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연기금 피케이에이(PKA)의 존 존슨(54) 대표가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 현장에서 지난 10일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샤름엘셰이크/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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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삶 곳곳을 할퀴고 있는 기후위기는 자본시장에서 기관투자자인 연기금의 투자 환경도 변화시켰다. 연기금은 안정적인 수익창출뿐 아니라 기후와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투자를 해야 한다. 2006년 유엔환경계획(UNEP) 금융이니셔티브는 자본시장에 기업의 이에스지(ESG) 활동을 통합시키기 위한 책임투자원칙을 발표했다. 이에스지는 환경·사회·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까지 고려해 기업의 성과를 측정하는 기업성과지표를 뜻한다. 이 책임투자원칙은 현재 선진국의 연기금과 보험사 등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지속적으로 퍼져 현재 4천여개의 전세계 금융회사가 참여하고 있다.
글로벌지속가능투자연합(GSIA)에 따르면 2016~2020년 사이 이에스지(ESG) 투자 규모는 55% 증가했다. 국외 주요 연기금은 책임투자 관련 분야 중 특히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고 석탄 투자 배제 기준을 설정하는 등 기후변화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흐름 가운데 한국의 국민연금은 지난해 5월 ‘탈석탄’ 선언을 한 지 1년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석탄투자 제한 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8월말 기준 운용규모 917조원으로 세계 6위의 ‘큰손’이다. 국민연금보다 규모가 큰 연기금으로는 일본 공적연금(1위), 노르웨이 국부펀드(2위), 중국 국부펀드(3위), 아랍에미리트 국부펀드(4위), 중국 국가외환관리 투자기업(5위)이 있다.
지난 9월 기후솔루션, 플랜1.5, 환경운동연합 등 170개 기후·환경단체들은 국민연금을 상대로 “석탄 관련 매출 비중이 30% 이상인 기업에는 투자하지 말라”고 촉구하고 관련 답변을 요구했다. 이에 국민연금은 지난달 20일 “국민연금 역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배출 감소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투자제한전략의 시행방안은 기금의 수익성,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마련될 예정”이라고 기후솔루션에 답변을 보내왔다. 국민연금은 이르면 오는 12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투자제한전략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기관인 데다 큰 덩치에 걸맞지 않게 국민연금이 기후위기 시대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여전하다.
이에 <한겨레>는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지난 6일부터 20일까지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현장에서 덴마크 연기금 피케이에이(PKA)의 최고경영자인 존 존슨(54) 대표를 지난 10일 인터뷰했다. 땡볕이 내리쬐는 후텁지근한 날씨였지만, 존슨 대표는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198개국에서 3만여명이 참여해 분주한 당사국총회 현장에서 마땅한 인터뷰 장소를 찾지 못해 사람들이 북적이는 복도에 마련된 소파에서 인터뷰를 진행했고, 존슨 대표도 흔쾌히 응했다. 이날 현장 인터뷰에 더해 이후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 내용을 보충했다.
피케이에이는 덴마크의 15개 연기금 중 4번째로 큰 연기금이다. 가입자는 총 35만명이고 90%가 여성이다. 간호사, 헬스케어 전문가, 사회복지사·사회 교사, 약사 등 4개 직업군의 연기금을 관리하고 있다. 2021년 기준 운용규모는 543억유로(약 75조원)이다. 이 연기금은 2050년까지 모든 투자에서 ‘넷제로’(탄소 순배출 0)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고, 2010년께부터 일찌감치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친환경 투자에 나섰다. 일찍부터 이런 선택을 한 배경은 무엇이고, 이후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가입자들이 정의롭고 공정하게 연기금이 운영되는지 강하게 의견 피력
―우선, 피케이에이에 대해 소개해달라.
“피케이에이는 비영리 연기금이라서 모든 수익이 가입자들에게 돌아간다. 가입자들이 대부분 보건·복지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들이다. 이들이 종사하는 직업 분야의 공적인 특성 때문에 가입자들이 사람들을 돕고, 돌보고 세상에 이로운 영향을 미치는 데 관심이 많다. 그래서 연금이 어디에 투자되는지, 정의롭고 공정하게 운용되는지에 대해 들여다보고 그렇게 되도록 의견을 강하게 피력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자본시장에서 친환경 투자와 관련해 연기금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연기금은 저축을 시작하고 수익이 돌아오기까지 20~40년 걸린다. 기후변화로 인해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연기금에 저축하는 의미가 없어진다.(웃음) 그리고 연기금은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관이다. 앞으로 녹색전환 기술을 활용하는 기업이나 제품들이 시장에서 더 많이 선택받고,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수익 측면에서도 그린(친환경) 투자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피케이에이와 다른 연기금의 차이점은?
“피케이에이와 더불어 다른 덴마크의 연기금들이 10년 넘게 기후변화에 관심을 꾸준히 가져왔다. 그중 피케이에이가 또 다른 연기금인 ‘펜션 덴마크’와 함께 선두주자였다.”
덴마크 연기금 피케이에이(PKA)의 존 존슨(54) 대표가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 현장에서 지난 10일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샤름엘셰이크/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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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이에이는 현재 총 운용자산의 12.6%를 친환경 녹색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이 비율을 2025년까지 15%, 2030까지 2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이 연기금은 또 지구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에 견줘 1.5도 이하로 유지하는 목표를 제시한 파리협정이 체결된 2015년부터 세 가지 그린 투자 전략을 시작했다.
①석탄 계획
-2015년에 처음으로 석탄 생산에 대한 투자를 배제하기 시작함. 석탄 생산에 대한 총 노출도가 90%를 초과하는 전력·광산기업에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 투자 중인 나머지 석탄회사와 대화를 시작. 이들 석탄회사가 재생에너지로 사업을 전환하고 파리협정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여하기 위한 목적이었음.
-2020년에는 석탄 채굴에 대해 무관용 정책을 도입. 전력회사의 경우 수익의 20% 이상이 석탄에서 발생하면 투자를 제한. 다만, 20%가 넘더라도 석탄 비중 감축 계획 등 뛰어난 전환 의지가 있다면 투자 유지.
-이를 바탕으로 119개 석탄 기업을 투자에서 배제함.
②석유·가스 계획
-2016년 오일샌드(원유를 포함한 모래나 암석) 추출 사업이 50% 이상을 차지하는 회사에 대해 처음으로 투자를 배제함.
-2017년 석유·가스회사들과 대화를 시작해 이 회사들의 기후 전략을 알아내고 그 과정에서 50개 회사를 투자 대상에서 제외함.
-현재는 오일샌드에 노출된 회사들 중 변화 의지를 보이지 않는 회사들에 대해서 무관용 정책을 실시.
③운송 계획
-2018년에는 운송에 중점을 둠.
-자동차 생산을 보다 기후 친화적인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기업과 대화를 시작.
당시 경쟁력 높았던 석탄보다 그린 에너지가 경쟁력을 갖게 될 거라 판단
―일찌감치 이렇게 기후 친화적인 투자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게 보면 두 가지였다. 첫째는 경영적 판단이 있었다. 2000년대에는 석탄 등 화석연료가 풍력 등 재생에너지보다 가격 경쟁력이 더 높았다. 그러나 향후에는 재생에너지의 단가가 떨어지는 등 그린 에너지가 더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두번째는 가입자들의 요구가 있었다. 가입자들이 기후위기 시대에 더 정의로운 투자에 대한 요구를 강하게 어필했다.”
피케이에이는 이러한 판단으로 2011년 덴마크 안홀트섬 인근 안홀트 해상풍력발전단지에 직접 투자를 했다. 존슨 대표는 “이것은 당시 고위험이긴 했지만, 피케이에이의 이후 녹색 투자를 촉진한 좋은 결정으로 판명된 투자였다”고 평가했다. 이후 이 연기금은 녹색 인프라에 대한 투자 경험을 더 많이 쌓기 위해 이듬해인 2012년 자회사 에이아이피(AIP) 매니지먼트를 설립했다. 존슨 대표는 “현재 에이아이피 매니지먼트는 79명의 직원이 피케이에이를 포함한 여러 기관투자자들의 녹색 투자를 식별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존슨 대표는 또 “피케이에이는 영국의 투자 자문사인 ‘헤르메스 에쿼티 오너십 서비스(헤르메스 EOS)’와 협력해 기후 친화적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오에스는 연기금이나 보험사 같은 기관투자자에게 기업 관여 등의 자문을 해주고, 또 이들이 투자한 기업과의 사이에서 소통 역할도 담당한다. 그는 “헤르메스 이오에스는 현재 피케이에이를 대표해 약 650개 기업과 기후변화, 인권·노동권, 기업 거버넌스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케이에이가 석탄 투자 제한 정책을 시행하기 전과 후에 달라진 점은?
“이 정책을 통해 덴마크의 연기금들이 더 녹색으로 전환하는 데 기여를 했다. 또 피케이에이의 풍력·태양광 발전에 대한 투자가 증가해 포트폴리오에서 그린 투자 비중이 늘게 됐다. 다른 나라들의 본보기가 되는 측면도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연기금은 수익률도 중요하다. 석탄 배제 투자로 수익률이 올랐는가?
“1년 전만 해도 석탄 투자는 하지 않는 게 더 수익성이 좋았다. 그런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위기가 도래하면서) 지금은 석탄 가격이 많이 올랐다. 지금은 지난해만큼 수익률이 높지는 않지만 석탄은 (시장 환경 변화로 가치가 하락하게 되는 ‘좌초산업’이므로) 장기적으로 수익성이 나쁘다. 장기적으로 석탄을 통한 수익은 0이 될 것으로 본다.”
―피케이에이의 야심 찬 다음 목표가 있을까?
“기업 관여와 어떤 경우에는 투자 배제 등을 통해 아마존, 구글 같은 기업들을 포함한 피케이에이의 ‘투자 포트폴리오’의 탄소 배출량을 2019년에 견줘 2025년까지 25%, 2030년까지 50% 감축하는 것이 목표다.”
존슨 대표는 지난해 영국 글래스고(COP26)에 이어 이번에 두번째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에 참석했다. 그는 “이전에는 주로 정치인들이 당사국 총회에 참석을 했는데, 이제는 민간 섹터에서도 많이 오고 있는 것 같다. 민간도 변화된 것을 느낀다. 예전에는 마케팅 측면에서 왔었는데, 이제는 경영 전략 차원에서 참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27차 당사국총회에 오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녹색전환을 위해 향후 계획을 어떻게 세울지 세계의 여러 기관과 소통하려고 왔다. 다른 하나는, 지금 인터뷰하는 것처럼 다른 여러 나라에서 덴마크 연기금이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관심을 보였고, 우리의 경험 공유 요청을 해와서 이를 나누기 위해 왔다.”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하기로 한 거로 안다. 높은 기준이라고 생각하는데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목표달성을 잘 할 수 있기를 응원한다.”
―연기금 운영자로서 연기금의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해 한국의 국민연금에 대해 조언한다면?
“국민연금에 조언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기후위기에 대응해 석탄 배제 등 친환경 투자를 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고, 덴마크의 연기금들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런데도 용기를 내서 결단력 있게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분명하고 강력한 탈석탄 정책을 추진하는 용기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샤름엘셰이크/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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