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냉방 등으로 인한 전력수요가 집중되는 3분기의 전기요금이 동결됐다. 한전은 7∼9월분 최종 연료비 조정단가를 2분기와 동일한 kWh당 -3원으로 적용하기로 했다고 21일 발표했다. 전기요금 동결 이유에 대해 정부는 "코로나19 장기화와 2분기 이후 높은 물가상승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생활안전을 도모할 필요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21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건물에 에어컨 실외기가 빼곡히 설치돼 있는 모습. 연합뉴스
올해 초부터 정부는 전기요금에 연료비 가격을 더 많이 반영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꿨다. 발전연료인 액화천연가스, 유연탄, 벙커시유의 석 달간 무역통계가격을 비교해 연료비가 오르면 전기요금을 올리고, 내리면 낮추겠다는 것이었다. 자칫 급격한 전기요금 상승을 막기 위해 주택용 4인가구 월평균 사용액(350㎾h·월 5만5천원) 기준 분기 최대 1050원, 산업용은 월평균 사용액(9240㎾h·월 119만원) 기준 분기 최대 2만8천원까지만 요금을 올릴 수 있다는 상한선을 뒀다. 그러나 예외적 상황이 발생하면 정부 권한으로 인상을 미룰 수 있도록 했다.
국제 유가 등 원료비가 올 봄부터 다시 급등하면서 전기요금이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지난 2분기에 이어
3분기 전기요금도 동결한다고 21일 발표했다. 코로나19 장기화와 물가 상승 등을 우려해 전기요금을 동결한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지난해 7월 청와대 관계자는 전기요금 상황을 묻는 기자 질문에 장황한 설명을 했다. 인상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여론 반응도 살펴야 하고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부담도 우려된다는 답변이 길게 이어졌다.
한국 사회에서 전기요금은 에너지 문제 해결의 핵심 열쇠다. 한국 전기요금은 세계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가정용과 산업용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못 미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보면, 2019년 기준 한국 가정용 전기요금은 26개국 중 가장 싼 편이다. 26개국 가정용 전기요금 평균은 ㎾h당 16.45펜스인데, 한국 요금은 그 절반인 8.02펜스(약 116원)에 불과했다. 가정용 전기요금이 가장 비싼 국가는 독일로 ㎾h당 26.17펜스였다. 한국의 3배 이상이다. 한국에서 시행하던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최대 11배 이상 늘어나던 기존 체계를 최대 3배까지만 늘어나도록 바꾸면서 사실상 폐지됐다.
박근혜 정부 당시 산업용 전기요금이 다소 오르긴 했다. 그러나 26개 국가 평균보다 조금 낮아서 10위권 중반 수준이다. 한국 산업용 전기요금은 kWh당 7.43펜스(약 107원)로 조사 대상국(24개) 평균인 8.56펜스에 약간 못 미쳤다.
전기요금 인상은 인기 없는 정책이다. 대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이 실시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었다. 2011년 9월 전국적으로 발생한 대규모 정전 사태도 2004년 이후 선거를 의식해 수년 간 전기요금 인상이 불발됐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난 3월22일 서울 서대문구 주택가에 설치된 전기 계량기. 연합뉴스
두 차례 연속 전기요금을 동결한 이번 정부 발표를 두고, 연료비 연동제가 시행 첫 해부터 정치적 결정으로 인해 유명무실해졌다는 비판을 받는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전기요금은 전력 수요를 조절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인데 전기요금이 전력의 원가조차 반영하지 못하면 정부의 수요 관리가 무력화됐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전기요금을 일부러 올릴 필요는 없지만 국제 유가 등 원가를 반영한 전기요금을 정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또다른 이유는 기후위기 대응 필요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2050년 탄소중립(탄소순배출량 0)을 선언한 정부 입장에서도 석탄화력발전 중심의 에너지 생산 구조를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확대 유도가 중요하다.
전기 판매 사업자인 한국전력이 전기요금으로 전력구입 원가도 충당하지 못해 적자가 쌓이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보급을 늘리는데 필요한 기반시설에 충분히 투자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석 위원은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와 탄소중립 목표 추진을 위해서라도 원가와 연동해 요금이 결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10월부터 해당되는 4분기에는 전기요금이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 이날 산업부는 “하반기에도 현재와 같이 높은 연료비 수준이 유지되거나 연료비 상승 추세가 지속될 경우 4분기에는 연료비 변동분이 반영되도록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