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군의 곰배령은 한겨레신문사가 출간한 <이곳만을 지키자>에서 첫 번째로 소개된 생태명소다. 이제는 드라마 제목으로 등장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관광명소가 됐다. 십수년 전 여름꽃밭이 유명한 이곳을 찾았을 때 묵던 민박집 강아지들이 산행을 따라나섰다. 강아지들은 2시간여 산길을 곧잘 올라와서는 정상에 다다라 ‘실신상태’에 빠졌다. 태어난 지 얼마 안돼 힘들었나보다 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더운 여름날 심한 운동 끝에 더위를 먹은 것 같다.
영국 노팅엄트렌트대 연구팀은 16일 동물병원 진료 기록을 분석해 “인간과 가장 가까운 개나 고양이뿐만 아니라 기니피그, 토끼, 페럿 등 반려동물들도 열사병(더위먹기)으로 병원을 자주 찾는다. 지구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작은 반려동물들이 위험에 놓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밝혔다. 연구 논문은 수의학 분야 전문지 <오픈수의학저널> 최근호에 실렸다.(DOI :
10.5455/OVJ.2022.v12.i1.2)
연구팀은 영국 수의사 그룹인 소형동물수의감시망(Savsnet)을 통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6년 동안의 동물병원 진료 기록을 입수해 온열질환 유발 요인과 위험 요소를 분석했다.
반려견의 피해가 가장 많아 모두 146건의 온열질환이 진단됐다. 73.5%는 개의 활발한 운동에서 비롯했고, 7%는 뜨거운 차에 갇혀 발생했다. 불독처럼 얼굴이 넙적한 품종들이 특히 위험해 전체의 5분의 1(21.2%)을 차지했다.
고양이는 16마리가 열사병으로 확인됐는데, 15살 이상의 고령 고양이들이 가장 비중이 높았다. 이외에 기니피그 8마리, 토끼 3마리, 페럿 1마리가 열사병 치료를 받았다. 토끼들은 모두 짧고 폭이 넓은 평평한 안면을 가진 단두형 품종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여름에 열사병으로 동물병원을 찾은 경우가 가장 많았다. 개의 경우 4월부터 10월까지 온열질환이 발생했는데, 영국에서 가장 더운 7월에 절반 가까이(42.5%) 집중됐다. 고양이는 5~9월에 분포했지만 4분의 3(75.0%)이 6~7월에 발생했다. 나머지 동물들도 6~8월 여름에 더위를 먹었다.
곰배령 정상까지 따라 올라와 기진맥진한 강아지. 이근영 기자
연구 대상의 모든 동물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질환은 호흡이상, 혼수상태, 무기력증, 설사와 같은 위장문제 등이었다.
반려견의 경우 운동이 가장 보편적인 유발 요인이었지만, 다른 동물들은 주변 환경 곧 더운 날씨가 유발 요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양이는 따뜻한 잠자리를 찾아다니는 습성이 있어 온실이나 창고에 갇힐 수 있다. 또 토끼나 기니피그와 페럿 같은 동물들은 그늘이 없는 상태라면 밀폐된 우리에 갇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논문 저자인 앤 카터 노팅엄트렌트대 연구원은 “반려동물의 열사병이 뜨거운 차 안에 갇힌 반려견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는 오해가 있다. 반려견뿐만 아니라 다른 반려동물들한테도 위험 요소들이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반려동물 주인은 동물 집을 살피고 더운 계절에 열사병에 걸리지 않도록 냉방을 유지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논문 제1저자이자 교신저자인 에밀리 홀 노팅엄트렌드대 연구원은 “모든 동물이 폭염 관련 질환을 겪을 수 있으며 지구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더 보편화할 것이다. 연구 결과는 모든 동물들의 열사병과 위험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이 제고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 대상에 평평한 안면을 가진 단두형 개와 토끼들이 더 많았다는 사실은 이런 동물들의 주인이 뜨거운 날씨에 좀더 세심한 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이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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