 녹는 순간이 올 수 있는데 최근 그렇게 갑자기 점프하듯 비선형으로 속도가 빨라지는 구간이 산업화 이전 대비 상승 폭 1.5도와 2도 사이에 있다는 보고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 우려스런 것은 전례 없이 빠른 온도 증가 속도다. 민 교수는 “산업화 이전 대비 2도라는 온도의 크기도 중요하지만, 그 온도가 얼마나 짧은 시간에 변하는가가 영향 측면에서는 훨씬 중요한 질문이다. 빙하기와 간빙기의 지구 평균온도 차이가 5도밖에 안 되고, 그것도 10만년이란 기한을 두고 천천히 왔다갔다해 생태계가 적응할 시간이 충분했다. 그러나 100년에 1도가 증가하게 되면 이 속도가 100배 빨라지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생태계가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로버트 왓슨 교수 등의 보고서대로 35년 만에 1도 증가하는 속도가 현실화될 경우 지금까지의 기후변화 속도에 힘들게 적응해온 생물종들이 어떤 처지에 놓일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1988년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처음 온실가스에 의한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증언한 것으로 유명한 제임스 핸슨 박사가 이끄는 19명의 국제 연구팀이 지난 5월 과학저널 <대기화학과 물리학>에 발표한 연구 결과는 기후변화의 영향이 지수함수적으로 급격히 증폭되는 것을 잡아낸 사례다. 연구자들은 실제 관측 자료와 수치 기후 모델, 고기후 자료 등을 이용해 그린란드와 남극에서 점점 바다로 많이 녹아들고 있는 얼음물이 바닷물 순환을 억제해 해수 표면 온도를 증가시키고, 이것이 다시 해빙을 증가시키는 되먹임(피드백) 과정이 증폭되기 시작했다는 놀라운 결론을 얻었다. 이들은 그 되먹임 과정이 지금보다 평균온도가 불과 1도 높은 조건에서 해수면이 6.9m 높았던 앞선 간빙기의 되먹임 과정과 흡사해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상승도 알려졌던 것보다 위험할 수 있다는 경보음을 울렸다.
2도 상승한 세상에 대한 두려움
과학자들은 다양한 컴퓨터 기후모델을 통해 미래의 기후변화를 예측해 알려주고 있다. 이런 모델링 결과를 종합해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는 이번 세기말인 2080~2100년에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증가하는 경우, 북극 생태계와 아마존에서 환경변화가 갑작스레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진행되는 이른바 ‘티핑 포인트’ 도달, 육지의 탄소 흡수량 감소, 생물종 멸종 위험 증가, 해양 산성화와 높은 기후변화 속도에 따른 해양 생물 다양성 손실, 기후변화에 의한 작물 생산 변동성 증가, 질병률 증가 등의 위험이 중간 수준일 것으로 분류했다. 지구적 주요 위험 항목 15가지 가운데 매우 높은 수준의 위험으로 분류한 것은 ‘빈곤계층의 수자원 접근성 감소’ 한 가지다.
하지만 모델링을 통한 미래 예측의 정확성에는 한계가 있다. 최근 북극의 바다 얼음 녹는 속도가 과거 어떤 모델링을 통해 예상했던 것보다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그런 예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2도 상승한 세상에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 기후융합연구실 강상인 연구위원은 “기후변화 피해가 산업화 이전 대비 상승 폭이 2도 미만으로 유지되면 다시 회복이 가능하지만, 2도를 넘어 점점 올라가면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기 어려운 불가역적 상황이 펼쳐진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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